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심규선/日기장의 어떤 최후

  • 입력 1999년 7월 26일 19시 20분


23일 젠닛쿠(全日空·ANA) 여객기 공중납치 사건 때 범인의 칼에 찔려 숨진 나가시마 나오유키(長島直之·51) 기장이 범인과 나눈 대화내용이 26일 공개됐다.

나가시마기장은 조종실 상황을 지상관제탑에 알리기 위해 범인 몰래 마이크 스위치를 눌렀다. 대화는 그 때 녹음됐다. 약 19분간의 대화가 담긴 녹음테이프에는 기장의 ‘마지막 모습’이 들어 있다.

기장은 범인의 기분을 건드리지 않으면서 조종실 사정을 알리려고 필사적으로 애썼다.

“곧 선회합니다. 요 밑…보면 아시겠지만 미우라(三浦)입니다. 에∼, 요코스카(橫須賀)이고, 저기가 에노시마(江の島) …보입니까?”

“이런 것을 묻는다고 화내지 마세요. 에∼, 어딘가 내리겠지요? 당연한 일이지만… 그때 지시를 하실 것이지만….”

승객 503명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서도 기장은 피를 말렸다.

“지금부터 점점 구름이 나오면… 차츰 날지 못하게 되고…다른 비행기와 충돌할 위험도 있으니까… 고도를 바꾸든가 내리든가 해야 하니까… 생각해 두세요.”

“조금 흔들리니까…고도가 어떻게 돼 있지요? 올리는 것이 흔들림을 없앨 것 같은데….”

범인은 말을 거의 하지 않았다. 기장의 말은 “조금 더 고도를 올리고 싶은데…”라는 것으로 끝나며 비명에 파묻혔다.

도쿄(東京)경시청은 25일 나가시마기장의 빈소에 감사장을 전달했다. 자신의 안전을 돌보지 않고 범인체포에 노력했다는 내용이었다. 최근 일본에서는 ‘안전신화’가 무너지고 있다. 그런 가운데서도 나가시마의 책임감과 냉정함이 일본인의 자존심을 세워주었다는 평가도 나온다. 그래서 영웅시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의 가족들은 25일 30여명만이 참석한 가운데 조용히 장례식을 치렀다.

심규선<도쿄특파원>kssh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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