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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3년 6월 11일 18시 4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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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한국은 뒤늦게 청년실업이 늘기 시작했지만 증가 속도가 매우 빠르다. 지난해 말 현재 청년실업률은 12.3%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주요국 중 프랑스에 이어 두 번째. 이는 전체 실업률 3.3%의 4배 가까운 수준이어서 청년실업이 영구실업으로 굳어질 경우 사회전체가 고실업사회로 돌입하는 것은 시간문제다. 주요국 청년실업 실태와 대책 등을 알아본다.》
일본 교토(京都)시의 전직 공무원 A씨(67)는 식당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차남(30)을 볼 때마다 속이 상한다. 아들은 대학을 졸업한지 8년이 됐지만 이렇다 할 직장에 취직한 적이 없다. 분식점 피자가게 등에서 시간제로 일하면서 돈이 생기면 음반을 사는 게 유일한 낙. 보다 못한 A씨가 공무원 시험원서를 6번이나 구해다 줬지만 번번이 떨어졌다. 아들은 면목이 없는지 자기 방에 틀어박혀 밥도 따로 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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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실업의 그늘 ‘프리타’=일본에서는 A씨 아들처럼 아예 취업을 포기하고 아르바이트로 연명하는 이들을 ‘프리타’로 부른다. ‘프리(free)’와 ‘아르바이터(arbeiter)’를 합친 일본식 조어. 일본 정부는 ‘학생과 주부를 제외한 15∼34세 인구 중 파트타임이나 아르바이트로 일하거나 취업 의사를 가진 무직자’로 규정한다.
경기침체가 10년 이상 지속되면서 일본의 고용사정은 전후 최악이다. 4월 실업자 수는 385만명으로 사상 최고 수준. 3년 전 4%대였던 완전실업률은 지난해 말 5.4%로 치솟았다. 그중에서도 15∼29세의 청년실업률은 10.7%로 전체 실업률의 두 배나 된다.
완전실업은 아니지만 실업상태에 가까운 프리타도 급증하고 있다. 불황 초기인 1991년에 183만명에 불과했지만 2001년엔 417만명으로 늘었다. 15∼34세의 인구 중 프리타의 비율도 10년 전 10.4%에서 2001년 21.2%로 상승했다. 5명 중 1명은 프리타인 셈이다.
이들의 취업 양태는 ‘쓸 만큼만 벌고, 번 만큼만 쓴다’로 요약된다. 어차피 ‘뜨내기’ 일자리인 만큼 미래에 대한 투자보다는 당장의 자유와 취미생활을 더 소중히 한다. 그래서 필요한 돈이 모이면 주저 없이 아르바이트를 그만두었다가 돈이 떨어지면 다시 파트타임 일자리를 구하는 생활이 반복된다.
▽일본 경제에 주름살=프리타의 길을 택한 대다수가 처음부터 정상적인 직장 찾기를 포기한 것은 아니다. 우선 임시로 프리타가 됐지만 마음에 드는 직장만 생긴다면 언제든 취직하겠다는 계획이었다.
그러나 장기불황은 그런 희망을 앗아갔다. 10년 전 아르바이트로 사회에 첫발을 내디뎠던 프리타 1세대들은 30대 중반이 돼서도 사회에 적응하지 못한 채 겉도는 신세다. 프리타가 제대로 된 직장을 잡는 경우는 거의 드물어 청년실업이 영구실업으로 이어진다.
단순히 실업문제뿐 아니다. 전문가들은 프리타가 일본 사회 전체의 활력과 경쟁력을 떨어뜨리는 부메랑 효과를 걱정하고 있다.
우선 20대 독신 남녀들이 건강보험료와 임대료가 부담스러워 독립할 엄두도 못 내고 부모에게 붙어산다. 독신으로 지내는 탓에 일본사회의 고민거리인 인구 감소의 원인이 된다. 젊은 인력이 식당이나 공사장 아르바이트 등 ‘1회용 일자리’를 전전하는 바람에 기업에서는 수십년간 축적한 전문 기술이나 지식을 전수하지 못하고 생산성도 떨어진다.
일본 정부는 90년대 초 프리타의 증가를 조직문화에 얽매이기 싫어하는 새로운 문화현상 정도로 치부했다가 사태가 심각해지자 뒤늦게 대책마련에 나섰다. 정부는 최근 ‘젊은층 자립 도전플랜’을 만들어 △프리타 취업촉진센터 설립 △직업훈련 기회 확대 △학교교육과 기업실습의 연계 강화 등을 실시하겠다고 밝혔지만 효과는 아직 미지수.
청년실업을 방치하면 당사자와 가족의 고통은 물론 사회 전체의 미래도 암울해진다는 사실을 일본의 프리타가 보여주고 있다.
도쿄=박원재특파원 parkwj@donga.com
▼고스기 日 노동硏연구원 "중장년위주 고용에 프리타 급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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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청년 실업이 심각해진 것은 정부가 중장년층의 고용에만 신경을 쓴 탓도 크다. 청년 실업은 사회의 장래와 직결된다는 점에서 정부와 기업이 함께 고민해야 할 문제다.”
