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和歌는 왕인박사가 창시』…홍윤기박사 첫 밝혀

  • 입력 1997년 1월 30일 11시 21분


일본 시가의 대표적 시형태인 와카(和歌)는 고대일본에 <천자문>과 <논어>를 전해준 백제의 王仁 박사가 창시해낸 것이라는 사실이 국내에 처음 소개됐다. 洪潤基 韓日역사문학연구회 회장(일본 센슈대학 문학박사)는 월간 '현대문학' 2월호에 기고한 글 「일본 와카를 창시한 왕인 박사와 한신가(韓神歌)」에서 이같이 밝혔다. 洪박사는 그 근거로 왕인의 <梅花頌>을 들고 "서기 313년에 쓰인 이 시는 와카의 기본음수율인 5.7.5.7.7음에 모두 31자를 갖고 있는 최초의 와카로, 서기 905년에 왕명으로 편찬된 <古今和歌集>의 고대 필사본을 통해 오늘날까지 전해오고 있다"고 말했다. <매화송>은 왕인이 日왕자 오사사키노미코도에게 왕위에 오를 것을 권유하는 노래로, 오사카 항구의 옛 나루터 이름을 따 <나니하츠의 노래>로 불리기도 한다. 당시 3년동안 왕위가 빈 사실을 안타까워 하던 왕인이 이 노래를 왕자에게 간절한 마음으로 바치자 왕자는 이를 받아들임은 물론 수도도 왕인의 권고에 따라 나라에서 나니하츠로 옮겼다는 것이다. 洪박사는 "왕자에게 경전을 가르치는 師匠이자 文首라는 칭호의 정무장관이었던 왕인은 이같은 사실들로 미루어보아 당시 왕에 버금가는 최고위의 수상이었음을 추찰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국내에 처음 소개되는 <매화송>은 「나니하츠에 피는구나 이 꽃은 /겨울잠 자고 지금을 봄이라고 피는구나 이 꽃은」이라는 내용으로 돼 있는데, 이 와카는 12세기말경 일본의 저명한 시문학자였던 후지와라노 사타이에가 직접 붓으로 <古今和歌集>을 베껴 써 현재 일본 국보로 지정돼 있는 <다테본(伊達本)>에 수록돼 있다. 洪박사는 <古今和歌集>의 서문을 쓴 키노츠라유키가 "일본시가 중 최초의 와카는 고대신화시대에 스사노오노미코토라는 神이 쓴 <야쿠모<八雲)>"라고 주장하고 있으나 <야쿠모>가 문자화한 것은 712년으로 <매화송>이 나온 것보다 4백년이나 뒤진데다 신이 썼다는 어떠한 물증도 없어 신빙성이 없다고 밝혔다. 그는 또 "설사 <야쿠모>가 구전가요라 하더라도 그것이 왕인이 창시한 와카의 음수율 5.7.5.7.7음을 가졌다고 단정할 수 없으며 오리쿠치 시노부 박사,히사마츠센이치 교수 등 일본학자들도 <야쿠모>가 스사노오노미코토 神이 썼다는 것은 조작이라고 공박하고 있다"고 말했다. 洪박사는 와카가 창시 이후 3백년이 지나서야 발전하게 된 이유에 대해 "이는 당시 문자 보급에 그만큼 많은 시간이 걸렸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그동안 와카는 왕실의 왕자들의 전유물처럼 여겨져오다가 7세기경에는 궁중을 중심으로 와카가 크게 성행해 대표적 시가집인 <만요슈(萬葉集)>이 나오기에 이르렀다"고 설명했다. 한편 洪박사는 "일본 황실의 祭神은 부여의 영고 고구려의 동맹과 맥을 잇는 韓神"이라고 일본의 <史學雜誌> 제23호를 인용해 새롭게 밝히면서 "이는 일본 천황이 한국에서 건너간 한국인의 후예라는 사실을 시인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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