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中 어업협정 1년]中어선 서해 불법조업 심각

  • 입력 2002년 7월 1일 17시 39분


中어선 불법조업 단속 - 차준호기자
中어선 불법조업 단속 - 차준호기자
《6월 30일로 한중 어업협정이 맺어진 지 1주년이 됐다. 수산자원의 보호와 적정 어로활동을 위해 어업협정이 체결됐지만 서해의 배타적경제수역(EEZ)과 특정해역에서 중국 어선들의 불법 조업은 끊이지 않고 있다. 특히 5월 18일에는 서해 특정해역에서 불법조업을 하던 중국 선원들이 우리 해양경찰관을 흉기 등으로 집단 폭행하는 사건까지 발생해 해경 경비체계의 허점이 드러나기도 했다. 해경 함정과 헬기를 타고 서해 특정해역과 EEZ에 나가 중국어선들의 불법조업 실태를 직접 살펴봤다. 아울러 어업협정 이후 달라진 어로환경에 대한 어민들의 목소리와 우리 해양경비의 문제점 등을 종합한다. 편집자》

6월 25일 오후 2시경 북위 37도 10분, 동경 124도의 특정해역 경계선. 인천항 기점으로 서쪽으로 230㎞ 해상이다.

중국 어선 1척이 우리 특정해역에 쳐 놓은 그물을 회수하기 위해 기웃거렸다. 이 중국 어선을 지켜보던 인천해양경찰서 소속 1505 경비구난함의 배주홍 함장이 즉시 추격 명령을 내렸다.

“중국 어선 특정해역에 접근 중. 경고 메시지를 전달하고 단정(고속보트)은 출동 준비하라.”

단정이 전속력으로 중국 어선을 향해 발진하자, 중국 어선은 그대로 중국측 공해상으로 달아났다.

이 경우에서 보듯이 한중어업협정 뒤 중국 어선의 특정해역 및 EEZ 어업법 위반 사례가 급증하고 있다. 올들어 6월 말 현재 우리 해역에서 불법조업을 하다 적발된 중국 어선은 총 96척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의 49척보다 배 가까이 늘었다.

중국어선이 지난해 7월부터 12월까지 6개월간 영해(12해리)를 침범해 조업을 하다 적발된 경우는 총 4척이었으나 올 들어 6월 말 현재 15척으로 3.75배 늘어났다.

실제 불법조업을 한 중국 어선은 적발된 사례보다 몇배나 더 많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중국 어선들이 한밤중에 몰래 우리 특정해역과 EEZ 경계선을 넘어와 그물을 쳐 놓는 바람에 해경 경비함과 경비구난함의 스크루에 중국 어민들의 그물이 걸리는 사례가 번번이 발생한다. 한중어업협정 뒤 1년간 인천해경 소속 경비함들은 1척마다 10∼13번 정도 스크루에 그물이 걸렸다.

우리 어민들은 투망 뒤 육안 식별이 가능하고, 야간에는 레이더에 포착이 되는 부표를 설치하고 있지만 중국 어민들은 자신만 알 수 있는 곳에 몰래 그물을 쳐 놓기 때문이다.

해경 1505경비구난함의 구난장 김진희 경장(38)은 “올해 1월에 중국 어민들이 쳐 놓은 그물이 경비함 스크루에 감겨 2시간 동안 수중작업을 벌여 그물을 해체했다”며 “구난사(잠수 면허가 있는 해양경찰관)가 없는 1000t급 이하 경비함은 그물을 그대로 달고 인천항으로 돌아와 해체작업을 벌이고 있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한중어업협정 뒤 우리 해경의 단속이 심해지자 5월 18일 발생한 서해 특정해역에서의 집단폭행 사건에서 볼 수 있듯 중국 어민들은 갈수록 집단화 흉포화하고 있다.

5월 24일에는 전남 신안군 소흑산도 북서방 16마일에서 목포 해양경찰서 소속 250t급 경비함이 우리 영해를 2마일 침범해 조업을 하고 있는 중국 어선 3척을 나포하려 했으나 중국 어선 30여척이 세를 과시하는 바람에 500t급 경비함이 급히 추가로 투입돼 5척을 나포하기도 했다.

일부 중국 어민은 각목을 휘두르며 반항하거나 빈병 등을 던지는 등 폭력을 휘두르기 일쑤라는 게 해경 관계자의 설명. 그같은 행동은 나포당할 경우 2000만∼3000만원의 벌금을 물어야 하고 자칫 구속되기 때문이다.

경비함 관계자는 “중국 어선이 선단(船團)을 이뤄 불법어로행위를 할 때는 스스로 알아서 나가주기만 바랄 뿐 솔직히 대책이 없다”고 말했다.

▼단속 문제점은▼

한·일 해양 경비력 비교
구분한국 해양경찰청일본 해상보안청
대형함정(1000t급 이상)12척52척
중형경비함(200∼500t급)39척67척
소형경비함(200t이하)101척279척
오염관리정19척27척
교육훈련선(실습선)없음3척
특수정69척69척
비행기1대29대
헬기9대45대
자료:해양경찰청

어업협정 이후 해경이 맡아야 할 경비수역은 크게 늘었다.

