印尼정부, 동티모르 ‘인종청소’… 총-칼 앞세워 주민추방

  • 입력 1999년 9월 8일 19시 24분


인도네시아 군부가 직접 혹은 간접적인 방법으로 동티모르내의 독립 찬성파를 제거하는 ‘인종청소’를 시작한 것 같다. 살인 약탈 방화에 강제이주 등…. 세르비아계가 알바니아계를 탄압했던 코소보 상황과 닮았다.

▼"30만명 이주 계획"▼

동티모르를 떠나 외국에서 활동중인 동티모르전국저항위원회(CNRT)가 7일 폭로한 내용은 충격적이다. 인도네시아 군부가 동티모르 주민 80만명 중 무려 30만명을 추방하고 대신 친인도네시아계 주민을 이주시키려 한다는 내용이다. 며칠 전 외신이 인도네시아 군부가 주민 대량 학살과 이주계획을 담은 ‘플랜B’를 마련했다고 전한 내용과 맞아 떨어진다.

인도네시아 정부는 동티모르의 독립에 대비해 주민 20만명을 탈출시키는 계획을 마련한 것이 사실이라고 말한다. 다만 이는 독립에 반대했던 친인도네시아계 주민을 위한 것이며 이를 위해 해군 함정 8척을 이미 동티모르에 파견했다고 밝히고 있다.

그러나 동티모르 딜리의 유엔동티모르파견단(UNAMET)과 외신을 종합해 보면 실제 벌어지고 있는 상황은 인도네시아 주장과 정반대다.

이언 마틴 UNAMET단장은 “동티모르주민은 억지로 차에 실려가고 있다”고 말했다. 증파된 인도네시아 군경과 민병대는 총을 겨누고 주민들을 트럭 등에 태워 서티모르 등지로 추방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대량학살소식도 전해진다.

▼동서지역 분할 포석 ▼

국제적십자사는 이미 주민 6만명이 동티모르에서 쫓겨났다고 7일 밝혔다. 호주로 피신한 카를로스 벨로 주교는 “수일 안에 10만명의 주민이 추방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동티모르인의 독립의지를 꺾기 위해 24년간 무려 20만명을 학살한 인도네시아 군부와 군부 조종을 받는 민병대로서는 주민 강제 추방 쯤은 어렵지 않은 일로 보인다.

계엄령 선포로 강제추방이 더욱 조직적으로 전개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외국의 개입을 막을 수 있기 때문이다.

노벨평화상 수상자인 호세 라모스 호르타는 “인도네시아 군경은 이제 합법적으로 독립찬성파 주민을 사살할 수 있게 됐다”며 “군부가 다른 섬에서 실업자 부랑인 범죄자들을 모집해 동티모르에 투입했다”고 비난했다. 로빈 쿡 영국 외무장관도 “계엄선포 뒤 상황이 더 나빠졌다”고 말했다. 인도네시아군부의 ‘인종청소’목적은 동티모르의 독립 저지이며 최소한 동티모르 지역 가운데 인도네시아 연방에 소속된 서티모르 인접 지역을 흡수하기 위한 것으로 분석된다. 동티모르를 다시 동서지역으로 나누기 위한 포석이란 것이다.

〈윤양섭기자〉laila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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