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전력 민영화 '허점'

  • 입력 2003년 8월 18일 18시 55분


미국과 캐나다의 5000만명을 한때 암흑세계로 몰아넣은 정전사태는 복구됐지만 후폭풍이 만만치 않다. 사고를 불러오는 데 한몫한 전력산업 민영화와 규제완화에 대한 공과 및 재발방지책을 둘러싼 논란이 미국을 뜨겁게 달구고 있다.

▽거미줄을 탄 정전 도미노=전문가들이 의문을 제기하는 대목은 ‘14일 오후 4시경 최초 3개의 송전선에 일어난 정전사태가 왜 통제되지 못 했는가’ 하는 점이다. 이 송전선들은 오하이오주 클리블랜드 인근에 설치된 것으로 펜실베이니아, 뉴저지 등 3개주 수백만명에게 전기를 팔고 있는 퍼스트 에너지사의 관리구역에 속해 있다. 뉴스위크는 최근 이 회사가 적잖은 법정 및 재정문제에 시달려왔다고 전했다.

미 사회가 경악한 것은 불과 수분 만에 미 북동부 8개주와 캐나다 일부를 마비시킨 ‘전염성’이다. 이 일대는 냉방수요가 집중되는 여름철에도 일상적인 전력소비량이 발전 설비능력의 75%에 불과하다. 전체적으로는 설비용량을 넘어서는 과부하가 걸리지 않았는데도 일부 송전선의 문제가 시스템을 마비시킨 것.

북미의 송전선은 거미줄처럼 얽혀 있다. 이번 사태에서는 엄청난 과전류가 갑자기 방향을 바꾸는가 하면 발전소까지 위협하는 바람에 자동 차폐장치가 작동됐다.

▽전력시장 민영화=1930년대부터 구성된 미 전력망은 ‘거미줄’의 특성을 지녔다. ‘생산 즉시 소비돼야 하는’ 전력산업의 특성상 처음부터 어느 한곳에 전기가 부족하면 인근 동네에서 꿔올 수 있도록 설계한 것.

당초 한 회사가 일정구역 내에서 발전과 송전을 독과점하는 형태로 운영했으나 1992년의 전력산업 규제완화로 발전 송전 배전부문이 분리됐다. 이에 따라 발전설비가 없는 영세업체도 생산단가가 싼 다른 지역 업체의 전기를 들여와 소비자에게 팔 수 있게 됐다. 예컨대 뉴욕의 서비스업체가 전기값이 싼 미시간주의 전기를 들여와 뉴욕시민에게 판다.

생산-도매-소매부문을 합한 전력업체는 2001년 850개를 넘어 전력산업은 자유경쟁시장으로 탈바꿈했다. 덕택에 1996년에 비해 2001년 전기요금은 주택용 및 상업용은 13%, 산업용은 4.8% 내려갔다.

▽민영화의 함정, 송전부문 투자=그러나 이번 사태로 민영화의 허점도 분명해졌다. 1975년부터 현재까지 경제규모는 두 배로 커졌는데도 송전부문의 연간 투자는 50억달러에서 20억달러로 줄었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는 18일 “미국 250개 송전업체들의 최근 10년간 인프라 투자액이 시장과 영토가 훨씬 작은 영국 3개 업체와 비슷하다”고 지적했다.

지난해 스펜서 에이브러햄 미 에너지부 장관은 “미국의 송전체계는 10년 내 경제수준을 따라가지 못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그러나 조지 W 부시 행정부는 신자원 개발과 요금체계 개선에만 정책 초점을 맞춰 이익단체간 로비전쟁만 양산했다는 평가다.

▽‘시장실패’를 보완한다=현재로선 미국 송전업체들이 전선망에 투자할 이유가 없다. 송전망이 거미줄처럼 연결돼 어디를 손봐야 할지 알기 어렵고 거액을 들여 시설투자를 해도 경쟁업체에 무임승차를 허락하는 셈이 된다. 환경 문제도 만만치 않다.

전문가들은 발전업체가 송전설비에 투자하면 정부 보조금을 주거나, 노후 송전망을 연방정부가 교체하는 민영화 보완책을 제시하고 있다. 이 밖에 지역이기주의를 극복하기 위해 송전망 허가권을 연방정부가 갖는 방안도 강구되고 있다.


박래정기자 ecopark@donga.com

김승진기자 sarafin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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