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김기현/푸틴 대통령의 ‘경제 올인’

  • 입력 2004년 6월 3일 19시 16분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최근 경제부처 장관들에게 “여름휴가 기간에도 쉬지 말고 일하라”고 지시해 화제가 됐다.

푸틴 대통령은 세계무역기구(WTO) 가입과 옛 소련권 4개국 경제공동체 실현 등 우선적으로 추진해야 할 구체적인 ‘숙제’까지 장관들에게 내줬다.

지난달 출범한 2기 푸틴 정부의 정책은 철저히 경제성장에 맞춰져 있다.

지난달 26일 발표된 푸틴 대통령의 연두교서에도 온통 경제 얘기뿐이었다. 그는 최근 어디를 가든지 “2010년까지 국내총생산(GDP)을 지금보다 2배로 늘리겠다”고 입버릇처럼 강조한다.

지난해 이룬 7.3%의 경제성장을 앞으로 10년 이상 지속시키겠다는 것이 그의 목표다. 지나친 성장위주 정책이 빈부격차를 낳는다는 일각의 비판에 대해 푸틴 대통령은 “빈곤은 경제성장으로 해결해야 한다”고 못을 박았다.

지난해 러시아의 GDP는 3465억달러로 세계 16위. 올 1·4분기(1∼3월)에도 러시아 경제는 8% 성장했다. 이런 추세라면 13위의 브라질(4524억달러)과 12위 한국(4767억달러)을 제치는 것도 시간문제라고 볼 수 있다.

푸틴 대통령은 동유럽 국가의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가입을 허용하고 미국이 주도하는 대량살상무기 확산방지구상(PSI)에 가입하는 등 미국에 일련의 정치적 양보를 계속하고 있다.

이에 대해 크렘린 내 ‘안보파’들이 불만을 쏟아냈다는 얘기도 들린다. 하지만 그는 “경제협력이라는 실리를 얻기 위해서라면 정치적 명분쯤은 포기할 수 있다”며 요지부동이다.

2기 내각에서 반미 성향이 강한 ‘안보파’를 배제하고 경제 관료와 전문가 집단을 전진 배치한 것도 경제에 대한 그의 강한 의지를 보여준다.

푸틴 대통령은 자서전에서 “80년대 말 국가보안위원회(KGB) 요원으로 동독에 근무하면서 사회주의권이 얼마나 허무하게 무너졌는지 생생하게 목격했다”고 밝힌 바 있다.

옛 소련 시절 이념에 집착해 경제를 파탄시킨 역사적 교훈이 푸틴 대통령의 경제 최우선 정책의 밑바탕이 된 듯하다.

김기현 모스크바특파원 kimkih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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