英상원서 세습귀족 사라진다…「의원자격 박탈」

  • 입력 1999년 2월 3일 19시 47분


귀족에게 상원의원직을 부여하던 영국 상원의 6백년 전통이 대폭 수정된다.

영국 하원은 2일 밤 3백81대 1백35의 압도적 표차로 세습 귀족의 상원의원 자격 및 투표권을 박탈하는 상원개혁안을 승인했다. 이 개혁안은 토니 블레어 총리가 상원에서 세습귀족을 추방하기 위해 지난달 마련했다.

영국 정계의 급격한 변화를 몰고올 개혁안에 대한 2차표결에 앞서 여당인 노동당과 야당인 보수당은 이틀 동안 격렬한 논쟁을 벌였다.

▽상원개혁 배경〓노동당은 표면적으로는 귀족이라는 특수한 신분때문에 상원의원직을 유지하는 제도는 시대착오적이며 현대 민주주의제도에도 걸맞지 않다는 이유를 내세우고 있다. 일부 세습 의원들은 의회에 출석조차 하지 않는 등 불성실한 의정활동을 하고 있어 이같은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그러나 노동당이 정치적 동기에서 상원개혁을 추진하고 있다는 분석도 설득력을 갖는다. 현재 영국 상원의원은 1천1백65명. 이중 7백59명은 조상 덕분에 태어날 때부터 상원의원직을 보유하는 세습귀족 의원이며 나머지는 자신의 업적으로 작위를 받은 종신의원과 성공회 고위 성직자 등.

세습 귀족 의원 중 노동당에 가입한 의원은 겨우 18명뿐이어서 상원은 항상 보수당이 지배해왔다. 이때문에 노동당 정부의 법안이 하원을 통과한 뒤에도 상원의 거부권 행사에 따라 1년간 발효가 연기되는 경우가 비일비재다. 블레어총리가 취임한 후 무려 39건의 법안이 상원에서 퇴짜를 맞았다.

세습귀족 의원을 없애면 결과적으로 노동당이 유리한 상황이 조성되는 것이다.

▽개혁안 내용〓지난달 20일 블레어총리가 내놓은 상원개혁백서의 골자는 세습귀족 의원직을 모두 박탈하고 상원의원 중에서도 20명만 실제 입법활동을 할 수 있도록 하자는 것.

또 △상원개혁안이 통과되는 의회 회기말부터 실효성을 갖고 △내각은 하원 및 유럽의회선거에 대한 투표권을 포함해 세습귀족의 자격에 대한 과도기 규정을 만들 수 있다는 내용도 들어있다.

▽전망〓하원은 상원개혁안을 놓고 3차례의 표결을 해야 하기 때문에 마지막 표결이 남아있다. 그러나 보수당의원들도 기본적으로는 시대에 뒤떨어진 상원개혁에는 찬성한다는 입장이어서 최종적으로 통과될 전망이다. 다만 노동당정부가 정치적인 불순한 의도에서 개혁을 추진하고 있다고 반발하고 있어 양당간 갈등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개혁안이 하원을 통과하면 올해 말 상원에 상정된다. 개혁안이 통과되면 다음번 총선이 치러질 2002년에는 새로운 개혁상원이 구성될 것으로 보인다.

〈강수진·김태윤기자〉sjk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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