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모닝 워싱턴]美전국 어머니들 총기반대 시위

  • 입력 2000년 5월 8일 20시 23분


14일은 미국의 어머니날. 한국처럼 자식들이 어머니의 은혜를 기리고 고마움을 표시하는 날이지만 올해는 더욱 각별한 의미가 있다.

하루가 멀다하고 벌어지는 총기사고에 넌더리가 난 어머니들이 총기규제를 촉구하기 위해 마침내 거리로 나서는 날이기 때문이다.

미국에서는 하루 평균 12명의 어린이들이 범죄나 우발적인 안전사고 등 각종 총기사고로 숨지고 있다. 한국 같으면 관련 부처 장관이 몇 번씩 바뀌고 온 나라가 시끄러울 일이지만 미국에서는 피해자들과 언론을 중심으로 개탄의 목소리만 있을 뿐 사정이 나아질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헌법이 총기소유를 보장하고 있는데다 총기제조업체들이 의회에 강력한 로비를 하고 있어강력한 총기규제를 기대하기는 어려운 실정이다. 지난해 4월 컬럼바인 고교의 충격적인 총기사고로 15명의 학생과 교사가 숨진 뒤 총기규제에 대한 여론이 높았지만 아직 큰 진전은 없는 상태.

이같은 현실에 분노한 미국 어머니들이 어머니날 수도 워싱턴을 포함해 미 전역의 59개 도시에서 ‘100만 어머니 행진’을 벌이기로 했다. 총기규제 관련 집회로는 사상 최대 규모다. 미국 어머니들은 “의회가 총기규제를 위해 노력하지 않을 경우 올해 선거에서 총기규제를 약속하는 후보를 뽑겠다”며 정치권을 압박하고 있다.

물론 이에 대한 반발이 없는 것은 아니다. 총기제조업자들은 “워싱턴에서 열리는 집회는 일상적인 것”이라며 이번 행사가 일과성으로 그칠 것이라고 예상한다. 또 총기소유에 찬성하는 일부 어머니들은 ‘100만 어머니 행진’에 반대하는 항의 집회를 할 예정이다.

그러나 미 언론은 전례 없는 어머니들의 집단행동을 우호적으로 보도하고 있다. 어머니들의 주장이 설득력도 있거니와 숭고한 모성(母性)의 발현을 시비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라는 공감대가 형성돼 있기 때문.

어린이들이 총에 맞아 쓰러지는 것을 매일 지켜보면서도 정치적 이해관계에 얽혀 아무 조치도 취하지 못하고 있는 미국의 아버지들은 거리로 나설 어머니들에게 할말이 없게 됐다.

<워싱턴=한홍기특파원>eligiu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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