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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3년 4월 2일 19시 0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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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뛰어내린 호텔 옆 길가는 애도의 뜻을 담은 흰 장미와 분홍 카네이션으로 뒤덮였다. “만우절 거짓말인 줄 알았는데… 믿어지지 않아요” “우리 모두 오빠를 그리워할 거예요”라는 메시지들이 꽃다발 위에 꽂혀 있었다. 팬 사이트(www.lesliecheung.com) 등에도 애도의 글이 쏟아졌고 TV와 라디오 방송사들은 장궈룽에 대한 프로그램을 긴급 편성하고 그의 노래를 계속 내보내고 있다.
장국영 출연작 화보모음
☞ 장국영출연작 영화정보: 해피투게더|유성어|성월동화
장국영출연 고화질영화: 가유희사|백발마녀전
네이버와 엠파스, 야후 등 한국의 포털사이트에서도 ‘장국영’이 인기 검색어로 떠올랐으며 다음 카페의 ‘장국영 사랑’(http://cafe.daum.net/leslie) 등에는 수많은 팬들이 동시에 접속해 일부 사이트의 서버가 다운되기도 했다.
한 네티즌은 “중고교 시절 점심시간에는 어김없이 ‘영웅본색’ 주제가가 흘렀고 우리 반 아이들은 장궈룽이 공중전화 부스에서 죽어가는 모습을 생각하면서 노래를 따라 불렀다”며 “한 시절을 함께 보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배우의 죽음”이라고 슬퍼했다.
팬들이 남긴 추모의 글 중에는 장궈룽이 대표작 ‘아비정전’에서 “죽기 전까지 땅에 내려앉지 못하는 발 없는 새”를 이야기하던 장면을 빗대어 ‘부디 천국에서는 자유로운 새가 되길 바란다’는 글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그의 자살 원인에 대해 추측이 무성하지만 동성애자 애인과의 불화 때문이라는 설이 유력하다. 싱가포르의 유력 일간지인 스트레이츠 타임스는 “장궈룽이 2000년 미국 타임지와의 인터뷰에서 자신이 양성애자라고 밝힌 적이 있으며 오래된 동성애자 연인인 탕허더(唐鶴德)와 최근 결별한 것으로 알려졌다”고 보도했다.
장궈룽은 1일 오후 4시경 만다린 오리엔탈 호텔에 체크인을 했으며 2시간40분 뒤 시체로 발견됐다. 홍콩의 일부 언론은 그가 투신하기 전 호텔에서 탕씨를 만나 결별 요구를 받고 몹시 화를 냈다고 보도했다.
‘홍콩의 직물왕’이라고 불리는 유명 직물상의 자녀 10명 가운데 막내로 태어난 장궈룽은 먼저 가수로 이름을 알렸고 79년 영화계에 데뷔했다. 86년 ‘영웅본색’을 통해 본격적으로 알려지기 시작했고 93년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작 ‘패왕별희’(감독 첸 카이거), 97년 칸 영화제 감독상 수상작 ‘해피 투게더’(감독 왕자웨이)의 주연을 맡는 등 중화권의 간판 배우로 자리잡았다.
국내에서는 ‘천녀유혼’(87년)으로 선풍적 인기를 얻었고 모 초콜릿 CF에도 출연했다. 92년 캐나다로 이민을 떠났던 그는 97년 홍콩에 돌아와 영화 제작자로 활동의 입지를 넓혀가던 중이었으나, 일생에 단 한 번 죽을 때에만 땅에 내려앉는다는 ‘발 없는 새’처럼 스스로 죽음으로 향하는 비상(飛上)을 선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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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경기자 susanna@donga.com
■장국영 유서 전문
"認識一位二十多歲靑年,在他與 ‘唐唐’ 間不知道如何選擇才好,十分困擾,所以要自殺"
"20대의 청년을 알고 있는데, 내가 그와 '탕탕'사이에서 도대체 누구를 선택해야할지 매우 마음이 혼란스러워서 자살 한다."
■故장국영씨 사고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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