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미군 재판권 이양 거부 유감

  • 입력 2002년 8월 7일 18시 07분


주한미군이 여중생 2명을 치어 숨지게 한 궤도차량 운전병에 대한 재판권을 넘겨달라는 한국 정부의 요청을 거부한 것은 매우 유감스러운 일이다.

일부 시민단체는 이 사건을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고 주장하고 있으나 수사를 벌인 의정부 지청은 통신 장애에 의한 과실 사고라고 수사 결론을 내렸다. 한국 법원은 피해자와 합의한 과실범에 대해 실형을 선고하는 사례가 드물어 공무 중 사고를 낸 운전병에 대한 재판권을 한국법원에 넘겼더라도 중형을 받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

두 나라의 사법체계에 적지 않은 차이가 있지만 궤도차량 운전병이 한국 법원과 미군의 군사법원 중 어디에서 재판을 받더라도 선고 형량에 큰 차이가 나기 어렵다. 이러한 현실을 감안해 주한 미군이 궤도차량 운전병에 대한 재판권을 이양했더라면 이 사고로 격앙된 한국 사회 일각의 반미 감정을 누그러뜨리는 데 도움이 됐을 것이다.

9·11테러 이후 미국의 일방주의적 외교정책으로 세계 전역에서 반미 흐름이 고조되고 있고 한국도 예외가 아니다. 특히 꽃다운 여중생이 궤도차량에 깔려 숨진 사고가 난 이후 주한미군의 대응에 불만을 품은 유족 지역주민 시민단체들의 반발이 반미와 미군철수 주장으로까지 확산되고 있다. 이러한 사태는 두 나라 모두에 득이 되지 않는다.

미군 당국은 한국 법무부에 보낸 공문을 통해 재판권 이양 요청을 거부하는 이유로 공무집행 중 사건에 대한 재판권 이양 전례가 없다고 밝혔으나 이는 사실과 다르다. 1957년 주일 미군은 민간인 출입이 금지된 사격연습장에서 탄피를 줍던 여인을 총으로 쏘아 숨지게 한 미군 병사에 대한 재판권을 포기한 사례가 있다. 이 병사는 일본법원에서 집행유예 판결을 받았다.

한국 법원은 선진국 수준으로 공정성과 독립성이 확보돼 있고 피고인의 방어권을 충분히 보장한다. 주한 미군은 주둔국 국민감정을 고려해 재판권 이양 거부 결정을 재고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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