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중일 학술회의]동북아시아의 평화와 협력

  • 입력 2001년 4월 15일 19시 17분


동아일보 창간 81주년을 맞아 본사 부설 21세기평화연구소가 ‘동북아시아의 평화와 협력’을 주제로 개최한 한중일 3국 국제학술회의가 13일 서울 프레지던트호텔에서 열렸다.

동아일보가 후원하고 삼성생명이 협찬해 열린 이날 회의에서 3국의 학자 및 전문가들은 미국 조지 W 부시 행정부 출범 이후 급변하는 동북아시아 정세를 점검하고 지역 내 평화와 안정을 위한 다자간 협력의 가능성을 놓고 열띤 토론을 벌였다.

남중구(南仲九) 21세기평화연구소장은 개회사에서 “지난해 6월 남북정상회담 이후 한반도와 동북아시아에서는 평화와 협력을 모색하기 위한 논의가 다각도로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며 “그러나 미국의 새 행정부 출범 이후 미중 군용기 공중충돌 사고와 일본의 역사교과서 왜곡 문제 등 부정적인 상황 전개로 이 지역 환경은 다시 복잡해졌다”고 진단했다.

이어 남 소장은 “한반도와 동북아의 평화정착은 이해 당사국간 공동의 이익과 번영을 위해 반드시 성사시켜야 할 최우선 과제”라며 “이 자리에서 모아지는 지혜와 건설적인 대안이 이 지역의 평화와 협력을 모색하는 데 소중한 기여를 하기 바란다”고 강조했다.

이날 회의는 △미국 신행정부 출범과 동북아시아의 평화정착 △동북아시아 지역협력을 위한 과제 △동북아시아 평화 협력과 한반도 등 3개 주제로 진행됐다. 특히 토론에서는 일본의 역사교과서 왜곡문제와 관련해 3국 학자들간에 공방이 벌어지기도 했다.

<김영식기자>spear@donga.com

김기정교수(왼쪽)와
소에야 요시히데 교수
▼제1회의:美 새행정부와 동북아▼

▽미국 신행정부의 중국정책과 미중관계(우신보·吳心伯 중국 상하이 푸단대 교수)〓조지 W 부시 신행정부는 미중관계를 재정의하고 있다. 중국과 건설적 전략파트너 관계를 발전시키고자 한 빌 클린턴행정부의 정책에 반대하고, 미중간 경쟁관계를 고취시키려는 것이다.

이에 따른 미중관계의 미래는 세 가지 정도의 시나리오가 예상된다.

첫째, 미중의 모든 쌍무관계가 부정적 안정이나 지속적 악화상태에 놓이는 것이다. 미국의 대중정책은 친(親)대만, 친일, 반(反)중국 세력에 의해 좌우되기 때문에 미중은 대만문제로 심각한 마찰과 충돌을 일으킬 수 있다. 특히 국가미사일방어(NMD)체제와 전역미사일방어(TMD)체제 문제가 심각하다. 전략적 대화를 통해 미국은 NMD를 제한적으로 추진하고, 중국은 전략무기의 수량을 제한하는 타협점을 찾아야 한다.

둘째, 지속적인 불안속에서 대체로 안정을 찾는 경우이다. 미중 쌍무관계는 진전되기 힘들겠지만 경제분야 등 상호의존도가 높아져 최악의 상황으로 가지는 않을 것이다. 긴장과 협력이 혼재되지만 대체로 정상관계라고 할 수 있다.

셋째, 냉전적인 색채를 띠고 있는 부시행정부의 외교정책 담당자들이 현실을 반영하는 것이다. 클린턴행정부도 인권문제로 중국을 자극했으나 결국 ‘건설적 접촉정책’으로 바꿔 미중관계가 발전했다. 마찬가지로 부시행정부가 중국과 대화하고 긍정적으로 대중관계를 모색한다면 양국의 미래는 고무적일 것이다.

▽미국 신행정부하의 미일동맹과 동북아시아(소에야 요시히데·添谷芳秀 일본 게이오대 교수)〓중국과 전략적 파트너십을 선언했던 클린턴 전대통령과 달리 중국을 전략적 경쟁상대로 규정하고 대만에 무기를 제공하려는 부시대통령의 아시아정책은 불안감을 안겨주고 있다.

