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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1년 8월 16일 18시 3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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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틴 대통령이 역대 러시아 지도자 가운데 가장 높은 지지를 받고 있다는 사실이 또다시 입증된 것이다.
집권 2년째를 맞은 푸틴 대통령의 인기가 처음부터 이렇게 높았던 것은 아니다. 1999년 8월 총리에 임명된 뒤 그해 12월 보리스 옐친 대통령의 갑작스러운 사임으로 대통령대행을 맡았을 때만 해도 러시아 국민은 새 지도자에 대해 걱정과 불안을 감추지 못했다. 국정운영능력이 검증되지 않은 정치신인에다 구소련의 악명 높은 비밀경찰인 국가보안위원회(KGB) 출신이라는 부정적 인상이 강했기 때문이다.
푸틴 대통령 앞에는 만만치 않은 과제가 산적해 있었다. 지지부진한 시장개혁의 와중에서 98년 몰아친 외환위기로 경제는 붕괴됐고 고질적인 관료주의와 부정부패에다 체첸사태까지 겹쳐 당시 러시아는 ‘문제투성이의 이류국가’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푸틴 대통령은 강력한 지도력을 발휘하면서 차근차근 개혁정책을 추진했다. 모든 문제를 해결하지는 못했지만 무엇보다 러시아인들에게 희망과 가능성을 되찾아 주었다는 점에서 국민의 사랑을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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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재순서▼ |
푸틴 대통령의 지도력은 ‘통합과 설득의 리더십’으로 요약된다. KGB 출신이라는 전력과 강성 이미지 때문에 처음엔 ‘기득권 세력에 대한 대대적인 공세’를 펼칠 것이라는 예상이 지배적이었다. 사사건건 개혁의 발목을 잡는 공산당 주도의 의회와 정치에까지 영향력을 행사하는 올리가르흐(과두 재벌), 거대한 관료집단, 막강한 권한을 누리는 지방정부 등은 대표적인 기득권 세력이다. 이들 기득권 세력이 이에 저항할 경우 러시아는 걷잡을 수 없는 갈등과 대립 속에 휘말릴 것이란 우려도 있었다.
그러나 푸틴 대통령은 대립보다는 타협을, 분열보다는 통합의 길을 선택했다. 트로이카 디알로그 투자은행의 크리스 웨퍼 연구소장은 푸틴 대통령의 재벌 정책을 예로 들어 이를 설명했다. 러시아의 과두 재벌은 사유화 과정에서 정경유착을 통해 불법과 탈법을 저지르며 단기간에 막대한 부를 축적했다. 이 때문에 국민은 푸틴 대통령이 속시원하게 재벌을 응징해 줄 것을 기대했다. 푸틴 대통령은 마음만 먹으면 여론을 등에 업고 몇몇 재벌 총수를 구속하거나 개인 재산을 빼앗는 등 시류에 영합하는 강공책으로 단번에 인기를 올릴 수도 있었다.
하지만 푸틴 대통령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재벌 총수를 차례로 만나 18∼24개월의 시한을 제시하며 이 기간에 불법적인 사업 부문을 합법적으로 전환시킬 것을 권유했다.
또 ‘과거’는 묻지 않는 대신 앞으로의 탈법에 대해서는 단호히 대처하겠다는 경고를 빠뜨리지 않았다. 정부도 경제 관련 법규를 정비하는 등 제도적인 개혁부터 해나갔다. 푸틴 대통령은 ‘러시아 경제에서 절대적인 비중을 차지하는 재벌을 끌어안아야 한다’고 판단했던 것이다.
이러한 온건한 태도에 대해 일부에서는 지나치게 타협적이라는 비난이 나왔다. 하지만 푸틴 대통령의 접근방식에 따라 러시아는 세제개혁과 특혜 폐지 등 경제개혁을 무리 없이 추진하면서도 큰 혼란 없이 지난 2년 동안 연간 10%에 가까운 경제성장을 달성했다.
옐친 전대통령이 집권 초부터 무리하게 급진개혁정책을 밀어붙이다가 곳곳에서 저항에 부닥치면서 경제를 파탄으로 몰아갔던 것과는 대조적이었다. 웨퍼 소장은 이를 ‘푸틴식 실용주의’라는 말로 설명했다.의회와의 관계에서도 푸틴 대통령의 지도력은 돋보였다. 그는 의회를 적대시하기보다는 국민 여론을 바탕삼아 꾸준히 의회를 설득했다. 그 결과 공산당이 결사적으로 반대하던 토지법안을 비롯해 대부분의 정부 법안이 무사히 의회를 통과했다. 공산당 출신으로 가장 적대적인 자리에 섰던 겐나디 셀레즈뇨프 하원의장이 지금은 가장 강력한 푸틴 대통령의 후원자가 됐을 정도다.
‘푸틴식’ 리더십의 또 다른 숨겨진 강점은 ‘실천’이다. 알렉산드르 오슬론 FOM 회장은 “옐친 정부 시절 말만 앞세우는 기성 정치권에 염증을 느꼈던 러시아인들은 푸틴 대통령이 보여준 행동력에 크게 감동했으며 이것이 그의 지도력을 더욱 강화시켰다”고 평가했다.
<모스크바〓김기현특파원>kimkihy@donga.com
▼키슬리친 연구원 "푸틴식 리더십 장점은 점진주의"▼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은 개인적인 인기와 국민적 지지를 강력한 리더십으로 적절히 연결시키고 있다.”
러시아 기업인연합(한국의 전경련에 해당) 산하 사회정치연구소의 알렉산드르 키슬리친 선임연구원은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지도력을 이렇게 평가했다.
키슬리친 연구원은 1999년의 대통령선거 등 각종 선거에서 활약한 선거전략가이기도 하다.
-푸틴 대통령이 보여주고 있는 지도력의 특징은 무엇인가.
“푸틴 대통령은 역대 러시아 지도자들과는 달리 국민을 상대로 직접 설득에 나서 민심을 사로잡는 독특한 지도력을 보여주고 있다. 국민적 지지를 바탕으로 의회나 지방정부를 장악하고 개혁정책을 펴나가고 있다.”
-2년 전만 해도 무명이던 푸틴 대통령이 현재 누리고 있는 폭발적인 대중적 인기의 원인은 무엇인가.
“푸틴 대통령은 작은 키나 딱딱한 인상 등 얼핏 보면 대중 정치인으로는 어울리지 않는 이미지를 갖고 있다. 대중 정치인답지 않은 모습이 부패하고 노회한 보리스 옐친 시대의 정치인상과 대비돼 신선한 이미지를 국민에게 주고 있다.”
-‘푸틴식 리더십’의 가장 큰 강점은 무엇인가.
“푸틴 대통령은 모든 문제를 뚜렷한 원칙을 갖고 점진적으로 접근한다. 이것이 가장 두드러지는 강점이다. 예를 들어 푸틴 정부는 뿌리깊은 관료주의를 개혁하기 위해 과거 옐친 정부처럼 대대적인 반(反)부패 캠페인을 벌이는 등의 극단적 수단을 쓰지 않고 있다. 오히려 공공부문의 처우를 개선해 관료사회의 사기를 높이는 한편 규제완화 등 제도개혁을 통해 민간부문의 권한을 강화시켜 점진적으로 관료주의의 폐해를 줄이는 쪽으로 방향을 잡고 있다.” -러시아 개혁의 성패가 달려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재벌 개혁은 어떤가. “푸틴 정부는 금권을 이용해 정치에까지 영향력을 미치려고만 하지 않으면 재벌의 순수한 경제활동에 대해서는 간섭하지 않겠다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