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르단출신 30代 테러리스트 자카위를 잡아라”

  • 입력 2004년 2월 11일 18시 3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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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군은 이라크전 개전 이튿날 무려 40여발의 크루즈미사일을 이라크 북부 쿠르말지역에 퍼부었다. 이곳은 군사요충지로 보기엔 한가한 곳. 미군의 타깃은 한 사람, ‘미스터 자카위’로 불리는 의문의 테러리스트였다.

아마드 파딜 나잘 알 카라일레(37). 옛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에 맞서 싸웠던 요르단의 20세 열혈 청년이었던 그는 17년 만에 오사마 빈 라덴에 못지않은 가공할 테러 지도자로 성장했다. 그는 6년째 서방의 추적망을 따돌리며 요르단 아프가니스탄 이란 이라크 등을 넘나들면서 중동지역 테러를 여전히 지휘하고 있다.

▽테러리스트로 성장=자카위는 24세이던 1991년 아프가니스탄에서 고향으로 돌아왔다. 이때는 몇 시간이고 코란을 암송하며 이슬람교에 심취했다. 결혼도 했고 비디오대여점도 운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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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테러리스트의 길에 들어선 것은 요르단 정부의 탄압 때문. 요르단 정부는 아프가니스탄전쟁에서 돌아온 전사들의 소요를 우려하고 있었고, 자카위는 92년 투옥돼 7년간 수감생활을 했다. 출옥한 뒤 그는 테러리스트로 변신했다. 요르단 왕정을 타도해야 한다는 의식을 품게 된 것. 요르단 성지를 방문한 미국 이스라엘 관광객들에게 총격을 가하기도 했다.

▽고유 조직 구축=자카위는 친척과 친구뿐 아니라 다양한 국가 출신의 동조자를 규합해 조직을 꾸리는 데 탁월한 재능을 발휘했다. 요르단 정부의 감시를 피해 파키스탄으로 잠입한 뒤 요원들의 훈련을 위해 알 카에다와 연계하기도 했다.

그는 2000년 말 아프가니스탄 서부 헤라트 인근에 독자적 훈련캠프를 차려 ‘헤라트그룹’을 이끌기 시작했다. 알 카에다의 자금 지원을 대가로 이스라엘에 대한 청부 테러를 감행해 알 카에다와의 관계는 지속됐다. 이슬람 과격단체 안사르 알 이슬람과도 우호관계를 맺었다.

자카위는 이어 해외 추종자를 확보해 ‘무하나드’라는 암호명으로 독일 내 유대인들에 대한 공격을 지시하는 등 점차 국제적인 테러리스트로 부상했다. 그러나 해외 테러는 각국 정보기관들의 사전 차단으로 성공하지는 못했다.

그는 2001년 12월 미군의 아프가니스탄 공습 때 한쪽 다리를 심하게 다쳐 의족을 달고 활동한다.

▽향후 테러 전략=이라크 주둔 미군은 1월 알 카에다의 연락책 1명을 체포해 컴퓨터 디스켓 한 개를 압수했다. 이 디스켓에는 자카위가 직접 쓴 것으로 보이는 17쪽 분량의 편지가 담겨 있었다.

이 편지는 저항세력이 맞서 싸워야 할 4개의 적으로 △이라크 경찰 △미군 △쿠르드족 △시아파 등을 적시하고 있다.

미군 당국은 이에 따라 지난해 8월 나자프의 시아파 이슬람 사원과 바그다드 유엔사무소 폭탄 테러, 11월 이탈리아 경찰본부를 상대로 한 테러에 자카위가 깊이 간여했다고 판단하고 있다.

10일 최소 55명의 사망자를 낸 바그다드 인근 경찰서 폭탄테러 역시 자카위의 ‘주적론’에 따른 공격일 것이라는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이진기자 leej@donga.com

김정안기자 cred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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