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틴 '언론 길들이기']비판성향 미디어재벌 구속

  • 입력 2000년 6월 14일 19시 45분


러시아 권력과 재벌언론이 정면 충돌했다.

러시아 검찰은 13일 유대계 언론재벌인 블라디미르 구신스키 미디어-모스트그룹회장(48)을 전격 구속했다. 검찰은 구신스키가 사유화 과정에서 국유자산을 사기로 빼돌린 혐의를 받고 있다고 발표했다. 이미 세무당국이 지난달부터 미디어-모스트 그룹에 대한 세무조사를 벌이고 있어 탈세 혐의가 추가될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미디어-모스트 그룹은 정치적 이유에 의한 언론탄압이라고 맞서고 있다. 계열사인 NTV는 13일 정규뉴스를 중단하고 정부의 조치에 항의하는 특별좌담회를 열었다.

구 소련 대통령 고르바초프도 이날 당국의 조치를 비난하는 성명을 발표, “언론과 사회를 공포 분위기로 몰고가려는 폭거”라며 구신스키를 거들고 나섰다.

구신스키는 그동안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집권하면 ‘가장 먼저 손볼 사람’으로 꼽혀왔다. 구신스키는 푸틴의 정적인 유리 루슈코프 모스크바 시장을 대통령으로 밀었으나 루슈코프가 대선 출마를 포기하자 ‘언론의 대통령 만들기’에 실패하고 푸틴과 원수가 됐다.

구신스키는 재벌답게 철저한 시장경제와 서방식 민주주의 신봉자로, 상대적으로 민족주의적이며 권위주의적인 푸틴과는 애초부터 맞지 않았다. 특히 미디어-모스트 계열의 언론사들이 푸틴 대통령이 주도한 체첸 침공을 매섭게 비판하고 NTV가 정치풍자인형극 ‘쿠쿨리’를 통해 푸틴을 웃음거리로 만들어 푸틴의 심기를 건드렸다.

구신스키측은 다른 재벌들과의 형평성을 들어 ‘표적수사’라는 주장을 펴고 있다. 시장경제가 형성되면서 대부분의 재벌들이 정경유착과 탈법을 저지른 마당에 ‘털어서 먼지 안나는 재벌 어디 있느냐’는 항변이다. 또 다른 유대계 재벌로 많은 언론사를 거느리고 있는 보리스 베레조프스키는 더 심한 탈법을 저질렀으나 푸틴과 가깝다는 이유로 아무런 수사를 받지 않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러시아 언론계는 푸틴정부가 들어선 후 언론자유가 위축되고 있는 데 우려를 나타내면서도 구신스키가 그동안 언론을 무기로 권력을 좌지우지하는 등 재벌언론의 폐해가 두드러졌던 점도 반성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구신스키는 96년 대선에서 자신의 계열언론을 동원, 공산당후보를 일방적으로 공격해 보리스 옐친을 재선시키는 등 언론을 이용해 정치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해왔다.

구신스키는 40대에 언론과 금융 정보통신 쇼비즈니스를 묶은 모스트그룹을 세워 최대 민영방송사인 NTV와 위성방송 NTV+, 유력 일간지 ‘세보드냐’, 시사주간지 ‘이토기’, 24시간 뉴스 라디오방송인 ‘에호 모스크바’ 등을 거느리고 언론황제로 군림해왔다.

이번 사태는 국제문제로도 파급될 전망이다. 미국정부는 구신스키 구속 직후 즉각 ‘언론탄압’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빌 클린턴 대통령은 모스크바를 방문했을 때 ‘에호 모스크바’의 토크쇼에 특별 출연, 구신스키에 대한 지지를 간접 표시한 바 있다. 또 구신스키는 이스라엘 시민권자이며 러시아 유대인연합회장이어서 러시아를 비롯한 전세계 유대계의 반응도 주목된다. 러시아에서 유대계는 금융과 언론계에서 큰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모스크바〓김기현특파원>kimkih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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