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험! 지구기행]터널의 끝 예술의 시작…日 미호미술관

  • 입력 2004년 3월 17일 18시 27분


화사한 벚꽃길 지나 암흑과 광명의 충격적 만남의 현장인 터널의 끝에서야 모습을 드러내는 유리건축물 미호미술관. 건축가 I.M. 페이의 작품 무릉도원의 하이라이트다. 조성하기자
화사한 벚꽃길 지나 암흑과 광명의 충격적 만남의 현장인 터널의 끝에서야 모습을 드러내는 유리건축물 미호미술관. 건축가 I.M. 페이의 작품 무릉도원의 하이라이트다. 조성하기자
《토머스 모어가 조어(造語)한 ‘유토피아(Utopia)’. 그리스어 ‘없는(ou)’과 ‘장소(toppos)’의 합성어다. 이상향이니 세상에 없는 것은 당연지사. 중국 동진의 문학가 도연명이 그린 무릉도원 역시 ‘없는 세상’이기는 마찬가지다. 그러나 모어처럼 직설적이거나 건조하지는 않다. ‘복숭아꽃 만발한 아름다운 곳’이라는 풍류가 있다. 20세기 말. 세계적인 건축가 I M 페이(중국계 미국인)는 그 무릉도원을 일본의 한 산속에 지어 보여주고 있다. 복숭아꽃 대신 벚꽃이 만발하는 ‘무릉 벚꽃 원’이기는 해도. 이제 화사한 벚꽃이 세상을 덮는 봄. 페이가 구현한 무릉도원도 3월 말이면 분홍빛 벚꽃 만발해 제 모습을 찾을 터이니 한번 찾아봄 직 하다.》

간사이(關西) 지방의 중심인 오사카와 인접한 시가(滋賀)현의 시가라기(信樂). 시가는 일본에서 가장 큰 호수인 비와(琵琶)호가 있는 곳이다. 시가라기는 호수 최남단의 도시 오쓰(大津)에서 멀지 않은 고원의 산악지대다. 그곳에 있는 무릉도원이란 산속에 자리 잡은 특별한 건축물 ‘미호(美秀) 미술관’이다. 처음 그곳을 찾을 때만 해도 그저 그런 미술관 정도로만 생각했다. 요즘 일본에서는 조용한 산중이나 고즈넉한 중소 도시의 미술관을 찾는 여행이 인기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미술관 입구의 리셉션 건물에 들어서는 순간 뭔가 심상치 않음을 감지했다. 엄숙 단아하고 잘 정돈된 조경과 모던한 건물에서 느껴지는 권위와 기품 때문이었다. 리셉션 건물은 낮고 디자인도 단순했지만 직선과 곡선의 적절한 배합을 통한 심플한 공간 처리와 유리를 통해 강조한 투명성은 깔끔한 인상을 주었다. 그 안에는 식당 기념품점 등이 있었다.

터널과 미술관을 이어주는 환상적인 모습의 현수교(길이 120m).

미술관은 예서 500m. 그러나 보이지는 않는다. 산에 가로막힌 탓이다. 산 너머 미술관은 이 산을 뚫어 만든 터널로 이어진다. 리셉션 건물 앞에서 부드러운 커브의 야트막한 언덕길을 걸어 오른다. 양 옆에 벚나무가 줄지어 선 멋진 산책로다. 한 어부가 강물에 떠내려 온 복숭아꽃 향기에 취해 강을 거슬러 오르다가 동굴을 지나 찾았다는 무릉도원. 바로 그 길의 현실 판이다.

이윽고 터널. 이상향으로 연결시켜 주는 통로다. 그러나 터널은 왼편으로 휘어 출구가 보이지 않는다. 내부는 신비롭다 할 만큼 분위기가 독특하다. 바깥 세상의 햇빛을 터널 안으로 끌어들이는 무광택 스테인리스스틸 재질의 잿빛 벽과 천장 덕분이다. 그 빛은 터널 안으로 들어갈수록 명도가 낮아진다. 그러다 터널 중간쯤에 이르면 반대편 입구가 나타나면서 거기서 일어나는 빛의 폭발적 유입으로 인해 터널 내부는 빛의 안개에 휩싸인다. 빛의 유입을 통해 무릉도원의 이상향을 극적으로 암시하는 기발한 터널 설계. 대 건축가의 면모가 느껴진다.

