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6·25총선이후]정치불만 民心 개혁票로 연결 안됐다

  • 입력 2000년 6월 28일 18시 52분


25일 일본 총선결과에 대해 서방 언론매체들은 “일본의 유권자는 현재의 정치에 불만을 갖고 있지만 근본적인 개혁을 선택할 용기는 없었다”고 평했다. 변화와 안정 사이에서 고민하는 일본 유권자의 심리를 지적한 것이다.

변화의 조짐은 이번 선거에서 확연히 드러난 여촌야도(與村野都) 성향에서 읽을 수 있다. 지방과 농촌지역에서는 전통적으로 여당이 강한 편이었다. 그렇지만 야당이 도시에서 압도적으로 유리한 편은 아니었다.

그러나 이번 선거에서는 달랐다. 야당이 도시에서 초강세를 보인 것이다.

도쿄(東京)도와 그 주변 지역을 포함하는 간토(關東)지방 의석은 143석으로 전체 480석의 30%. 해산 전 이 지역의 자민당 대 민주당 의석은 80대 30. 그러나 이번 선거로 61대 49가 됐다. 차이가 50석에서 12석으로 줄어든 것이다. 특히 도쿄는 19 대 12로 민주당이 앞섰다.

거물정치인이 대거 낙선한 것도 이변이다. 통산상과 농림수산상이 낙선했다. 현직 각료가낙선한 것은 처음이다. 각료를 지냈던 이들도 대거 떨어졌다. 이들은 한결같이 “간판이 통하지 않았다”며 고개를 떨궜다. 여성의원도 현행 헌법이 시행된 47년 이후 가장 많은 35명이 탄생했다. 종전기록은 해산 전의 23명이었다.

그러나 바뀌지 않은 부분이 더 많았다.

인물보다는 간판과 경력을 중시한 편이었다. 한국의 16대 총선 결과에서는 초선의원이 111명으로 전체의원의 40.6%를 차지했다. 그러나 일본의 새 얼굴은 22%대(106명)에 머물렀다. 집안 대대로 지역구를 이어받은 ‘세습의원’은 110명이나 됐다.

투표율도 낮았다. 96년 투표율은 전후 최저치인 59.7%. 이번에는 투표시간을 저녁 8시까지 2시간 늘렸지만 62.5%에 머물렀다. 지지정당이 없는 ‘무당파’도 여전히 40∼50%나 됐다. 이들이 선거의 ‘캐스팅 보트’를 쥔다고 말한다. 그러나 대부분은 투표장에 가지 않아 여론조사 때만 ‘위력’을 발휘하는 종이호랑이로 변하고 있다.

일본의 유권자가 정치에 등을 돌리게 된 것은 우선 정당에 책임이 있다. 정당간 정책대결이 없었기 때문이다. 정치가 유권자의 관심을 끄는 데 실패한 것이다. 경제적 풍요도 한몫 했다. 경기만 좋으면 정치가 어떻게 돌아가든 상관없다는 풍조가 팽배하다. 낙선운동이 별달리 효력을 발휘하지 못한 것도 유권자의 무관심과 관련이 있다. 그런 면에서 ‘잃어버린 10년’으로 표현되는 일본의 장기불황은 역설적으로 정치의 중요성을 일깨우고 있다.

일본의 유권자는 앞으로도 상당기간 변화와 안정 사이에서 방황할 것으로 보인다. 이번 총선에서 나타난 변화의 조짐이 유지될 것인지가 관심거리다. 그에 대한 해답은 내년 여름의 참의원 선거에서 확인될 것이다. 참의원 선거가 주목받는 이유다.

<도쿄〓심규선특파원> kssh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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