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문학상/가오싱젠 수상]"동양적인것이 곧 세계적"

  • 입력 2000년 10월 12일 23시 56분


프랑스로 망명한 중국 극작가 겸 소설가 가오싱젠(高行健·60)이 노벨문학상을 받았다는 소식은 ‘작은 충격’이다. 프랑스로 귀화했지만 중국인 출신으로 노벨문학상을 받기는 처음일 뿐만 아니라 유력한 후보 명단에서 빠져 있던 ‘다크 호스’였기 때문. 파리 근교에 살고 있는 본인도 수상 소감 일성으로 “놀라울 뿐이다. 다른 후보 중에서 뽑는 게 나았을 것이다”는 농담을 건넸을 정도다.

중국 장시성에서 태어나 베이징외국어대 불문과를 졸업한 가오싱젠은 연극배우였던 어머니의 영향으로 희곡 창작을 시작했다. 1980년대 베이징 인민예술극장의 상임 극작가 시절에 ‘버스 정류장’ ‘절대 신호’ 같은 작품을 통해 유럽 스타일의 아방가르드극을 선보여 논란을 일으켰다.

그의 명성은 ‘야인(野人)’ ‘피안(彼岸)’ 같은 대표작을 통해 유럽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야인’의 독일 공연 등에서는 중국 전통극의 미학을 계승한 문명비판적 메시지로 호평받았다. ‘피안’은 시적인 대사와 희비극을 아우르는 독특한 형식으로 책으로 출간돼 좋은 반응을 얻었다.

중국 정부에 비판적인 입장을 취해 온 그는 자유로운 작품활동을 위해 1987년 파리로 건너간 뒤 중국 전통사상을 현대인의 실존과 접목시킨 희곡과 소설을 발표했다. 스웨덴 한림원이 주목한 소설 ‘영산(靈山)’은 산적의 전설이 진실로 받아들여지는 중국 변방을 여행하는 주인공의 이야기로 중국 샤머니즘과 도교적 전통이 살아 있는 작품. 1980년대초 착수해 지난해 영문판이 발간된 이 작품에 대해 한림원은 “‘세계적 문학’의 위대한 개념을 환기시킨다”는 상찬을 아끼지 않았다. 한양대 중문과 오수경 교수는 “가오싱젠의 수상은 ‘동양적인 것이 세계적이다’는 말을 재차 확인시켜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동양화와 바이올린 연주에도 남다른 실력을 가진 가오싱젠은 노벨문학상의 유력한 후보자였던 망명작가 베이다오(北島)와 함께 미국에서 출간되는 중국 문학잡지 ‘경향(京鄕)’의 주요 필자로 활동 중이다.

국내에서 그의 이름은 거의 알려지지 않아 희곡이 무대에 올려지거나 번역된 적은 아직 없다. 오수경 교수는 대학원생과 공동으로 ‘야인’을 번역했으나 아직 출간하지 않고 있다.

<윤정훈기자>digana@donga.com

▼가오싱젠 연보▼

▽1940〓중국 장시성에서 고위 은행원인 아버지와 아마추어 연극배우인 어머니 사이에서 출생

▽1962〓베이징 외국어대학에서 프랑스어 배움

▽1966〓문화혁명 와중에 10년간 재교육 처분을 받음

▽1981〓에세이 ‘현대 소설에 대한 기초적 토론’ 출간

▽1982〓베이징에서 희곡 ‘경보음’ 공연돼 성공을 거둠

▽1985〓희곡 ‘야인’발표, 첫 희곡집 출간

▽1986〓희곡 ‘피안’ 공연금지 처분. 받음. 박해를 피하기 위해 쓰촨 지방으로 도보여행

▽1987〓중국 탈출, 이듬해 파리 정주

▽1989〓중국공산당 당원증 포기. 베이징 민주화 시위 유혈진압 다룬 ‘도망자’ 발표 후 중국 당국으로부터 기피인물로 분류됨. 중국 내에서 작품 판금.

▽1993〓희곡 ‘밤의 방랑자’ 발표

▽1995〓희곡 ‘주말의 사중주’ 발표

▽1999〓소설 ‘영산(靈山)’영역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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