특히 부시정권이 NMD와 TMD를 추진함에 있어 주의할 점은 미국의 세계전략에 있어 필수불가결한 동맹국과 미국내 불안감이라고 할 수 있다. 일본에서는 NMD와 TMD가 미중관계를 갈라놓을 가능성에 대한 우려가 적지 않다.

미국은 영국이 유럽에서 미국 우위의 ‘일국 시스템’을 지지하는 것 같은 역할을 일본이 아시아에서 해주기를 바라고 있다. 미일동맹의 경우 정치적으로는 항상 대등한 동맹관계라고 하는 허구가 쌍방에 의해 강조돼 왔다.

그러나 대등성을 강조하면 할수록 비대칭에 기인하는 불평등성으로 정치적 불만을 향한 미일동맹의 딜레마가 커진다.

중국이 미일동맹을 받아들이는 토대 위에서 미중간의 전략적 공존이 성립한다면 미중관계뿐만 아니라 아시아의 국제정치도 안정될 것이다. 이러한 전략적 논리의 가장 큰 장애는 대만문제이다.

최근 군용기 충돌사건은 미국과 중국의 전략이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고위급의 대응이 일어난 것으로 향후 양국관계에 영향을 미칠 것이다. 그러나 이번 사태가 말을 통한 외교적 해결이라는 점에서 전략적 의미까지 포함하지는 않는 것으로 보인다.

▽미국 신행정부의 한반도 정책과 남북한관계(김기정·金基正 연세대교수)〓3개월이 지난 부시행정부의 정책적 외형을 관찰해 보면 현재가 중요한 과도기라는 점이 확실하다. 부시행정부가 외교정책에서 보이는 새로운 변화의 의욕과 방향은 클린턴 정책과의 차별화를 통해 나타나고 있다.

‘힘의 외교’를 천명한 부시행정부의 새 외교정책 방향은 △현실주의적 국제주의정책 견지 △강력한 군사력 건설 △전통적 동맹―연합관계 공고화 △대외대립성 강화를 위한 위협세력 구체화 △냉전시대 정책의 복원 등 5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이는 국익우선, 군사력을 중심으로 한 힘의 중시와 일방주의적 패권유지, 강대국 정치의 중시와 선택적 개입 등의 현실주의적 색채를 띠는 것이다.

미국의 대한반도정책은 동아시아 정책의 연장선상에 있다. 따라서 중국과 경쟁하는 강경론 중심의 동북아 정책 및 한반도 정책의 밑그림은 이 지역에 신냉전의 대결구조를 재현시킬 가능성이 높다. 문제는 미국의 대북강경책이 남북관계에 대립구도를 증대시키며, 남북 긴장이 확산되면 김대중(金大中)정부가 추진해왔던 대북포용정책 근간을 흔들어버릴 수 있다는 점이다.

한반도 상황의 불안정과 전쟁 위험성의 증폭은 동북아 국제환경을 위태롭게 하고, 지역질서 유지의 비용을 더 요구하게 된다. 따라서 한국은 한반도 평화공존과 안정적 환경 마련이 동북아 질서 유지에 핵심조건이 된다는 점을 미국을 끊임없이 설득해야 한다.

▽토론〓최근 군용기 충돌사건에 대한 미중간 외교적 해결에서 양측 모두 ‘승리’보다는 ‘성공’했다는 해석을 통해 대화에 의한 지역내 안정과 협력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제시됐다.

정재호(鄭在浩)서울대교수는 “백악관의 주인이 바뀔 때마다 미중관계가 영향을 받는다는 점이 이번 사건으로 잘 드러났다”며 “미국 정찰기가 일본 기지에서 발진했다는 것은 미국 기지가 있는 한국에도 같은 뜻을 내포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김호섭(金浩燮)중앙대교수는 “한미일의 협력을 통한 동북아 긴장완화의 제도화는 북한이 협력하지 않으면 어렵다”며 “북―일수교와 긴장 완화를 위한 북한의 체제변화 중 어느 것이 우선이냐는 문제에 있어서는 일본의 정치적 리더십의 구조적 변화를 통한 접근과 의제설정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기미야 다다시(本宮正史)도쿄대 교수는 “클린턴 정권을 다자주의로 보고 부시정권을 일방주의라고 구분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며 “한국이 부시정권의 외교정책을 능동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 전략을 추진하는 것이 동북아 평화정착에 필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제2회의:동북아 지역협력 과제▼

왼쪽부터 장샤오밍 교수,
야마모토 요시노부 교수, 윤영관 교수

▽동북아시아 지역협력을 위한 중국의 역할(장샤오밍·張小明 중국 베이징대 교수)〓동북아 지역협력에서 중국의 정책과 태도는 지연(地緣)정치와 지연경제의 두 가지 각도에서 분석이 가능하다.

