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할리우드에선]"올해는 영화역사 큰획 그은 해"

  • 입력 1999년 12월 2일 19시 47분


21세기 중반쯤 할리우드에서는 ‘99년이 영화의 역사를 바꾼 한 해였다’고 기록될지도 모른다.

‘매트릭스’의 현기증나는 사이버 도원경, ‘파이트 클럽’이 쏟아붓는 시청각적 이미지, ‘블레어 윗치’의 극사실주의, ‘존 말코비치 되기’의 별난 쇼, 시간을 마음대로 거스르는 ‘롤라 런’과 ‘라이미’, ‘식스 센스’가 선보인 섬뜩한 죽음의 시, ‘도그마’에서의 우상파괴….

미국의 연예전문지 ‘엔터테인먼트 위클리’ 최근호는 올해 할리우드 영화들의 경향을 짚어보면서 ‘99년은 21세기형 영화 만들기의 원년’이라고 진단했다.

‘오즈의 마법사’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등이 나왔던 39년 이래 할리우드 주류에서 이렇게 다양한 혁신이 이뤄진 적이 없었다는 것.

새 영화들의 출현은 현실을 그럴듯하게 재현하는 전통적인 영화가 이제 한계에 부닥쳤다는 인식에서 비롯된다.

영화의 이야기는 앞뒤가 맞고 논리적이어야 한다는 원칙에, 이 튀는 영화들은 “왜 그래야 하는데?”라고 묻는 듯하다.

‘롤라 런’에서 죽었던 롤라는 다시 살아나 뛰어다니고, ‘식스 센스’의 유령들은 자신이 죽은 줄도 모른다. ‘존 말코비치 되기’에서 말코비치가 되고 싶다면 그냥 말코비치의 두뇌 피질로 들어가면 된다.

이 전위적인 영화를 만든 감독들이 아이디어를 얻는 원천은 비디오 게임과 인터넷. ‘매트릭스’와 ‘롤라 런’에서 한 단계가 끝나면 다음 단계로 넘어가는 설정은 게임의 진행방식과 비슷하다.

데이비드 핀처 감독은 자신의 영화 ‘파이트 클럽’을 ‘보는’ 영화가 아니라 시청각적 정보를 머릿속으로 ‘다운 로드’시키는 영화라고 부른다.

아티잔 영화사 빌 블록 사장은 비디오 게임기인 플레이스테이션을 빗대어 요즘의 영화들을 ‘플레이스테이션 시네마’라고 부르기도 했다.

디지털 비디오 카메라와 컴퓨터 기술의 발전도 영화 제작의 공동작업을 꺼리는 감독들에게 마음껏 혼자 일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

브래드 피트(파이트 클럽), 톰 크루즈(마그놀리아), 카메론 디아즈(존 말코비치 되기) 등 특급스타들이 이같이 색다른 영화에 서슴지 않고 출연하는 것도 든든한 보험 역할을 하고 있다.

〈김희경기자〉susann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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