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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3년 5월 21일 18시 4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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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일본 정계의 보수 우경화 흐름을 감안할 때 이 같은 행보는 어느 정도 예견된 것이지만 그 속도가 예상보다 훨씬 빠르고 수뇌부의 발언 수위도 연일 높아지고 있다는 점에서 심상치 않다.
일부 우파 정치인들은 북한의 일본인 납치와 핵개발 등을 빌미로 자위대의 전수(專守·수비에 전념하는 개념)방어 원칙을 수정해 여차하면 ‘적국’에 대한 선제공격도 불사해야 한다는 강경론을 펴고 있다.
▽금기 없어진 일본의 재무장화=유사법제 통과는 제2차세계대전 패전 후 반세기 이상 일본 정계를 지배해온 ‘터부’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극명하게 보여줬다. 군국주의 시대를 연상시킨다는 이유로 금기시된 일본의 재무장화 논의가 이제는 누구든 공개석상에서 거리낌없이 거론할 발판이 마련된 것.
재무장화의 핵심은 자위대(自衛隊)의 집단적 자위권(동맹국에 대한 공격을 자국에 대한 공격으로 간주해 반격할 수 있는 권리) 인정과 전수방어 개념의 수정. 우익세력은 틈날 때마다 북한의 핵개발을 들먹이면서 “언제 어떤 행동을 할지 모르는 북한의 위협에 대비하려면 자위대를 ‘족쇄’에서 풀어줘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집권 자민당도 일본 국민의 불안심리가 높아진 상황을 자위대 위상 강화의 기회로 이용하고 있다. 앞으로 일본의 정치일정도 내년 말 의회의 헌법개정안 마련에 앞서 관련법 개정을 통해 자위대의 활동범위를 넓히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는 2001년 4월 취임회견에서 “자위대가 군대가 아니라는 전제를 붙이면 부자연스러운 문제가 많이 생긴다”며 운을 뗐고, 이후로도 야당과 양심세력이 반발하면 한발 물러서는 척했다가 다시 언급해 기정사실화하는 전략을 써왔다.
▽가시권에 들어선 헌법 개정=도쿄신문은 고이즈미 총리의 자위대 관련 표현이 노골적인 것은 유사법제 처리 과정에서의 자신감을 반영한 것이라고 해석했다. 제1야당인 민주당의 동의를 이끌어내 중의원에서 압도적 찬성으로 통과되자 이런 분위기라면 헌법 개정도 불가능하지만은 않다는 자신감을 갖게 됐다는 것이다.
일본에서 헌법을 개정하려면 중의원과 참의원 3분의 2 이상의 찬성으로 발의해 국민투표에서 과반수 이상의 찬성을 얻으면 된다.
헌법 개정은 자위대의 재무장화는 물론 상징적 존재인 천황의 국가원수화로 이어질 소지가 크다.
일본의 재무장화와 개헌 움직임은 북한 핵문제에 가려 한국 중국 등 인접국의 주의를 끌지 못하고 있다. 미국 정부는 동아시아에서 군사적 부담을 덜 수 있다는 이유로 일본의 재무장을 은근히 환영하는 분위기이고 한국 정부는 북한 핵문제와 관련해 일본 정부와의 조율이 절실하다는 점에서 애써 외면하려는 기류도 감지된다.
도쿄=박원재특파원 parkw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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