지연정치에서 볼 때 냉전시기 동서 대립의 장(場)이던 동북아지역은 냉전종식 후 안보환경이 개선됐다. 그러나 △러―일 북방영토분쟁 △중―일 댜오위다오(釣魚島)분쟁 △한일 독도분쟁 △한반도 정세 불안 △미일 군사동맹 강화 △전역미사일방어(TMD)체제 문제 등 안보환경에 영향을 주는 요인이 남아 있다.

지연경제 측면에서 보면 한국과 일본은 중국의 중요한 무역파트너와 투자국으로서 경제적 상호의존 상태에 있다. 중국은 동북아지역에서 중요한 경제이익을 갖고 있고, 이 지역의 모든 국가와 긴밀한 경제관계를 원하고 있다.

동북아지역에서 다자간 협력, 특히 안보영역에서의 다자간 협력은 상당히 낙후한 실정이다. 동북아지역은 아시아의 다른 지역과 비교해볼 때 다자간 협력보다는 쌍무관계가 중심이 되고 있다. 이런 점에서 중국이 냉전종식 후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아시아유럽정상회의(ASEM), 아시아안보포럼(ARF) 등 다자간 활동에 참여하고 있는 것은 고무적이다.

동북아 지역협력에 참여하고 이 지역의 장기적 평화, 안정, 번영을 유지하는 것은 중국의 국가이익에 부합하는 것이다. 앞으로 중국은 이 지역의 다른 국가와 함께 동북아지역의 협력과 다자주의를 발전시키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할 것이다.

▽동북아시아의 지역협력을 위한 일본의 역할(야마모토 요시노부·山本吉宣 도쿄대 교수)〓동북아에서 다자간 협력은 현재 북한을 제외하고는 시장경제 시스템을 통해 경제발전을 도모한다는 공통 목표가 있다. 그러나 안보문제는 다자간 협력이 대단히 어려운 부분이다. 장기적으로 보면 중국의 경제력, 군사력의 증대는 힘의 균형을 크게 변화시켜 이른바 ‘힘의 전이(轉移)’를 발생시켜 동북아 안정을 손상시킬 수도 있다.

이는 미국이 생각하는 불안요소의 하나이다. 일본에 있어서도 장래 국제적 지위와 역할을 생각할 때 큰 영향을 미치는 요소가 된다. 중국은 현재 미국의 영향력으로 인해 중국의 이익이 손상된다고 보기 때문에, 장기적으로 이 같은 미국의 단극구조를 다극적인 것으로 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듯하다.

일본은 동북아에서, 특히 경제분야에서 다각적 협력에 이익을 갖고 있으며, 이에 적극적으로 공헌해야 한다. 동북아에서 다각적 협력의 열매를 맺기 위해서는 각 국의 첨예한 안보 이해관계가 돌출하지 않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동북아의 다각적 협력 속에서 일본 역할을 생각할 때 잊어서는 안될 것은 일본의 ‘과거의 문제’일 것이다. 현재도 교과서문제를 싸고 큰 논란이 벌어지고 있다. 한편으로 사실(史實)에 근거해 이해를 촉진시키며 동시에 일본의 장래를 생각하는 행동으로 이 문제를 해결해 나가야 한다.

▽남북한 관계와 동북아 다자협력(윤영관·尹永寬서울대교수)〓북한문제는 사안들이 서로 복잡하게 얽힌 다차원적 성격의 문제이므로 해법도 복합적이고 포괄적인 차원에서 찾아야 한다. 미국 부시행정부나 공화당내 강경론자들이 선호하는 군사안보전략적인 접근법으로는 북한문제의 해결이 어렵다.

북한의 대량살상무기, 대북 경제지원, 북한의 체제안전 보장, 남북간 평화협정 체결, 재래식 군사위협 해소 등 모든 현안을 구체적 단계별 이행계획을 작성해 상호연계해 검증절차를 거치면서 이행해 나가는 대타협 방식의 포괄적인 정치경제적 접근을 시도해야 한다.

