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1월7일 대선 이후 35일간 계속된 플로리다주의 재검표와 지루한 법정 공방 끝에 당선된 까닭에 그는 여느 당선자 같으면 승리의 기쁨과 감격에 젖어 있을 때 정통성 시비에 시달리며 대선으로 분열된 국론 통합을 걱정해야 했다. 그가 노동부장관으로 지명한 린다 차베스가 불법 체류자를 고용한 사실이 밝혀져 중도사퇴한 데서 볼 수 있듯이 언론과 민주당의 견제는 만만치 않다.
부시 당선자의 최대 현안은 둔화 조짐을 보이는 경제다. 클린턴 행정부에서 8년간 호황을 거듭하던 미 경제는 최근 침체 우려가 나올 만큼 심각한 상황이다. 부친인 조지 부시 전대통령이 91년 걸프전쟁 때 이라크를 압도하며 승리, 역대 미국 대통령 중 최고의 지지율을 기록했지만 경기 침체에 적절히 대처하지 못해 다음해 재선에 실패했다. 당시 이를 지켜봤던 부시 당선자이기에 경제문제에 더욱 잘 대처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갖고 있다.
당시 선거에서 클린턴 대통령은 “어리석은 사람, 문제는 경제야”란 유명한 말로 경쟁자인 부시 전대통령을 몰아붙이며 승리를 거머쥐었다. 부시 당선자 역시 이 말을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으면 안되게 됐다.
그는 경제 부양을 위해 공약으로 내세웠던 감세정책(10년간 1조6000억달러 규모를 삭감)을 조기에 추진할 방침이다. 그러나 민주당은 이 정책이 부자한테만 도움이 된다며 반대하고 있어 추진 과정에 상당한 논란이 예상된다. 일부 경제학자도 감세에 따른 긍정적인 효과는 2, 3년 뒤에나 나타나지만 재정적자와 인플레 등 부작용은 금세 나타날 것이라며 회의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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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교안보 분야의 과제도 녹록하지 않다. 부시 당선자는 걸프전 당시 국방장관을 지냈던 딕 체니 부통령 당선자 외에 콜린 파월(국무), 도널드 럼스펠드(국방), 콘돌리자 라이스(백악관 안보보좌관) 등으로 화려한 진용을 구축해 힘에 바탕을 둔 외교안보노선을 지향하나 국제사회의 반발이 크다. 특히 북한 이라크 등의 미사일 공격에 대비해 부시 행정부가 의욕적으로 추진하려는 국가미사일방어체제(NMD)에 대해선 북한 이라크와 중국 러시아뿐만 아니라 유럽의 우방국조차 비판적이다.
또 개성이 강한 외교안보팀 구성원이 불협화음을 내지 않고 호흡을 잘 맞출 것인지도 관심사. 라이스 보좌관이 17일 한 세미나에서 외교안보팀의 ‘팀워크’를 유달리 강조한 것은 바로 이같은 주변의 우려 때문에 나온 말로 보인다.
이 밖에 사실상 공화 민주당이 양분하고 있는 의회도 앞으로 사사건건 부시 당선자의 발목을 잡을 것으로 예상된다. 그는 또 아버지의 그늘에서 벗어나 독자적인 지도력을 보여야 하는 과제도 안고 있다.
부시 당선자는 18일 “국가를 위해 봉사하게 돼 영광”이라며 “이제 일을 시작할 준비가 돼 있다”고 자신감을 보였다.
과연 그가 말처럼 갖가지 난관을 잘 헤쳐나갈 수 있을 까. 미 언론은 경영학을 전공한 사람으로는 최초로 백악관에 입성하는 부시 당선자가 ‘최고경영자’다운 수완을 국정운영에서 발휘해줄 것을 기대하고 있다. 냉엄한 역사의 심판대에 오르게 된 부시 당선자가 세계 유일의 초강대국 미국의 대통령으로서 어떤 역할을 해낼지는 미국뿐만 아니라 세계의 관심사다.
<워싱턴〓한기흥특파원>eligiu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