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맹이 빠진 ‘사스 자문위’…방사선 전문醫 미포함 판정 지연

  • 입력 2003년 4월 14일 18시 21분


보건당국이 국내 첫 사스(SARS·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 추정환자 판정 여부를 놓고 13, 14일 이틀간이나 머뭇거린 데는 국립보건원의 자문위원회 인적 구성에 가장 큰 원인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진성환자 여부는 환자의 폐를 찍은 X선 필름 판독 결과가 결정적인 역할을 하지만 자문위원에는 방사선 전문의가 포함돼 있지 않아 이를 자신 있게 판독할 수가 없었기 때문으로 알려졌다.

국립보건원은 사스가 확산되고 있던 시점인 지난달 중순 전문가 네트워크를 구성했고 이후 여러 차례 자문위원회를 소집해 중간점검을 했다. 13일은 휴일인데도 자문위원 8명 중 7명이 사스 여부를 판정하기 위해 신속하게 모였다.

그러나 자문위원회는 13일 회의에서 현재 서울시내 모 격리병원에 입원 중인 L씨(27·여)의 폐를 찍은 X선 필름을 놓고도 그가 진성환자인지를 판단하지 못했다. 자문위원들이 X선 필름을 자신 있게 판독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보건원이 위촉한 자문위원들의 전공은 감염내과와 소아과 등이었고 방사선 전문의는 포함돼 있지 않았다.

이와 관련해 한 자문위원은 “내과교수들도 X선 필름을 판독할 수 있지만 방사선 전문의의 공식 인정이 필요했다”고 밝혔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최근 사스 위험지역을 다녀왔거나 환자와 가깝게 접촉해 고열 등의 증상을 보이는 의심환자가 X선 촬영 결과 폐렴 증상을 나타내면 사실상 진성환자인 추정환자로 분류하고 있다.

게다가 사스로 인한 폐렴이 이른바 ‘비정형 폐렴’으로 기존 폐렴과는 다른 양상을 보이는데다 L씨의 X선 필름 한 장에는 폐렴 증세가 있다는 의견도 나와 최종 판정을 더 힘들게 했다.

이 X선 필름은 이동식 장비로 촬영한 것이어서 상태가 나쁜 것으로 알려졌다.

방역당국은 “다른 환자들도 사용하는 X선 장비로 찍을 경우 사스 병원체가 옮을 우려가 있기 때문에 이동식 장비를 L씨의 병실에 갖다놓고 사용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L씨는 위험지역을 다녀왔고 잠복기 동안 고열과 기침, 근육통 등의 증세를 보여 사스로 충분히 의심할 만한 상황이었기 때문에 X선 필름 판독에 모든 게 걸린 상황이었다.

중국 베이징(北京)이 사스 위험지역으로 분류됐다가 해제된 뒤 다시 위험지역이 된 과정도 혼란을 부추기는 데 한몫했다. WHO는 3월27일 베이징을 위험지역으로 지정했다가 1일 해제했고 11일 다시 지정했다.

이 진기자 lee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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