[한국인 피랍]인질구출 일본의 경우

  • 입력 2004년 6월 21일 18시 48분


주 일본 한국대사관은 가나무역 직원 김선일씨 피랍사건이 터지자 4월 이라크에서 비슷한 사건을 처리한 경험이 있는 일본 정부에 관련 정보와 협조를 요청했다.

이라크에서 활동하던 비정부기구(NGO) 회원 등 일본인 3명이 ‘알 타우히드 왈 지하드’(유일신과 성전)라는 무장세력에 납치된 사실이 전해진 것은 4월 8일 밤(한국시간). 알 자지라 방송을 통해 억류 사실이 확인되자 일본 정부는 아이사와 이치로(逢澤一郞) 외무성 부상을 요르단 암만에 급파했다.

이와 함께 정부와 현지 진출 기업의 정보를 총동원해 무장세력의 정체를 알아내는 데 주력하면서 이들과 대화가 가능한 종교지도자들을 접촉했다. 가와구치 요리코(川口順子) 외상은 알 자지라 방송에 출연해 인질 석방을 호소했다.

무장세력은 이라크 남부 사마와에 주둔 중인 자위대가 24시간 안에 철수하지 않으면 이들을 살해할 것이라고 협박했지만 인질들은 8일 만에 모두 석방됐다.

이들이 무사히 풀려난 것은 수니파 종교지도자들로 구성된 이슬람종교위원회가 적극적으로 무장세력 설득에 나선 데다 피랍자들이 이라크에서 봉사활동을 벌이던 NGO 회원과 프리랜서 언론인이라는 점이 유리하게 작용했다.

약 6000개의 수니파 사원을 총괄하는 이슬람종교위원회는 “점령군에 협력하지 않는 민간 외국인을 인질로 잡아서는 안 된다”며 “그들을 정중히 대하고 석방하라”는 문서를 작성해 무장세력에 전달했다.

일본 정부는 전국부족협회 등 부족장들과도 접촉해 인질 석방에 협조해줄 것을 요청했다. 인질들이 소속된 단체와 가족들도 아랍 언론매체와 잇달아 회견을 갖고 인질을 해치지 말라고 호소했다.

이 과정에서 일본 정부가 인질석방의 대가로 거액을 제공했다는 설도 나왔지만 일본 정부는 이를 부인했다.

이런 노력으로 현지에서는 한때 ‘조기석방’ 관측이 나돌았다. 그러나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총리가 ‘자위대 철수불가’ 방침을 밝히면서 “테러리스트의 압력에 굴복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 사실이 전해지면서 인질 석방에 난항을 겪기도 했다.

이슬람종교위원회의 한 성직자는 “무장세력은 인질을 곧 석방할 예정이었지만 일본 총리가 그들을 ‘테러리스트’로 지칭해 마음을 바꿨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도쿄의 한 외교 소식통은 “일본의 사례에서 보듯 무장세력의 정체를 확인하는 것이 급선무”라며 “미국이 전면에 나서면 오히려 자극할 우려가 있는 만큼 우선은 현지 종교지도자들과의 접촉에 주력해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도쿄=박원재특파원 parkwj@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