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기업은 외국컨설팅社의 『봉』…2천억시장 거의 장악

입력 1998-10-11 19:08수정 2009-09-24 2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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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수합병(M&A), 외자유치, 계열사 매각, 자산 부채 실사(實査), 경영진단, 컨설팅….

국제통화기금(IMF)에서 긴급자금을 지원받은 이후의 한국 경제를 이야기하다보면 자주 등장하는 단어들이다.

한국 기업들이 ‘자의반 타의반’으로 이같은 구조조정에 나서면서 고급용역을 사고 파는 장(場)이 국내에 섰다. 돈을 대거나 계열사를 사줄 해외 전주(錢主)를 찾아주는 투자은행, 기업의 가치산정이나 재무분석을 해주는 회계법인, 경영혁신을 위해 전략과 방안을 마련해주는 컨설팅업체….

이들이 용역을 제공해주는 대가는 비싸다.

용역을 사는 쪽은 주로 기업과 은행. 최근에는 정부부처 공기업도 가세했다. 파는 쪽은 주로 미국계 업체들.

지난해 말부터 최근까지 1년도 안되는 기간의 국내 구조조정 용역 규모는 큰 것만 쳐도 1천억원을 넘는다.

국내 기업 관계자들은 “외자유치 등이 성공할 경우 지급될 성공보수 등을 합치면 2천억원이 넘을 것”이라고 추산하면서 “불가피한 비용이긴 하지만 거품이 많은 것 같다”고 지적한다.

▼채권자들의 강요〓IMF관리체제 이전에도 기업들이 새 사업에 진출하는 경우 등에 외국업체의 컨설팅을 받기는 했으나 실사 회계감사 등은 국내 회계법인에 의뢰하는 게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외환위기에 빠진 우리나라가 외국에서 달러를 빌려올 때 채권자들이 각종 조건을 붙이는 바람에 외국계 회계법인 등이 본격적으로 한국시장에 진출하게 된 것.

국내 25개 은행은 은행별로 10억∼20억원을 들여 경영진단 및 경영정상화계획에 대한 실사를 이른바 빅6 미국계 회계법인으로부터 받았다. IMF와 세계은행(IBRD)이 지난해 긴급자금을 제공하면서 국내 은행들에 실사를 받도록 의무화했기 때문.

실사 결과 동화 대동 동남 충청 경기은행 등은 퇴출당했다. 퇴출 근거를 찾는 일에 제돈을 쓴 셈.

정부는 IBRD의 요구에 따라 ‘기업회생작업(워크아웃)을 할 때 잘 모르는 것이 있으면 물어보라’는 취지로 9월초 조흥 상업 제일 한일 외환은행 등과 외국 투자은행들을 짝지워 주었다. 이른바 워크아웃 자문단.

자문 수수료로 은행당 3백만∼5백만달러씩 모두 2천만달러 이상(약 3백억원)을 쓸 계획이다.

비용은 은행과 정부가 반반씩 낸다. 정부는 IBRD 차관을 은행에 빌려주고 외국 투자은행들은 IBRD가 제공한 돈의 일부를 다시 거둬가는 셈.

▼돈값을 하나〓전국적인 영업망을 가진 15개 은행 중 해외매각이 결정된 제일 서울은행을 제외하고 외국업체의 컨설팅을 받지 않은 곳은 기업 평화은행 두 곳뿐.

적게는 20억원, 많게는 70억원이 넘는 컨설팅료를 지불했다.

보람은행의 경우 개인과 중소기업 등 시장에 따라 사업부제를 만들고 여신리스크 관리를 미국식으로 고치는 등 선진국형 시스템을 갖췄다고 평가받고 있다. 지난 4년여간 70억원을 들여 매킨지가 수행한 컨설팅을 그대로 실천에 옮겼기 때문.

보람은행 관계자는 “컨설팅사의 서비스는 어찌보면 뻔한 이야기”라며 “최고경영자와 임직원들의 혁신의지가 결합되지 않으면 컨설팅보고서는 휴지조각이 되고 만다”고 지적했다.

‘뻔한 이야기를 먹히도록 만드는’ 것이 컨설팅사의 역할이기도 하다.

보스턴사의 컨설팅을 받은 신한은행 관계자는 “같은 이야기라도 제삼자, 특히 외국의 권위있는 기관이 할 때 임직원들이 받아들이는 태도가 달라진다”며 “그것만으로도 비싼 대가를 치를 만한 가치가 있다”고 말했다.

문제는 비싼 돈을 들여 서비스를 받고난 뒤 보고서를 썩이는 것. K은행은 미국업체에서 20억원짜리 컨설팅을 받고난 뒤 실행에 옮기지 않고 있다가 최근 다른 은행과 합병키로 결정한 뒤 같은 업체에 19억원짜리 컨설팅을 또 의뢰했다.

외국계 투자은행들은 외자유치에 매달리는 한국 기업과 은행의 처지를 악용해 비싼 수수료를 받는 경우도 있다. 성공 가능성이 별로 없음에도 전주를 알선해주겠다고 나서서 수수료를 챙기거나 외자를 유치한 뒤 과도한 성공보수를 받는 것.

▼말라 죽는 국내 용역업계〓삼성경제연구소 등 대기업계열 경제연구소, 능률협회, 표준협회, 생산성본부 등 국내 컨설팅 업체는 최근 규모가 커진 고급용역시장에 명함도 못내밀고 있다. 발주기업에서 국내업체는 아예 제외시키기 때문.

금융감독위원회조차 조직개편 관련 컨설팅을 미국의 매킨지와 수의계약했다.

외국업체들의 유능함에 대해서는 국내 업계에서도 대체로 동의한다. 삼성경제연구소측은 “외국업체들이 해외 각국에서 수행했던 다양한 프로젝트로 대규모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해두었기 때문에 쓸 만한 정보가 많은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외국업체에 전적으로 의존한다면 컨설팅 등 고부가 정보산업이 국내에서 발전할 수 없을 것이라는 지적도 빼놓지 않았다.

이 연구소측은 “국내에도 세계 유수의 금융기관이나 컨설팅회사 근무경력이 있는 유능한 인력이 적지 않다”면서 “한국 경제의 상황에 대해 잘 알고 있는 이들이 외국인 전문가에 비해 크게 뒤지는 것은 아니다”고 설명했다.

기획예산위원회는 정부부처 경영진단 컨설팅 용역(60억∼70억원 추정)과 관련, 분야별로 9개 사업자를 정하기 위해 국내외업체를 대상으로 공개입찰을 실시할 계획이다.

업계에서는 기획예산위의 이번 사업자 선정방식이 대형 컨설팅 용역을 발주하는 모델이 돼야 할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이용재기자〉yj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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