○복숭아꽃 대신 벚꽃 핀 무릉도원

그 터널 뒤로 보이는 것이 미술관. 무릉도원의 핵심이다. 그러나 도원을 향한 길은 터널에서 다리로 이어진다. 그 다리. 의문투성이의 기발한 다리다. 무너지지 않고 스스로 버틸 수 있을까 싶을 만큼 희한한 구조의 현수교(길이 120m)다. 다리라기보다는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상상 속의 현악기로 보일 만큼 그 형상이 아름답다.

그 다리 끝에서 만나는 유리 지붕의 미술관 건물. 박공형의 지붕은 일본 전통건축에서 왔다. 계단을 오르자 가부키 무대의 장식처럼 반원이 그려진 네모난 유리의 여닫이문이 닫힌 채로 하나의 원을 형성한 자동문이 보인다. 그 안으로 보이는 실내. 유리지붕으로 쏟아지는 햇빛이 석회암 바닥과 연한 미색의 석회암 벽을 흉내 낸 컬러 콘크리트 벽에 반사되어 화사하다.

미호미술관 로비의 풍경. 통유리창을 통해 바깥의 산과 계곡, 숲의 풍광을 감상하게 된다.

로비로 들어서자 감탄사가 터진다. 정면 통 유리창을 통해 펼쳐지는 풍광 때문이다. 수많은 산이 중첩되어 다가오는 멋진 산악. 구름 피어 오르는 계곡을 배경으로 통 유리창 앞에는 세 그루의 노송이 있다. 감상객에게 분명한 원근감을 제공해 풍경을 좀 더 입체적으로 즐기도록 하기 위한 설계자의 눈에 보이지 않는 배려다.

페이는 프랑스 파리의 루브르박물관 안마당에 유리 피라미드 건축물(그랑 루브르)을 지은 이다. 홍콩의 중국은행타워(Bank of China Tower), 미국 워싱턴의 국립미술관 동관(신관) 역시 그의 작품이다. 페이는 미술관 건축설계를 의뢰받자 거대한 산과 계곡으로 둘러싸인 주변을 둘러본 뒤 무릉도원의 이상향을 건축을 통해 실현하는 설계를 내놓았다. 따라서 그의 작품 ‘샹그릴라’는 이 미술관은 물론, 다리와 터널을 포함한 시가라기 고원 산악의 자연까지 모두 포함한 것이다.

그는 자연을 가능한 한 해치지 않기 위해 미술관 건물 용적의 80%를 지하에 가뒀다. 그리고 유리지붕을 통해 자연의 빛과 하늘, 구름 등을 실내로 끌어들였다. 미술관에는 이집트 그리스 중국 등 고대문명과 아시리아 페르시아 등 서아시아와 일본의 고미술품이 상당수 진열돼 있다. 페이는 일부 전시물의 경우에는 조명까지도 직접 설계했다. 미술관 로비에서 바라다보이는 산악 풍경에 인공의 것으로는 단 두개가 있다. 미술관 건축주인 종교재단의 종탑과 성전이다. 종탑은 페이가, 성전은 9·11테러로 폭파 붕괴된 미국 뉴욕의 월드트레이드센터 설계자인 미노루 야마사키(1912∼1986·일본계 미국인)의 작품이다. 이런 건축물을 시가라기 산속에서 만난다는 것. 이 자체가 무릉도원을 만나는 것만큼이나 신선하고 충격적이다. 그래서 이곳은 여행길에 들러 볼 만하다.

시가현(일본)=조성하기자 summer@donga.com

▼여행 정보▼

◇미호 미술관

▽찾아가기=①간사이국제공항(오사카)∼JR특급(하루카·1시간15분 소요)∼교토∼JR도카이도혼센(15분 소요)∼이시야마역 하차. ②오사카(우메다)JR오사카역∼JR도카이도혼센(41분 소요)∼이시야마역. 이시야마역에 내리면 미호미술관행 버스가 있다. 50분이 소요되며 운행은 평일은 4회(오전 9시10분부터 1시간마다), 주말 및 공휴일은 7회(오전 9시10분∼오후 2시55분) 출발. 미술관 위치는 C8면의 지도 참조.

▽개관=3월 중순∼6월 상순, 7월 20일∼8월 중순, 9월 1일∼12월 중순(겨울은 휴관). 관람은 오전 10시∼오후 5시(토요일은 오후 7시까지). 월요일은 쉰다. 입장료 1000엔.

▽벚꽃=미술관 터널 입구에 줄지어 심어진 벚나무에서 꽃이 만발하면 그 분홍빛이 터널 내부의 스테인리스스틸 벽에 반사돼 환상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4월 중순이 절정기.

▽홈페이지=www.miho.or.jp(일본어 영어 중국어)

▽현지전화=0748-82-3411

일본시가현=조성하기자 summe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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