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위크엔드]도쿄/섹스리스 저팬… 섹스업종 휘청

  • 입력 2004년 5월 6일 17시 27분


일본 젊은이들 사이에 섹스 기피현상이 확산되면서 콘돔 판매업체도 타격을 입고 있다. 사진제공 아사히신문
일본 젊은이들 사이에 섹스 기피현상이 확산되면서 콘돔 판매업체도 타격을 입고 있다. 사진제공 아사히신문

‘젊은이여, 섹스를 싫어하지 말라.’

일본 아사히신문이 발행하는 시사 주간지 ‘아에라’ 최근호의 커버스토리 제목이다. 일본 젊은이들의 성(性) 의식은 한국보다 개방적이면 개방적이지, 결코 보수적이지 않다. 도쿄의 유흥가에는 ‘환락의 밤’을 유혹하는 다양한 업종의 ‘풍속점(風俗店)’들이 늘어서 있다.

그런 일본에서 젊은층의 섹스 기피증이 심각하다고? 선뜻 믿기지 않지만 통계를 보면 고개가 끄덕여진다.

우선 사회 전체의 ‘섹스 빈도’에 따라 경기가 좌우되는 콘돔업계가 “장사가 안 된다”며 아우성이다.

후생노동성에 따르면 2002년 일본 내 콘돔 출하량은 4억2000만개로 사상 최대인 1993년(6억8000만개)보다 40%가량 줄었다. 감소세는 98년부터 시작해 최근엔 속도가 더욱 빨라지는 추세.

한 콘돔업체 영업부장은 “판매량을 늘리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다했지만 지난 5년간 콘돔 매출이 약 20% 줄었다”며 “지금은 손을 놓다시피 한 상태”라고 말했다. 이 업체는 98년 종전의 고무제 콘돔보다 ‘두께는 절반 정도로 얇고 강도는 3배나 센’ 우레탄제 신제품을 개발했고 TV와 지하철 광고까지 했지만 별 효과를 거두지 못했다.

또 다른 콘돔업체 간부는 “섹스 관련 업종은 ‘영원불멸’이라는 신화가 일본에서 깨지는 것 같다”며 허탈해했다. 위기감을 느낀 일부 콘돔업체는 건조제 냄새제거제 등 일반 생활용품을 만들어 팔면서 ‘탈(脫) 콘돔화’로 활로를 모색하고 있다.

형편이 어렵기는 러브호텔 업계도 마찬가지. 호텔 경영자들은 90년대 후반에 비해 매출이 20∼30% 줄었다고 하소연한다.

요코하마 시내에서 러브호텔 3곳을 운영중인 한 업자는 “(호텔에 와서) 섹스를 하지 않는 손님이 늘어난 것은 분명하다. 젊은이 몇 명이 함께 와서 TV 게임이나 가라오케를 즐기다가 ‘그냥’ 돌아가기도 한다”고 말했다. 호텔간의 가격인하 경쟁이 치열하지만 상황이 개선될 조짐은 보이지 않는다.

NHK가 99년, 일본가족계획협회가 2002년에 각각 실시한 성(性) 관련 설문조사 결과를 비교해 보면 일본 젊은층의 섹스기피 현상을 확인할 수 있다. ‘최근 1년간 섹스를 한 적이 있는가’라는 질문에 대해 ‘그렇다’고 답한 비율은 20대 남성이 74%에서 68%로, 20대 여성은 81%에서 62%로 낮아졌다. 반면 40대 여성의 경우 ‘그렇다’는 응답률이 79%(99년)와 77%(2002년)로 비슷해 큰 차이가 나지 않았다. 나이가 젊을수록 섹스를 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는 결과다.

전문가들은 자신감 상실(남성)과 청결에 대한 과도한 집착(여성)이 젊은층의 ‘섹스리스(sexless)화’를 부추겼다고 진단한다. 이와 함께 인터넷의 보급과 비디오 대여점의 확산으로 실제 상대가 없는 상태에서의 ‘가상 체험’이 가능해진 것도 요인으로 꼽힌다.

한 비뇨기과 전문의는 “중장년 남성만이 발기 장애로 고생할 것이라는 통념과 달리 이 문제로 병원에 오는 환자 중에는 20, 30대가 가장 많다”며 “육체에 문제가 있다기보다는 심리적 요인 탓”이라고 소개했다. 이런 ‘심인성(心因性) 발기장애 환자는 일본 전국에 약 100만명이 있으며 이 중 대부분이 20대라는 것.

한편 여성 중에는 자신의 몸에 대한 콤플렉스에 시달려 섹스를 기피하는 사례가 적지 않다고 아에라는 전했다. 하지만 상담을 받으려고 의사를 찾는 여성 중 실제로 치료가 필요한 환자는 5명 중 1명꼴에 불과하다.

일부 전문의는 지나친 다이어트나 직장 생활의 스트레스로 체내 호르몬 균형이 깨져 섹스에 흥미를 잃는 것이라고 지적한다.

가족계획협회 관계자는 “연인 외에 별도의 섹스파트너를 보유할 정도로 섹스에 적극적인 사람이 있는 반면 지나칠 정도로 소극적인 젊은이도 늘고 있다”며 “성에 대한 태도가 갈수록 양극화되는 양상”이라고 분석했다.

도쿄=박원재특파원 parkwj@donga.com

최근 1년간 섹스를 해 본 적이 있는 일본인 비율
·1999년(NHK조사)2002년(일본가족계획협회조사)
남성 20대7468
30대8979
40대9281
여성 20대8162
30대8479
40대79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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