그런 맥락에서 2년전 작성된 아미티지 보고서에 주목해야 한다. 이 보고서는 클린턴 행정부의 포용정책을 비판하는 보고서로만 알려져 있지만 그 내용을 보면 북한문제 해결을 위한 포괄적이고 종합적인 마스터플랜을 제공하고 있다. 한국 정부가 제시한 포괄적 상호주의 원칙보다도 한단계 더 나간 적극성을 보이고 있다.

남북한 화해 및 긴장완화는 동북아 국제정치의 구조적 변화를 불러올 것으로 예측된다. 이런 상황에서 한반도 주변국가간의 관계는 불확실성과 불안정성이 증가하고 긴장이 조성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그런 가능성을 줄이고 구조전환 과정을 순탄하게 하기 위해 동북아지역포럼(NARF)의 창설이 필요하다. 남북한과 주변 4국으로 구성될 이 포럼이 동북아국가간의 군사적 신뢰구축 및 군축문제, 북한에 대한 경제적 지원책 등 주요 현안을 다루도록 해야 할 것이다.

▽토론〓‘힘의 우위’를 표방한 부시행정부의 움직임에 대한 우려와 함께 동북아 다자협력기구 구축문제가 한중일 3국 학자들의 공통 관심사였다.

정종욱(鄭鍾旭)아주대교수는 “보수성향의 부시행정부는 물론 블라디미르 푸틴대통령으로 대변되는 러시아 민족주의 지도자의 등장 등 주변국의 급격한 변화로 인해 한반도 주변정세가 지난 몇년보다 오히려 불안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며 “이 지역에서 군비경쟁이 재연되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김영작(金榮作)국민대교수는 “동북아 안보협력은 전체적으로 보면 비군사적인 경제분야의 협력에서 비롯돼 점차 군사적 분야도 안정적으로 만들어 갈 가능성이 있다”면서 “이를 저해하는 요인은 중국위협론과 함께 군비확산을 사실 이상으로 부풀려 이미지화 한데 있다”며 동북아 다자협력기구 구축 필요성을 강조했다.

서진영(徐鎭英)고려대교수는 “부시행정부의 기능주의적인 현실적 접근은 동아시아 전체지역을 긴장국면으로 이끌고 있다”며 “동북아 정세에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는 비관적 시각을 강조한 ‘거품’을 걷어내고, 이 지역의 21세기 판도를 새로이 짜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제3회의:동북아 평화와 한반도▼

왼쪽부터 기미야 다다시 교수, 이서항 연구원, 유호열 교수

▽한반도의 평화 협력과 일본의 역할(기미야 다다시·木宮正史도쿄대 교수)〓탈냉전시대에 일본 외교의 주체성이 지금처럼 요구된 적이 없다. 그러나 정치리더십의 부재나 장기불황 문제로 외교정책의 자원이 점차 줄어드는 느낌이다.

미중관계가 향후 동아시아 질서 형성에 결정적 요인이 되는 것은 틀림없다. 미중관계가 극도의 대립상황이 되는 것은 동북아 평화에 바람직하지 않다. 미중 공동패권이라는 시나리오 역시 바람직하지 않다. 이 때문에 미중관계의 틀 속에서 그 관계가 악화되지 않도록 조정능력을 가지면서 어느 정도 발언력을 확보하는 세력이 필요하다.

한국의 경우 남북통일이라는 과제를 안고 있어 양호한 미중관계가 필수조건이다. 그런 의미에서 바람직한 동북아 질서형성의 방식에 관해서는 한일간에 공통의 이해가 존재한다.

다국간 안보협력에 한국정부는 적극적이다. 다만 한국은 한미안보가 대중 포위망이 아니라는 것을 중국에 납득시켜야 한다. 나아가 일본은 어떻게 자리매김할 것인가도 중요하다. 한일 안보협력은 다국간 안보협력의 틀 안에서 추진하는 편이 낫다. 다국간 안보협력이라 해도 한일간에는 상당한 ‘동상이몽’이 있다는 점에 유의하지 않으면 안된다. 다국간 안보협력은 일본이 주도해도, 한국이 주도해도 불가능하다. 그러나 한일이 협력해 주도한다면 그 가능성은 높아질 것이다.

▽동북아 평화 협력을 위한 한국의 역할(이서항·李瑞恒외교안보연구원 교수)〓최근 동북아 안보환경은 긍정 및 부정적 측면이 혼합된 이중성을 띠고 있다. 남북관계의 진전 등 긍정적 요인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국가미사일방어(NMD)계획 등은 지역안정의 위협요인이 되고 있다. 이런 가운데 동북아에 나타날 네 가지 안보질서 유형을 생각할 수 있다.