일본노동연구기구의 고스기 레이코(小杉禮子.사진) 부총괄연구원은 “프리타가 급증한 것은 정부가 젊은 층은 당장 취업을 못해도 아르바이트는 구하기 쉬울 것이라며 안이하게 대응했기 때문”이라며 “한국도 이를 참고해 대책마련을 서둘러야 할 것”이라고 충고했다.
그는 특히 “프리타 생활이 오래 지속되면 취업의욕과 능력이 고갈될 수밖에 없다”며 “정부가 직업훈련에 보조금 등을 투입해 직접 나서야 한다”고 지적했다. 기업도 효율성만 놓고 보면 직원을 파트타임으로 채용하는 편이 유리하겠지만 이런 고용패턴은 장기적으로 생산성을 떨어뜨리는 요인이 된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최근 비정부기구(NGO)에 대한 젊은층의 관심이 높아진 만큼 이런 기구에서의 활동도 취업선택의 대상이 될 수 있도록 제반 환경을 정비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美…최근 2년새 일자리 250만개 사라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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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은 이제 사고의 틀을 깨버려야 합니다. 직장이 없다 해서 뭐가 문제입니까.”
며칠 전 미국의 한 대학에서 초청연사가 ‘노골적인’ 연설을 하자 졸업생들이 환호성을 질렀다. ‘직장을 구하지 못한 사람이 나 말고도 많다’고 안심을 시켜 준 때문일까.
한 구직사이트에 있는 ‘2003학번(미국에서는 졸업연도를 학번으로 함) 졸업생들에게 행운을!’이라는 칼럼은 “현재 구직상황은 4년 전인 1999년보다 훨씬 나쁘다. 당시에는 대졸자 채용을 줄이겠다는 기업이 8.4%에 불과했지만 올해는 42.4%로 높아졌다”고 전했다.
불경기를 맞은 기업들이 신규 채용을 줄이는 것은 물론 갓 입사한 신입사원들까지도 가차 없이 해고하고 있는 것. 시카고의 직업소개소 대표인 존 챌린저는 “수년간의 직장 경험을 갖고도 초임 수준만 받겠다는 재취업 희망자도 많다”고 설명했다.
그동안 ‘고액연봉의 보증서’로 여겨졌던 경영대학원(MBA) 졸업장도 약효가 떨어졌다. 월 스트리트 저널은 지난달 “MBA 출신의 취업률이 2001년 80∼95%에서 올해는 50∼70%로 낮아졌다”고 전했다. 이들은 더 좋은 기회를 위해 직장을 팽개치고 MBA 과정에 들어갔다가 새 직장을 잡지 못해 “바위틈에 끼어 있다”고 이 신문은 덧붙였다.
미국의 전체 실업률은 지난달 6.1%로 9년 만의 최고치. 1980년대 이후 최악의 구직난이다. 2001년 2월 이후 일자리 250만개가 사라졌다. 미 노동부는 “27개월간 일자리가 계속 감소한 것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처음”이라고 한탄한다.
다행히 최근 들어 해고 추세가 주춤해 최악의 사태는 지나간 것 아니냐는 기대가 나오고 있다. 2, 3월 중 20만명이 해고됐지만 4, 5월 중엔 약간이나마 고용이 증가한 것. 그러나 이는 서비스업 채용 증가 덕분이며 제조업은 5월까지 34개월 연속 고용 감소세를 이어갔다.
뉴욕=홍권희특파원 konihong@donga.com
▼유럽…佛 노동시간 줄여도 고용 안늘어 고민▼
1998년 프랑스 시사주간지 렉스프레스는 프랑스 청년 실업자의 80%가 부모 품을 떠나지 않고 있다며 ‘캥거루족’이라고 불렀다. 청년 실업률이 무려 20%에 달했던 당시 이 기사의 반향은 컸다. 마르틴 오브리 노동부 장관은 즉각 주당 39시간의 법정 근무시간을 35시간으로 줄여 고용기회를 늘리자고 제안했다.
그의 이름을 딴 ‘오브리법’은 2000년에 제정돼 직원 20명 이상의 사업장에서 시행되고 있다. 결과는 어떨까.
오브리 장관은 이 법의 시행으로 70만명의 추가 고용 효과가 나타날 것이라고 장담했다. 그러나 현실은 그에 못 미친다. 오히려 39시간에 해야 할 일을 35시간에 하기 때문에 노동 강도만 세졌다는 불만도 나온다. 지난해 말 현재 15∼29세의 청년 실업률은 16.2%로 다소 낮아졌지만 여전히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최고수준이다.
영국(12.0%) 독일(9.1%) 등 다른 유럽 국가들도 높은 청년 실업률을 기록하고 있다. 그러나 한국처럼 청년 실업 문제가 크게 두드러지지 않는다.
유럽 각국의 실업률이 10%에 육박할 정도로 워낙 높기 때문. 또 자국민보다는 아랍계 이민의 청년 실업률이 훨씬 높아 상대적으로 덜 주목받고 있다. 벨기에의 30세 미만 청년 실업률은 11.6%인데 반해 이슬람계 청년 실업률은 40%나 된다.
OECD에 파견 중인 노동부 정형우 서기관은 “유럽 국가들은 청년 직업 훈련을 통해 청년층의 취업 기회를 늘리고 실업 수당 등 사회보장을 줄여 구직 의욕을 키우는 방향으로 청년 실업에 대처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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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박제균특파원 phar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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