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라크 美軍 사기 ‘바닥’…7개월동안 14명 자살

  • 입력 2003년 10월 17일 18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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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라크 주둔 미군의 실상은 미 행정부나 미군사령부가 주장하는 사기충천과는 상당한 거리가 있는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USA 투데이와 워싱턴 포스트 등 미국 언론은 이라크 주둔 미군의 자살률이 평균을 크게 웃돌고, 사기 저하도 심각한 수준이라고 잇따라 보도했다.

▽자살자 속출=13일 USA 투데이 보도에 따르면 이라크전쟁 개전 후 7개월 동안 이라크 주둔 미군 14명이 자살했다. 미군 당국은 이 밖에 자살로 추정되는 12건의 사망사건을 조사 중이다.

자살이 확실한 14명만을 10만명당 자살률로 환산해 보면 연간 17명으로 미군 전체 평균 자살률 8, 9명을 크게 웃돌고 있다.

대부분의 자살사건은 종전 선언이 이뤄진 5월 1일 이후 발생했다.

이에 따라 미군 당국은 지난달 정신과 의사, 심리학자, 사회봉사활동가, 군 자살방지 프로그램 운영자로 구성된 팀을 이라크로 급파해 원인과 실태를 파악하는 한편, 정신건강에 문제가 있는 병사 478명을 귀향 조치한 것으로 전해졌다.

신문은 전문가의 말을 인용해 장기 주둔에 따른 스트레스와 열악하고 위험한 생활여건이 자살 원인이라고 분석했다. 실탄에 쉽게 접근할 수 있다는 점도 한 이유로 꼽았다.

임상심리전문가 심영섭씨는 “감옥처럼 외부로부터 고립된 상황과 전시라는 극한상황이 ‘죽음 외에는 탈출구가 없다’는 자살충동을 불러 온다”고 분석했다.

▽“사기 저하 심각하다”=미국의 국방일보 격인 성조지는 이라크 주둔 미군을 광범위하게 면담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34%가 사기가 낮다고 응답했다고 16일 보도했다. 37%는 보통, 사기가 높다는 응답은 27%였다.

응답자의 절반은 이라크 파견군에 재입대할 계획이 없다고 답했다. 이라크전쟁은 거의 또는 전혀 가치가 없는 전쟁이라고 대답한 미군도 31%나 됐다.

이번 조사는 세 팀의 기자단이 9월 10∼31일 남쪽 쿠웨이트 접경 움카스르부터 북쪽 터키 인근 모술에 이르기까지 이라크 전역 50개 미군부대를 돌며 1935명을 인터뷰한 결과다.

성조지는 조사 결과를 토대로 15일부터 ‘진실(Ground Truth)’이라는 제목의 7회분 기획 시리즈를 연재하고 있다.

워싱턴 포스트는 16일 국방부로부터 재정지원을 받지만 편집권이 독립돼 있는 성조지의 조사 결과는 이제껏 미 행정부나 이라크 주둔 미군사령부가 말한 ‘사기충천’과는 대조적이라고 지적했다.

조지 W 부시 미 대통령은 최근 “언론이 이라크 상황을 너무 부정적으로 묘사하고 있다”고 비난하면서 “이라크 주둔 미군의 생활은 당신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좋다”고 주장했었다.

워싱턴 포스트는 “미 행정부 고위급 인사들이 현지에서 접촉한 미군은 극소수인 데다 군 사기에 대한 불평은 군법에 따른 징계대상”이라면서 미 행정부의 상황파악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김성규기자 kims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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