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싱턴 산책]美납세자 ‘행복한 고민’…세금 감면분 환급

  • 입력 2001년 8월 27일 18시 54분


미국의 납세자들은 요즘 두둑해진 주머니 때문에 즐겁다.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감세공약을 실천에 옮겨 최근 세금 감면분이 우편으로 배달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돌려받는 돈은 소득수준에 따라 차이가 난다. 결혼한 부부들은 대체로 600달러 정도를, 독신자는 300달러 정도를 받는다. 대부분 납세자들의 환급액은 적게는 수십달러에서 많게는 수천달러에 이른다.

자신이 낸 세금을 돌려받는 것인데도 뜻하지 않은 공돈이 생긴 것 같아 많은 납세자들은 이를 어떻게 사용할 것인지를 놓고 행복한 고민을 하고 있다. 멋진 휴가, 외식, 쇼핑, 공연관람 등이 일반적인 아이디어다. 보람 있게 쓰겠다며 소방서 경찰서 시민단체 등에 기부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정치권으로 눈을 돌려보면 상황은 전혀 다르다. 세금을 깎아준 뒤 연방정부의 살림살이 흑자 규모가 줄어들자 여야 공방이 점차 가열되고 있다. 다음달말로 끝나는 올 회계연도의 재정흑자 규모가 4월에 예상했던 2810억달러의 절반을 약간 넘는 1580억달러에 그칠 것으로 백악관이 25일 전망치를 수정한 탓이다.

당초부터 감세에 반대했던 민주당은 즉각 TV광고를 통해 감세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나섰다. 재정흑자 규모가 줄어 사회보장제도와 교육 및 의료 부문에 쓸 돈이 부족해진다는 주장이다. 이 광고는 특히 메디케어(노년층 의료지원 프로그램)에 들어갈 돈이 줄어들 우려가 있다면서 부시 대통령에게 ‘감세의 진실’을 밝히라고 압박했다.

가만히 있을 공화당이 아니다. 반격 TV광고를 27일부터 방영했다. “민주당이 공연히 노년층 등 복지제도 수혜자들을 위협하고 있다”면서 재정흑자가 축소돼도 복지 정책엔 전혀 차질이 없다고 강조하는 내용이다. 부시 대통령도 직접 나섰다. 그는 26일 “워싱턴에 있는 정치인들은 그 돈이 정부의 것이 아니라 국민의 것이라는 사실을 잊고 있다”며 “재정흑자를 납세자들에게 돌려주는 것은 올바른 일”이라고 역설하기도 했다.

의회가 여름 휴회 후 다음달 초 다시 열리면 이 논란은 더욱 거세질 전망. 그렇지만 미국인들은 이런 논쟁을 싫어하지 않는다. ‘무엇이 진정으로 국민을 위하는 것이냐’를 놓고 정쟁이 벌어진다는 걸 잘 알기 때문이다.

<워싱턴〓한기흥특파원>eligiu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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