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 외무장관 방북]北-러 新밀월관계로 가나

  • 입력 2000년 2월 9일 20시 01분


이고리 이바노프 러시아외무장관이 9일 평양을 방문했다. 90년 셰바르드나제 외무장관의 방북 이후 10년 만인 그의 방북 목적은 61년 체결한 ‘조소(朝蘇)우호협력상호원조조약’을 대체할 ‘우호선린협력조약’(일명 신조약)에 정식 서명하기 위한 것.

구조약이 양국간 ‘유사시 자동 군사개입’을 명문화한 ‘군사 동맹조약’의 성격을 띠고 있다면 신조약은 ‘자동개입’이 삭제된 정상국가간의 관계 설정. 하지만 이바노프 장관의 이번 방북은 예사롭지 않은 측면이 많다.

우선 지난 10년간의 ‘외교공백’을 깨고 북한과 러시아가 본격적인 관계 재정립에 나섰다는 점. 러시아는 90년 한소 수교 이후 한반도에 대한 외교력을 남한측에 집중시켰다. 지난 10년간 한-러 정상이 6차례에 걸쳐 회담했고 양국 외무장관 회담도 4차례나 있었다.

그러나 러시아는 얼마 전부터 한-러간의 급속한 밀착이 오히려 한반도에 대한 자국의 영향력 약화로 귀결됐다고 판단하기 시작한 듯하다.

여기에다 ‘외교관 맞추방사건’(98년), ‘탈북자 중국 송환사건’(99년)이 터지면서 양국 관계가 더욱 소원해졌다.

말하자면 러시아가 한반도에서의 영향력 확대를 위해 남북 양측과의 ‘등거리 외교’를 모색하는 시점에서 조-러 신조약이 체결된 셈이다.

미국의 패권주의와 미국과 일본이 주도하고 있는 전역미사일방어체제(TMD)에 대한 대응차원에서 중-러-북한간의 ‘신밀월 관계’가 형성되느냐도 관심사.

특히 러시아의 무기체계를 그대로 수용한 북한이 겪는 부품난 해소를 위해 러시아가 대북 군사지원을 재개할 것인지도 민감한 대목이다.

하지만 정부 관계자들은 “러시아가 북한과의 관계개선을 꾀하더라도 단기간 내에 지금의 한-러 관계 수준으로 복원하기는 불가능하다”고 본다.

러시아나 북한 양측이 모두 극심한 경제난을 겪고 있어 상호 주고받을 여력이 없다는 것. 이바노프 장관과 김정일(金正日)노동당총비서간 면담이 불발로 그친 것도 양국 관계의 현 주소를 보여주고 있다는 게 정부 당국자들의 시각이다.

<윤영찬기자>yyc1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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