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흑인교회 폭파 인종혐오범 37년만에 기소

  • 입력 2000년 5월 18일 19시 29분


미국 연방수사국(FBI)이 37년간의 수사 끝에 흑인교회 방화범 2명을 붙잡아 구속기소했다.

미 언론들은 17일 “이번 수사는 정부가 마치 독일이 나치전범을 끝까지 추적해 응징하듯 한번 저지른 인종혐오 범죄는 결코 그냥 지나치지 않는다는 교훈을 보여준 것”이라고 전했다.

1963년 9월15일 미국 앨라배마주 버밍햄시에 있는 흑인 침례교회 계단에서 엄청난 규모의 다이너마이트가 터졌다. 강력한 폭발로 교회 벽에 걸려 있던 예수상이 실내 조명등을 산산이 조각내며 날아갈 정도였다. 죄 없는 4명의 흑인소녀가 벽에 깔려 목숨을 잃었다.

흑인 영화감독 스파이크 리가 만든 ‘4명의 소녀들’이라는 다큐멘터리 영화에서 이 장면이 실감나게 재연됐을 만큼 유명한 사건이었다.

이 사건은 백인우월주의 단체인 큐 클럭스 클랜(KKK)단의 소행으로 밝혀져 당시 마틴 루터 킹 목사가 이끌던 흑인민권운동의 기폭제가 됐다. 온건한 백인들이 흑인을 혐오하는 극단적인 백인들과 갈라선 것도 이 때다.

그러나 정작 폭발물 테러를 저지른 범인들에 대한 응징은 지연돼 왔다.

17일 앨라배마주 배심원단은 미 연방수사국(FBI)이 제출한 증거를 토대로 사건 당시부터 용의자로 지목된 KKK단원 4명 가운데 토머스 블랜턴(61)과 프랭크 체리(69)를 1급 살인혐의 등으로 구속 기소했다. 77년 로버트 챔블리스가 살인죄로 종신형을 선고받아 복역 중 85년에 사망하고 다른 공범은 처벌받지 않고 94년에 사망했기 때문에 사실상 수사가 37년 만에 마무리된 것.

그동안 4차례나 재수사했지만 별 성과가 없던 FBI는 “이번에는 결정적인 증거를 찾아냈다”고 밝히고 있다. 이번 사건은 60년대 흑인을 상대로 한 인종혐오 범죄를 일제히 재수사해 온 미 사법당국의 최대 성과로 평가된다. 미 당국은 94년에 미시시피주 흑인지도자 메드거 에버스 살해사건(63년), 98년에 역시 미시시피주 흑인운동가 버논 다머 살해사건(66년)을 해결했다.

<홍은택기자> euntac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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