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각 차오스?]全人大 이끌며 대의정치 강조

  • 입력 1997년 9월 18일 20시 30분


이번에 실각한 차오스(喬石)전인대상무위원장은 덩샤오핑(鄧小平)사후 장쩌민(江澤民)주석과 함께 중국을 이끌어갈 강력한 실력자로 한때 부각됐던 인물이었다. 87년 중국공산당 정치국상무위원에 진입한 이후 권력의 핵심에서 벗어난 적이 없었고 덩사후 장주석의 최대 정치적 라이벌로 역할해 왔기 때문이었다. 차오는 특히 87년 천안문사태 당시 시위학생들의 진압문제를 놓고 당지도부간에 심각한 의견대립이 있을 때 정치국상무위원회 표결에서 기권, 덩샤오핑의 무력진압책에 간접적으로 반대한 전력이 있다. 차오는 또 93년 국회의장격인 전인대상무위원장에 선출된 이후 전인대의 입법기능강화 등을 역설, 대의정치확립을 강조해왔다. 이런 전력으로 인해 차오는 외부세계에 진보적인 인사로 비쳐왔고 그의 언행이 장주석체제에 대한 저항으로 확대해석되는 경우가 많았다. 올해 73세의 차오는 저장(浙江)성 출신으로 화둥(華東)연합대학을 졸업하고 1940년 중국공산당에 가입했다. 상하이(上海)를 중심으로 활동하던 차오는 개혁개방정책이 실시된 직후인 82년 당연락부장 중앙판공청주임 등에 기용됨으로써 중앙정계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차오는 이후 주로 정법위원회 서기 중앙기율검사위원회 서기 등 정법 및 공안계통을 책임지고 일해왔다. 이로 인해 차가운 이미지가 남아있으나 실제로는 온화하고 합리적이라는 평을 들어왔다. 차오는 제13대부터 정치국상무위원으로 발탁돼 현 중국지도부 인사중에는 가장 관록있는 인물로 꼽혀왔다. 톈안문(天安門)사태 후에는 총서기 기용설도 유력하게 나돌았다. 그러나 이런 차오도 세대교체를 명분으로 한 장주석의 정리방침에 마침내 실각된 것이다. 〈베이징〓황의봉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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