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戰 '민간인사살' 인정…대법, 31년만에 첫확인

  • 입력 2000년 7월 14일 07시 13분


베트남 전쟁 당시 한국군 소대장이 베트남 민간인들을 사살하도록 지휘한 혐의를 우리나라 대법원이 인정해 그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했던 사실이 31년 만에 처음으로 밝혀졌다.

국군의 베트남 민간인 사살이 법원 판결에 의해 인정된 것은 이것이 유일하다. 국방부는 최근에도 “베트남전 관련 자료를 찾아보았지만 민간인 살해 사례는 없었다”고 부인해왔다.

그러나 유죄판결을 받은 당사자는 당시 사건이 조작됐다며 진상조사를 요구하고 있다.

이에 따라 베트남 민간인 사살의 진상을 둘러싸고 국내외에서 논란이 일 것으로 보인다.

13일 대한변호사협회와 대법원에 따르면 대법원은 1969년4월29일 당시 베트남에 파병된 육군 ○○사단 ○○연대 화기소대장 김모씨(59·현재 충남 거주)에 대해 살인 및 명령위반 허위보고 약탈 살인특수교사 등의 혐의로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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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결문에 따르면 김씨는 68년7월15일 베트남 전쟁 참전중 소대원을 이끌고 매복지점이 아닌 곳에서 매복을 하고 있다가 다음 날 오전 1시경 그곳을 지나던 베트남인 7명을 체포했다는 것이다. 김씨는 이들이 베트남 민간인이라는 사실을 알고도 소대원들과 함께 몸을 수색한 후 신발과 손목시계를 압수했다는 것.

대법원은 또 소대원들이 도주하는 베트남인 1명을 추격 사살하고 체포한 7명은 원래 매복지점에서 베트콩을 사살한 것처럼 꾸미기 위해 매복지점으로 이동시키다가 2명은 놓치고 5명은 클레이모를 발사해 사살했다는 군 검찰의 기소내용을 인정했다.

김씨는 이 같은 혐의로 68년 7월16일 군 검찰부에 의해 구속기소돼 같은 달 26일 1심인 보통군법회의(군사법원 전신)에서 사형선고를 받았으며 다음해 2월12일 국방부 고등군법회의에서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뒤 대법원에서 그대로 확정됐다.

김씨는 복역중 78년 12월 징역 20년으로 감형됐으며 83년 가석방됐고 이어 88년 사면 복권됐다.

그러나 올 봄 김씨는 당시 군 검찰의 기소가 잘못됐고 대법원 판결도 이를 잘못 인정한 것이라며 재심과 진상조사를 요구하고 있다.

변협은 이에 따라 진상조사위를 구성해 조사에 착수했으며 13일 조사보고서를 작성했다.

진상조사위원인 안병룡(安炳龍)변호사는 “1∼3심 판결문을 다 검토해보고 당시 인사참모 등 관련자에게도 문의해 보았으나 진상을 정확히 파악하기는 어려웠다”고 말했다.

안변호사는 또 “김씨는 법원에 재심을 내달라고 했지만 판결내용을 뒤집을 만한 객관적인 반증이 없어 재심청구에 해당하지 않기 때문에 도와줄 수 없었다”고 말했다.

한편 미국에서는 70년대 이후 미군에 의한 베트남 민간인 사살이 문제돼 71년 의회 차원의 진상조사가 진행됐으며 그 결과 이른바 ‘밀라이 학살 사건’이 처음으로 드러났다.

이 사건은 68년 밀라이 마을에서 민간인 173명이 사망한 사건으로 이로 인해 사격명령을 내렸던 제11보병여단 찰리중대의 윌리엄 켈리 중위가 구속돼 종신형을 선고받았으며 사단장이었던 새뮤얼 코크스 소장이 징계위원회에 회부됐다.

이후에도 미국에서는 베트남 민간인 사살 문제가 끊임없이 제기돼 아직까지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이수형·신석호기자>soo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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