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에서]'현대 아랍 세계의 사회사상'

  • 입력 2003년 3월 14일 19시 1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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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아랍 세계의 사회사상/이케우치 사토시(池內 惠), /고단샤(講談社) 현대신서, 2002년

이번에 소개할 책은 지난해 일본 오사라기 지로(大佛次郞) 논단상 수상 작품이다. 오사라기 지로 논단상은 쇼와(昭和) 초기부터 활약했던 대중소설가인 오사라기 지로를 기념하기 위해 아사히신문사가 제정한 권위 있는 학술상. 갓 서른이 된 1973년생의 젊은 아랍 연구자 이케우치 사토시가 이런 상을 수상해 화제가 됐다.

이 책은 ‘9·11’ 이후의 상황을 의식하면서 저술한 역작으로, 조지 W 부시 정권의 대이라크 정책을 독특한 시점에서 비평하고 있다는 점에 특징이 있다. 잘 알려졌다시피 부시 대통령은 ‘악의 축(軸)’이라는 용어를 구사하면서 ‘서양 대 이슬람’이라는 이분법적인 세계인식의 구도를 공공연히 설파하고 있다. 그는 ‘9·11’ 직후 미국을 ‘십자군’에 비견하는 데 그치지 않고, 더 나아가 ‘God Bless America(미국에 신의 축복을)’라는 메시아적인 발언조차 서슴지 않고 있다. 이는 그리스도교 세계가 천년 이상에 걸쳐 쌓아 온 이슬람에 대한 편견을 적나라하게 옮겨 표현한 것이라 아니 할 수 없다. 아랍 세계를 전공하고 있는 많은 연구자들은 이러한 부시 정권의 편견에 날카로운 비난의 화살을 던지고 있다.

그러나 이 책의 저자인 이케우치의 시각은 그 비판의 뉘앙스에 있어 독특성을 보인다. 그는 많은 아랍 연구자들이 아랍 세계를 너무 열심히 변호한 나머지 아랍 세계를 지나치게 이상적으로 보는 경향이 있다는 점에 주의를 환기시키면서, 오히려 현대 아랍의 사회사상이 크게 폐색(閉塞)되어 있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1967년의 제3차 중동전쟁 이후에는 마르크스주의에 입각한 ‘인민투쟁론’이 대두했었다. 그러나 세계적으로 마르크스주의가 퇴조되자 ‘인민투쟁론’도 급속히 그 영향력을 잃어 갔는데, 그 대신에 출현한 것이 바로 이슬람의 종교적 비전에 입각한 종말론적인 세계관이다.

종말론적 세계관의 주창자들은 때로 ‘유대 음모설’까지 동원하고, 현대사회의 종말 상황과 이슬람의 이상향을 대비하면서 이스라엘에 대한 적대심을 부추기기도 한다. 이들의 저작물은 대체로 요란한 주장과 괴상한 그림들로 채색되어 있으며, 제목에는 언제나 ‘최후의 때’, ‘구세주’, ‘배교자’, ‘가짜 예언자’ 등의 언어가 등장한다. 사실 한국이나 일본에는 별로 소개된 바 없지만 이집트에는 이런 출판물이 대량으로 유통되고 있다. 이케우치는 이런 종류의 출판물이 아랍 세계에서 ‘즐겁게’ 읽히는 상황을 주시하면서 구약성서와 코란까지 거슬러 올라가 이슬람 종말론의 현대적 구도를 예리하게 분석하고 있다.

지금까지 이슬람권 밖의 독자들이 접해 온 아랍에 관한 저작들은 전통적인 이슬람 사상이나 정치적 이슈들을 세계정치의 역학적 관점에서 다룬 것이 대부분이었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그러므로 이 책처럼 현대 이슬람의 대중이 실제로 어떤 의식을 갖고, 어떻게 이를 행동에 옮기고 있는지를 파헤치려는 시도는 의미있고 신선한 작업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원제 ‘現代アラブの社會思想’.

이연숙 히토쓰바시대 교수·언어학 ys.lee@srv.cc.hit-u.ac.j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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