佛지성계 ‘新반동’ 논쟁

  • 입력 2002년 12월 18일 18시 03분


10월에 출간된 한 역사학자의 저서가 프랑스 지성계를 논란의 소용돌이로 몰아넣고 있다.

문제의 책은 다니엘 랭당베르(사진)의 ‘안정으로 복귀하라는 명령’.

논란이 된 것은 ‘신 반동(反動)들에 관한 연구’라는 책의 부제였다. 랭당베르는 이 책에서 4∼6월 프랑스 대선과 총선에서 사회당과 공산당 등 좌파가 몰락한 이후 프랑스 지성계를 이끌어온 좌파 지식인들이 변절했다며 이들을 ‘신 반동들’이라고 불렀다. 그는 “좌파 지식인들은 한때 금과옥조로 삼았던 신념, 즉 자유민주주의와 도덕적 자유, 인권과 평등에 등을 돌렸다”고 비난했다.

책이 나오자마자 프랑스 지성계가 들끓었다. 역사학자 피에르 노라는 일간지 르몽드를 통해 “황당한 책이다. 이 책은 민주주의에 대한 비판을 민주주의의 적으로 몰아가고 있다”고 쏘아붙였다.

각종 신문과 잡지를 통해 프랑스 지식인들의 반박이 이어졌으며 급기야 지난주 주간지 렉스프레스에는 랭당베르의 주장을 ‘마녀사냥’이라고 비난하는 장문의 선언문까지 실렸다. “지식인들은 (좌파 정권의) 범죄와 이민정책에 대한 대중의 우려에 대해 토론할 권리가 있다. 우리를 파시스트로 몰아가려는 시도는 엽기적이며 스탈린주의다”는 내용이었다. ‘신 반동론’이 프랑스 지성계를 논란의 불길에 휩싸이게 한 것은 지난 대선에서의 좌파의 몰락과 극우파의 득세 등 프랑스 정치지형의 변화와 연결돼 있다.

랭당베르는 “내 책에 대한 폭력적인 반응이야말로 내가 정곡을 찔렀다는 의미”라고 주장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좌파의 몰락이 2차 세계대전 이후 풍미했던 프랑스 지식인 사회의 영락(零落)으로 이어졌다고 분석하기도 한다.

그러나 르몽드가 이 논쟁을 1면 머리기사로 다루는 등 지성계의 논쟁이 언론의 관심사가 된 것은 아직도 튼튼한 프랑스 지성계의 토양을 반영한다는 지적이다. 르몽드는 최근 사설에서 이렇게 썼다. “이 논쟁은 아직도 프랑스가 학문적인 논쟁에 휩싸일 수 있다는 점에서 아름답지만 동시에 지식인의 편가르기를 한다는 점에서 허망하다.”파리〓박제균특파원

phar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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