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스탠더드 37]선진국 국민의 몸에 밴 검약

  • 입력 1998년 11월 15일 20시 08분


《세계의 부자나라 사람들이 구두쇠작전을 펼치는 동안 우리는 어설픈 부자흉내를 내왔다. 1인당 국민소득이 우리보다 훨씬 많은 선진국 국민들은 아끼고 절약하는 데는 선수들이다. 우리나라 같으면 쓰레기통으로 직행할 중고품도 선진국에선 싼 것은 25센트∼1달러(3백30∼1천3백원), 약간 비싼 것은 3∼5달러(약 4천∼5천5백원)에 사고 판다. 금이야 옥이야 키우는 아기한테도 중고옷 중고신발을 입고 신게 한다. 그들의 구두쇠작전을 들여다본다.》

▼구두쇠 작전▼

독일 쾰른에 사는 변호사 라인하르트 부부는 저녁 산책 때 수첩과 볼펜을 들고나가 여러 가게를 돌아다니며 식료품값을 적어놓는다. 휴일이 되면 메모한 가격을 비교하면서 ‘치즈는 이 가게,오렌지는 저 수퍼마켓’식으로 구입한다.

독일인들의 절약정신은 1회용 티슈 사용에서도 드러난다. 거리를 걷거나 지하철을 타면 호주머니나 핸드백에서 구겨진 휴지를 꺼내 코를 풀고 다시 챙겨넣는 사람들을 자주 본다.

덴마크의 승용차 나이는 평균 10년. 주말이면 차고 앞에서 정비책자를 열심히 들여다보며 차를 닦고 수리하는 모습들을 심심치않게 만난다. 생산이 중단된지 15년이나 지난 독일산 폴크스바겐 1303 모델이 지금도 거리를 누빈다.

노르웨이 수퍼마켓에서는 구두쇠 주부들을 위해 오이 양배추 등 채소를 3분의 1, 4분의 1, 절반크기 등으로 다양하게 잘라 판다. 음료수캔도 어린아이용 성인용으로 크기를 세분화해 낭비를 없앤다.

영국 사람들은 찻잔에 가득찬 홍차가 흔들려 쏟아지면 접시에 고인 차를 다시 찻잔속에 부어 마신다.

▼벼룩시장 이용▼

‘나의 고물이 다른 이에겐 보물’. 선진국에 가면 흔히 볼 수 있는 게 차고세일(Garage Sale). 집에서 쓰던 물건을 차고 앞에 진열해놓고 싸게 판다. 호주에 사는 양영철(40·사업)씨는 이민초기에 생활용품을 모두 차고세일에서 마련했다. 양씨의 회고.

“차고세일한다는 곳에 가보니 그릇 옷 책 장난감 바베큐도구 정원기구 페인트 등 온갖 잡동사니가 다 나와 있더군요. 진흙이 덕지덕지 묻은 신발 한 짝도 몇십센트의 가격표가 붙은채 진열돼있어 웃음이 나왔어요. 곰곰 생각해보니 웃기만 할 일이 아니었고 우리가 살아온 방식이 반성이 되더군요.”

뉴질랜드에선 중고생활용품만 전문으로 파는 체인점 캐쉬컨버터(Cash Converter)가 전국에서 성업중이다.

영국의 초중고교에서는 학생들이 졸업하거나 학년이 올라가면서 못입게 된 교복을 헐값에 파는 점블세일(Jumble Sale)이 매년 열린다.

캐나다 사람들은 이사갈 때 필요없는 물건들이나 쓰지 않게된 물건들을 집 앞마당에 내놓고 헐값에 파는 마당세일(Yard Sale)을 한다. 동네소식지에서 세일 장소를 확인한 인근 주민들은 쓸만한 물건을 고르기 위해 모여든다.

미국 뉴욕 맨해튼 패션거리 6번가에서 주말에 열리는‘고가구세일(AnticShow)’도 유명하다.

메사추세츠주 펜실베이니아주에서 밤새 몇시간씩 트럭을 몰고온 상인들과 쓰던 물건을 직접 들고나온 시민들이 아침 일찍부터 난전을 펼친다. 반지 시계에서부터 식기 연장 그림 옷 가구 축음기 카메라 인형에 이르기까지 없는 게 없다.

▼직접 만든다▼

스페인엔 옷을 만들어 입는 사람이 많다. 동네마다 옷본 레이스 단추 등을 파는 가게가 즐비하며 상류층 동네라고 예외는 아니다. 여성잡지에는 옷본이 30∼40페이지씩 실려있다. 유행이 지난 옷이나 물려받은 옷을 수선해 입는다.

미국 앨러배머주에 사는 토마스(56)는 주말마다 가구만드는 게 취미. 목공소에서 산 널판지를 규격대로 잘라 테이블을 만들고 선반 옷장도 만든다. 그는 부인이 짠 레이스로 가장자리를 장식해 만든 나무 스탠드를 집안의 가장 큰 보물로 생각한다.

▼재활용▼

뉴질랜드로 이민을 가서 웰링턴에 사는 이종현(38)씨 큰 아이는 유치원에 처음 간 날 기겁을 했다. 유치원 마당 한쪽에 시커먼 폐타이어로 만든 그네와 양철로 만든 미끄럼틀을 보고 놀란 것. 크리스마스 때는 허름한 중고 모형 크리스마스 트리 앞에서 간단한 파티 뿐이었다. 산타클로스 분장을 한 교사가 나눠준 것은 간단한 선물이었다. 이씨의 말.

“우리 아이는 어른 손가락만한 중고 망원경을 받았습니다. 다른 아이들 선물도 대부분 우리돈으로 1천원이 안되는 중고 장난감이더군요.”

이스라엘 주부 애비(35)는 초등학교 3학년인 딸 캐롤을 등교시킬 때 잊지 않고 챙기는 게 있다. 음료수캔 통조림캔 고양이먹이캔 등 하루에도 몇개씩 쏟아져 나오는 알루미늄캔을 책가방에 넣어주는 일이다. 캐롤의 학교에서는 학생들이 가지고 온 캔들을 팔아 학교운영기금으로 활용하고 있다.

미국의 주택가 슈퍼마켓 앞에는 분리수거한 맥주캔을 한아름씩 들고와 할인쿠폰으로 바꿔가려고 줄 서 있는 사람들의 모습을 자주 볼 수 있다.

▼물려받기▼

남편 유학시절 갓 결혼한 스웨덴 친구집을 방문했던 주부 안영옥(40·경기도 평촌)씨 경험담.

28평 아파트 입주금을 은행에서 빌려 내고 한달에 우리돈 20만원꼴로 갚아 나가던 그들 부부의 신혼살림을 보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대부분 양가 부모 대대로 물려받은 것들이었다. 스웨덴 친구는 후라이팬 식기류를 보여주며 “우리들의 첫 월급으로 산 것”이라고 소개했다.

그리스 주부 헬렌(50)은 20년전 가계부를 보관하고 있다. 그녀 집에는 친정 아버지한테 물려받은 소파와 식탁 의자가 있으며 세탁기는 15년됐다.

독일 초등학교 아이들의 교과서 맨 뒷장을 보면 3, 4명의 이름이 적혀있다. 선배가 깨끗하게 사용하고 후배에게 물려준 책들이다. 물가가 비싼 스웨덴에서는 옷은 물론 심지어 신발까지 부모로부터 대물림받는 게 보통이다.

〈허문명기자〉angelhu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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