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타가트 前영남대교수 美서 별세 뒤늦게 알려져

  • 입력 2003년 8월 8일 19시 13분


98년 7월 ‘자랑스런 영남대인상’을 받은 맥타가트(앞)가 제자들과 함께 기뻐하고 있다. -사진제공 영남대
98년 7월 ‘자랑스런 영남대인상’을 받은 맥타가트(앞)가 제자들과 함께 기뻐하고 있다. -사진제공 영남대
44년 동안 한국에 살면서 ‘한국인보다 한국을 더 사랑한 교육자’로 알려진 전 영남대 영문과 아서 맥타가트 교수가 지난달 15일 미국 워싱턴 근교 양로원에서 89세를 일기로 생을 마감했다.

며칠 전 맥타가트씨의 별세 소식을 접한 한국의 제자와 지인들은 9일 오후 2시 영남대에서 추모식을 가질 예정이다.

제2차 세계대전 후 미국의 명문 사립대인 스탠퍼드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그는 1953년 6·25전쟁 당시 주한 미 대사관의 재무관으로 근무하면서 한국과 인연을 맺었다.

이후 그는 틈틈이 서울대 고려대 경북대 등에서 미국문학과 미술평론 등을 강의하면서 한국 사랑을 쌓았다.

76년 미 국무부에서 퇴직한 뒤 곧바로 영남대 영문과 교수로 부임한 그는 97년 퇴임할 때까지 철저한 근검절약으로 돈을 아껴 학생들의 장학금을 마련했다.

맥타가트씨는 월 30만원 안팎의 최소 생활비를 제외하곤 월급과 연금 등을 모두 장학금으로 내놓았다. 장학금에 보태기 위해 소장하고 있던 화가 이중섭의 그림을 팔기도 했다. 그동안 장학금을 받은 학생이 200여명이고 금액은 2억6000만원에 이른다. 그의 도움을 받은 학생들이 고마움의 표시로 ‘우정장학회’라는 모임을 만들기도 했다.

맥타가트씨의 한국 사랑은 퇴임 후 미국으로 건너간 뒤에도 이어졌다. 40년 동안 한국 문화에 대한 애정으로 모은 신라토기 고려청자 등 문화재 480점을 2000년 국립중앙박물관에 기증했다.

이로 인해 그는 ‘명예 대구시민증’ ‘자랑스러운 영남대인 상’ ‘대한민국 문화공로훈장’ 등을 받기도 했다.

그는 생전에 승용차를 몰지 않았다. 차를 몰고 다니면 아름다운 한국을 제대로 보지 못한다는 이유에서였다.

장학금을 받아 공부했던 박영호(朴永浩·42·대구전시컨벤션센터 직원)씨는 “교수님은 독신으로 사셨지만 언제나 주변에 사람들이 몰려들 정도로 인간적인 매력이 넘쳤다”며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듣고 너무 마음이 아파 추모 행사를 마련했다”고 말했다.

추도문을 읽을 김용권(金容權·73) 전 서강대 대학원장은 “53년 겨울에 만난 이후 수십년 동안 곁에서 본 바 교수님이 한국과 제자들에게 보여준 사랑은 ‘살아있는 성자(聖者)’라는 말 이외에 달리 표현하기 어렵다”며 “교수님이 보여준 큰 사랑은 오래도록 한국인의 가슴에 남을 것”이라고 말했다.

대구=이권효기자 boria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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