反이민 극우파 바람 거세더니…유럽 이민규제안 공동 추진

  • 입력 2002년 5월 21일 17시 52분


유럽연합(EU)이 공동 이민규제안을 마련하기 위해 서두르고 있다.

EU 순회의장국인 스페인과 EU 중심국의 하나인 영국은 다음달 스페인 세비야에서 열리는 EU 정상회담에서 강력한 이민규제안을 주요 논의대상에 포함시키기로 20일 합의했다.

토니 블레어 영국 총리가 내놓은 규제안은 ‘불법 이민 때 본국 송환을 약속하거나 이민규제에 협조하는 국가에 한해 경제 원조를 한다’는 내용.

블레어 총리는 “유럽을 요새화하겠다는 게 아니다”며 “그러나 이민 규제는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호세 아즈너 스페인 총리는 “유럽은 ‘인간 화물’을 거래하는 마피아를 뿌리 뽑기 위한 전쟁에서 흔들림 없는 태도를 보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덴마크 정부도 8일 거주허가를 받을 수 있는 외국인들의 의무체류기간을 3년에서 7년으로 늘리고 덴마크어 구사 능력을 일정 수준 이상 갖추도록 강제하는 내용의 이민억제법안을 발표했다. 이탈리아는 EU 차원의 국경수비대 창설방안을 제안해 놓고 있다.

이 같은 움직임은 최근 유럽 각국 선거에서 반(反)이민정책을 앞세운 극우파가 잇따라 득세한 데 따른 것. 각국 정부가 이민자들에 대한 국민의 반감을 누그러뜨리기 위해 대안 제시가 불가피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BBC방송이 20일 실시한 온라인 여론조사는 이민자들에 대한 국민의 반감을 잘 보여준다. 전체 응답자의 절반 이상(54%)이 “이민자들이 영국에 긍정적인 기여를 하고 있다고 보는가”라는 질문에 “아니다”고 답한 것. 백인 응답자의 47%는 지난 50년간 이민자들이 영국 사회에 해를 입혔다고 답했다.

난민단체 관계자들은 정부안에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마이크 라먼 영국난민연합 대표는 “정부의 정책 실패를 덮기 위해 난민과 이민자들을 희생양으로 삼고 있다”고 비난했다. 흑인권익보호단체인 ‘1990 트러스트’의 돈 데 실바는 “흑인 등 소수민족들이 영국 내 보건분야에 기여한 역사를 되새겨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생계형 이민이 대다수인 불법 이민자에 대해선 칼을 뽑고, 전문직 이민은 장려하겠다는 영국정부의 이중성에 대해서도 비난의 소리가 높다.

경제칼럼니스트 존 케이는 21일 파이낸셜타임스 기고문에서 “경제 원조를 받는 저개발 국가들의 발전에 기여하고 있는 전문직 종사자들의 이민만을 허용한다면 정부의 이민규제안은 무책임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한국-유럽 비자면제… 교포 불이익 없을듯▼

유럽에 반(反)이민열풍이 몰아치면 한국에는 어떤 영향이 있을까.

현실적으로 한국 이민자들이 불이익을 당하게 될 가능성은 미미하다는 것이 정부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독립국가연합(CIS) 소속 일부 국가를 제외한 유럽국 대부분과 모두 비자면제 협정이 체결돼 있어 ‘불법이민’ 자체가 성립하지 않는다는 것. 외교통상부 구주국 윤종곤(尹宗坤) 심의관은 “현실적으로 유럽 거주자 대부분이 상사 주재원이나 유학생인 점 등을 감안하면 불법이민규제에 따른 영향은 거의 없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법무부 출입국관리국에 따르면 2000년 총 이민자 1만2285명 가운데 유럽으로 떠난 이민자들은 네덜란드 131명, 스웨덴 100명, 프랑스 89명 등으로 미국(6101명) 이나 캐나다(5118명)에 비해 미미한 수준이다.

곽민영기자 havefu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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