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시 父子 '중동전쟁' 대물림

  • 입력 2001년 9월 14일 19시 55분


‘아랍권과 전쟁을 하기 위해 태어난 아버지와 아들.’

아버지의 이름을 물려받은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이 취임 후 아버지처럼 경제위기에 직면하더니 이번에는 대를 이어 아랍국가와 전쟁까지 치러야 하는 상황이 됐다.

아버지인 부시 전 대통령이 91년 이라크를 상대로 ‘걸프전’을 벌인 지 꼭 10년 후 아들 부시 대통령이 테러의 주범자 및 비호세력에 대한 보복전쟁 준비를 하고 있다. 이번 테러의 가장 유력한 용의자가 사우디아라비아 출신의 오사마 빈 라덴인데다 다수의 아랍계 인물들이 연루된 것으로 드러나고 있으며 미국이 공격할 대상도 아프가니스탄이기 때문에 부시 대통령 부자의 중동과의 악연은 운명이라는 말로밖에 설명할 수 없을 정도.

전쟁을 앞둔 부시 대통령에 대한 지지율이 급상승한 것도 아버지 때와 비슷하다. NBC뉴스의 조사에 따르면 부시 대통령에 대한 지지도가 평소보다 30%가량 상승한 80%로 나타났다. 부시 전 대통령도 걸프전 직후 지지도가 20%가량 상승한 86%에 이르렀다. 요즘 미국에서 ‘신이시여, 미국을 보호하소서’ 등 애국심을 자극하는 음악을 방송에서 자주 들을 수 있는 상황도 당시와 비슷하다.

테러 발생 전에도 부시 대통령 부자의 비슷한 상황이 화제였다. 뉴욕타임스지는 경제 문제로 결국 정치적인 어려움에 처하게 된 아버지와 아들을 비교한 기사를 싣기도 했다.

부시 전 대통령은 90년 예산문제를 놓고 의회와 싸움을 벌이는 과정에서 자신의 선거공약을 깨고 세금인상을 단행함으로써 정치적 위기를 초래했었다. 이와 비슷하게 아들 부시 대통령도 최근 나빠진 경제여건 때문에 재정운용을 위해 선거공약을 깨고 국방비를 삭감하거나 사회보장기금에 손을 대야 하는 어려운 상황에서 고민 중이다.

부시 대통령이 보복전쟁을 앞둔 요즘 부시 전 대통령도 덩달아 바빠졌다. 부시 전 대통령은 13일 한 경제회의에 참석해 “잔인한 테러에서 미국 시민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정보기관의 활동에 제약을 둬서는 안 된다”며 “정보요원들이 테러단체에 직접 침투하지 못하도록 돼 있는 규정을 고쳐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CNN방송에도 출연해 이번 사태에 대한 견해를 밝히는 등 아들에 대한 조언과 격려를 아끼지 않고 있다.

부시 전 대통령이 걸프전을 계기로 부통령 시절부터 따라다닌 ‘나약하고 신중한 이미지’에서 180도 변신한 것처럼 ‘부잣집 도련님’ 이미지의 아들 부시 대통령이 이번 사건을 계기로 강력한 리더십을 지닌 지도자로 부상한다면 두 사람은 완벽한 닮은꼴이 될 것이다.

<강수진기자>sjk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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