해경 경비 관할 해역은 8만6000㎢에서 한중어업협정 뒤 우리나라 면적의 4.5배인 44만7000㎢로 5배 이상 증가했다. 단순 영해(12해리) 경비에서 200해리(EEZ) 경비체제로 전환되면서 경비수역이 크게 늘어난 것이다.

현재 EEZ경비가 가능한 1000t급 이상 해경 함정은 12척에 불과하다. 3교대 근무시 하루 평균 4척의 경비함이 각각 557㎢의 경비구역을 감당해야 해 사실상 경비체계에 구멍이 뚫릴 수밖에 없는 실정.

더욱이 해경의 헬기 9대와 비행기 1대는 야간자동항법장치 및 열상장비가 설치되지 않아 중국 어선의 야간 불법 조업은 물론 야간 해상 구난 발생시에도 즉시 대응이 불가능하다.

이에 비해 일본의 해경격인 해상보안청은 1000t급 이상 대형 함정을 우리보다 4배가 많은 52척을 보유해 우리 어선들이 일본 측 EEZ해역을 1㎞만 침범해도 즉시 나포하고 있다.

일본은 비행기 29대, 헬기 46대 등 총 75대를 활용해 하늘과 바다에서 입체적 경비 활동을 벌이며 강력한 해양 주권을 확보하고 있다. 이 중 야간 운항이 가능한 비행기와 헬기는 총 37대로 불법조업 단속뿐만 아니라 신속한 해난 구조활동 체계를 갖추고 있다.

중국 또한 어업협정 발효 후 최근 20만명에 달하는 해양순찰군을 창설하기 위한 움직임을 보이는 등 해양주권 수호의 강력한 의지를 보이고 있다.

해양경찰청에서 교환 근무하고 있는 일본해상보안청 제6관구 해상보안본부 외사단속관 사토 마사유키(佐藤正之)는 “일본은 크게 늘어난 배타적경제수역 등 해양주권 수호를 위해 헬기, 대형 함정 확충 등에 힘을 기울이고 있다”며 “한국 해경이 보다 효율적인 해양경비를 하기 위해서는 우선 장비 확충도 중요하지만 전문 인력을 확보하기 위한 교육기관 설립도 절실하다”고 지적했다.

부경대 최종화 교수(해양산업정책학부)는 “한국 해역에서의 불법조업을 막기 위한 자국 어민들에 대한 교육 등 중국 측의 노력이 미흡한 실정”이라며 “중국이 주변국과의 국제협력에 대한 인식 변화가 있는 만큼 우리 정부도 중국 어선 불법 조업을 줄이기 위한 외교적 노력에 힘을 쏟아야 한다”고 말했다.

▼어민들 “고기잡기 더 나빠져”▼

서해 어민들은 한중어업협정 체결 뒤 “조업 환경이 더욱 나빠졌다”고 얘기한다.

어민들은 대규모 선단(船團)을 이뤄 30∼40척씩 떼로 몰려다니는 중국 어선들로 인해 한중 과도수역과 잠정조치 수역에서의 조업은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한중어업협정 체결 뒤 국내 어선들이 배타적으로 출어할 수 있는 해역은 넓어졌지만 고기가 몰리는 과도수역과 잠정조치수역에서는 고기잡기가 더 힘들어졌다.

어업협정 전 우리측 배타적경제수역을 포함한 해역에서 조업이 가능했던 중국 어선들이 지금은 과도수역과 잠정조치 수역에만 몰려 너무 많은 배들이 그물을 치고 있는 실정.

이로 인해 서해 어민들은 “떼로 몰려다니는 중국 어선들의 틈바구니에서 조업을 하려면 생명보험을 2, 3개 가입한 뒤 조업에 나서야 하는 실정”이라고 불만을 털어놓고 있다.

어민들은 또 중국 배가 지나간 곳에서는 ‘고기 씨가 마른다’고 불만을 터뜨린다.

어족자원보호 차원에서 그물코의 크기(내경)를 5.4㎝이상으로 사용하도록 어업협정에서 규정했지만 중국 어선 일부가 4.5∼4.6㎝ 그물을 사용해 치어 등을 남획하고 있는 것.

전남 목포 선적 안강망 어선은 지난해 1회 출어시 척당 평균 40t(2억9800여만원)의 어획량을 올렸으나, 올해에는 척당 35∼37t으로 어획량이 줄어들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서해 근해의 안강망 어업 어획량은 80년대엔 연평균 9만3000t 수준이었으나 90년대엔 4만8000t으로 급격히 줄어든 뒤 지난해엔 2만3000t에 그치고 있다.

올해 4∼5월 전북 군산과 목포 앞바다에서 멸치잡이에 나섰던 신양호(안강망 138t급) 선장 겸 선주 차윤돈씨(56)는 “한중어업협정이 발효됐지만 무자비한 중국 어선들로 인해 어장환경은 별반 다를 게 없다”고 말했다.

차준호기자 run-jun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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