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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3년 1월 10일 18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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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에 본 금강산은 바위산마다 하얗게 덮인 눈 때문에 여름에 본 모습보다 두 배는 더 아름다워 보였다. 하지만 금강산은 북한이 아니라 안전하게 소독된 어떤 곳인 것 같았다. 나는 북한의 집단농장을 2주일간 가 본 경험이 있어서 실제 북한이 어떠한지에 대해 조금은 알고 있다. 금강산은 북한에 있는 타국의 영토 같았다. 어쩌면 ‘현대랜드’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여기가 북한’이라는 실감은 배에서 질서에 관한 영상 교육을 받을 때부터 느껴졌다. 우리는 ‘해서는 안 되는 것’과 ‘해도 되는 것’을 상세히 교육받았다. 비디오테이프의 캐스팅은 완벽했다. 테이프에 등장하는 북한 가이드는 실제 평균적인 북한인의 모습 그대로였다. 세파에 찌든 얼굴과 깡마른 몸. 그는 이 테이프에서 한국 관광객들이 멋모르고 범하는 문화적 결례를 지적했다. 한 한국 아줌마가 북한 안내원들에게 탈북자들이 한국에서 얼마나 잘 사는지를 떠벌렸다가 며칠 구류됐던 것과 같은 일이 더 이상은 일어나지 않는 걸 보면 사전 교육이 효과적이었던 것 같다.
배에서 내리자 관광객들은 여행증명서에 나온 일련번호대로 줄을 서야 했다. 현대의 안내원들은 북한 관리들에게 관광객의 신원과 사진이 담긴 증명서를 건넸고, 관리들은 증명서와 실제 얼굴들을 꼼꼼히 대조했다. 나는 그들 눈으로 보자면 ‘제국주의적 침략자’다. 하지만 이들은 한국인을 대하는 것보다 더 까다롭게 하지는 않았다. 한 관리는 내 한국어 실력을 칭찬하며 “새해 복 많이 받으라”는 덕담을 건넸다. 북한의 ‘환경감시원’들은 정말 우호적이었다. 함께 간 미국 기자들과 집요하게 미국에 대한 그들의 태도를 물어보았지만 그들은 인내심을 잃지 않았다.
전제주의적 북한 사회를 연상시키는 유일한 광경은 눈밭에서 눈을 부릅뜨고 서 있는 북한 병사들이었다. 이들의 찡그린 얼굴에도 불구하고 버스에 함께 탄 어린이들은 병사들이 보일 때마다 손을 흔들어줬지만, 병사들은 화답하지 않았다. 밤에는 배 안에서 떠들썩한 가라오케 파티가 벌어졌다. 노래에 그다지 자신은 없지만 내가 아는 유일한 한국 노래인 ‘토요일밤’으로 좌중을 휘어잡는 데 큰 문제는 없었다.
설봉호가 속초항에 도착하자 나는 줄을 설 준비를 했다. 하지만 지난 번 귀항 때와 마찬가지로 줄은 무너지고 관광객들은 서로 먼저 배에서 내리려고 자리다툼을 했다. 앗! 나는 훨씬 익숙한 한반도의 반쪽에 돌아왔다는 걸 실감했다. 아니, 마치 이곳을 떠난 적이 없었다는 느낌이었다.
▼티모시 L 새비지▼
1967년 미국 보스턴 출생. 시카고대와 하와이대 등에서 미국외교사와 한미관계를 전공했다. 미국 버클리의 노틸러스연구소에서 북동아시아 담당 연구원으로 일했다. 92년부터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방문연구원으로 와 있다.
티모시 L 새비지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방문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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