첫째 가능성은 일국 패권체제다. 다만 그 가능성은 희박하다. 역내 어느 국가도 지역패권국가의 출현을 원치 않고 있다.

둘째는 세력균형체제다. 동북아지역의 안보질서는 미중간 양극구조로 표현할 수 있는 세력균형체제에 가장 가깝다. NMD문제가 원만히 해결되지 않는 한 동북아에서는 미일과 중―러를 각기 축으로 하는 세력균형체제 하에서 강대국간의 대립이 심화될 것이다.

셋째로 강대국간 협력체제다. 북한의 대미, 대일수교가 이뤄지고 다자안보대화가 활성화된다면 가장 바람직한 형태가 될 수 있다. 미중, 미―러간 전략적 동반자관계가 발전해 일본까지 포함한 4강국간의 집단관리적 성격이 강한 ‘팍스컨소시어’체제가 정착될 수 있다.

넷째는 집단안보체제다. 그러나 NMD 등 현안에 대해 주요국간 이해관계가 대립하고 있어 집단안보체제 형성은 당분간 어려울 것이다.

예상 가능한 동북아 안보질서 가운데 강대국간 협력체제가 가장 바람직하다. 한국은 이를 위해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 △다자간 안보대화 실현 △지역경제협력체 활성화에 외교적 역량을 기울여야 한다.

▽동북아시아 평화 협력을 위한 북한의 역할(유호열·柳浩烈고려대 교수)〓2차 남북정상회담은 북한 김정일(金正日) 국방위원장의 답방이라는 의의 못지 않게 미―중―일―러의 복잡한 이해관계가 걸려있는 중요한 사안이다. 북한은 대미관계 등 대외정책을 융통성 있게 조절해나가는 것이 필요하다. 그렇지 않을 경우 점증하는 주변국의 영향력 경쟁 속에 오히려 신냉전체제 형성의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NMD체제 구축의 가장 큰 배경과 대상인 북한이 기존 태도를 바꾸지 않은 채 중 러와의 관계강화를 통해 새로운 항미(抗美)전선을 구축하려 한다면 이는 동북아지역의 평화와 협력체제 건설에 심각한 장애 요인이 될 것이다.

북한으로선 신냉전 구조의 형성이 단기적으로 북한체제의 생존, 특히 수령유일체제의 보존에는 도움이 될 수 있지만 중장기적으로 북한체제의 발전에 역효과를 부를 것이며 궁극적으로 중국 러시아와의 관계진전에도 도움이 되지 못할 것이다.

현재 미중, 미―러관계가 부시행정부 출범으로 양자간 상호의지와 역량을 탐색하는 단계이기 때문에 긴장이 조성되고 있으나 앞으로 미국의 견해가 정리되면 거시적 차원에서 상호이익을 제고하기 위해 평화와 협력을 추구하는 정책을 선택할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북한은 보다 장기적 안목에서 내부개혁과 남북 및 북―미간 실질적 관계개선을 위한 진정한 정책변화를 이뤄야 하며 나아가 동북아 다자간 안보대화, 경제협력기구에 적극 동참해야 한다.

▽토론〓동북아에서 다자간 안보협력이 이뤄지기 위한 조건, 즉 △동북아 국가의 내부체제 문제 △중미간 갈등과의 상관관계 △북한의 참여문제 등에 토론자들은 관심을 보였다.

장달중(張達重) 서울대 교수는 ‘국가체제의 연성화’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유럽의 다자안보체제는 냉전시대 대결에 의한 서방의 승리를 통해 이뤄진 것이지만 동북아의 상황은 다르다”며 “동북아는 역내 국가들의 국내 구조적 문제와 연결돼 있고 국가체제가 너무 강성이라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우신보(吳心伯)푸단대 교수는 “한반도 통일에 대해 일부 우려하는 시각도 있지만 중국은 전적으로 한반도 통일을 희망하고 있다”고 전제한 뒤 NMD 및 TMD에 대해 미국이 재고할 수 있도록 한국이 적극적인 역할을 해줄 것을 주문했다.

최영진(崔英鎭) 외교통상부 정책실장은 북한의 다자 안보대화 참여에 대해 “새로운 다자대화의 틀을 만들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며 “이미 모인 자리, 즉 아세안지역포럼(ARF) 테두리 내에서 대화를 시작하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리〓이철희·김영식기자>klim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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