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이경자/공영방송 활로는 '신뢰와 개혁'

  • 입력 2000년 7월 30일 19시 55분


《이경자 한국방송진흥원장이 최근 일본 NHK를 방문해 가쓰지 에비사와 회장과 디지털 방송환경의 변화에 대한 의견을 교환했다. 이원장이 본 디지털시대 NHK의 대응방은을 소개한다.》

‘디지털이다(Being Digital)’의 저자 네그로폰테는 디지털로의 전환은 단순한 기술적 변화가 아니라 새로운 ‘생활 양식’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의 주장대로 방송 영역에서의 디지털은 방송의 ‘진화’라기보다 ‘혁명’을 의미한다. 방송의 개념, 서비스 영역, 재원, 수용자와의 관계 등 모든 영역에서 새로운 ‘양식’을 요구하는 대변혁이 예고되기 때문이다.

이같은 변화 앞에 일본의 공영방송은 두 가지 중대한 도전에 직면해 있는 듯하다. 첫째는 디지털 환경에서 과거의 방송 모델이 여전히 필요한가 하는 문제다. 공영방송의 디딤돌은 전파의 희소성 원리다. 그러나 기술 발달로 전파의 희소성이 더 이상 현실적 제약이 되지 않는 조건에서 준조세 성격을 지닌 수신료로 운영되는 NHK의 존재는 그 명분이 과거와 같이 선명하지도 절실하지도 않다는 것이다.

나아가 다매체 다채널 시장 특성에 비추어 볼 때도 수신료로 지원되는 공영방송은 그 자체로서 시장의 자유로운 경쟁과 국민의 자유로운 선택을 제약하는 일종의 ‘규제’로 작용한다는 주장이다. 이를 근거로 일각에서는 NHK의 민영화 문제도 거론하고 있다.

둘째는 재원 문제이다. 수신료 체납시 처벌을 규정하고 있는 영국과 달리 일본은 국민들의 자발적 납부에 의존하고 있다. 따라서 가계에서 방송을 포함한 정보통신비 지출이 급증하는 디지털 방송환경에서 수입의 98.6%(1999년 기준)를 수신료에 의존하고 있는 NHK의 재원구조는 불안하다.

이에 대한 NHK의 대응은 의외로 단순하고 원론적이다. 에비사와 회장은 ‘국민의 신뢰’를 강조한다. 국민 개개인을 NHK의 ‘주주’로 생각하고 국민과의 연대를 충실히 하여 확고한 신뢰 관계를 구축함으로써 NHK가 처한 ‘시대적 상황’에 정면으로 대처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NHK 구성원들이 국민에게 철저히 봉사하는 ‘개혁과 실천’을 경영 원칙으로 강조하고 있다.

NHK는 질높은 서비스를 저렴하게 제공한다는 명분아래 일본 방송의 디지털화에 주도적 역할을 하고 있다. 한 예로 에비사와 회장은 수신료 안에는 국민에게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할 의무가 포함돼 있는 것이라고 주장해 신규 디지털 방송 서비스 영역에 적극 진출할 것을 천명하고 있다.

국민의 직접적인 부담에 의존해야 하는 공영방송으로서는 다채널 다매체 시대의 디지털 환경이 새로운 도전임에 틀림없다. 그리고 그것은 기술적 도전이라기보다 사람들의 마음이 작용하는 사회적 도전이란 점 역시 분명하다.

방송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중시하고 이를 위한 자체 ‘개혁과 실천’을 강조하고 있는 NHK의 대응방식은 비슷한 도전에 직면해 있는 우리의 공영 방송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경자(한국방송진흥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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