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층 높이 공사장서 안전모-고리 안써… 인부들 “아무도 뭐라 안해”

  • 동아일보

5년간 연평균 273명 사망… 50억 미만 영세 건설현장
수백kg 철근 작업에 관리자 없고, 계단엔 잡동사니… 사고날까 아찔
소규모 공사 안전관리자 의무 없어… “입찰 때 안전관리 평가 반영해야”

지난달 11일 서울 마포구의 한 공동주택 건설 현장에서 현장 노동자가 안전모와 안전고리 없이 4층 높이에서 하역 작업을 하고 있다. 고층 작업 시 노동자는 추락 방지를 위해 반드시 안전고리를 착용해 난간에 고정해야 하지만, 이곳 노동자들은 안전고리 없이 작업하고 있었다. 이문수 기자 doorwater@donga.com
지난달 11일 서울 마포구의 한 공동주택 건설 현장에서 현장 노동자가 안전모와 안전고리 없이 4층 높이에서 하역 작업을 하고 있다. 고층 작업 시 노동자는 추락 방지를 위해 반드시 안전고리를 착용해 난간에 고정해야 하지만, 이곳 노동자들은 안전고리 없이 작업하고 있었다. 이문수 기자 doorwater@donga.com
최근 5년간 공사 금액 50억 원 미만 영세 건설 현장에서 사고로 숨진 사망자가 연평균 273명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공사비 1억 원 미만 ‘초영세’ 현장에서 5년간 연평균 100여 명의 사망자가 발생했다.

대기업이 주도하는 아파트 건설 현장이나 대규모 토목 공사는 정부의 강한 단속, 기업의 감독 등으로 부족하나마 안전 관리가 이뤄지고 있다. 하지만 소규모 업체 위주로 돌아가는 영세 현장은 ‘산업 안전 사각지대’로 방치되고 있다.

1일 김소희 국민의힘 의원실이 고용노동부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2020∼2024년 50억 원 미만 건설 현장에서 발생한 사고 사망자는 2020년 331명, 2021년 298명, 2022년 279명, 2023년 244명, 2024년 212명이었다. 올해는 2분기(4∼6월)까지 121명이 건설 현장에서 사망했다.

겨울철은 사고 위험도가 높아지는 만큼 안전 관리가 더 필요하다. 하지만 본보 취재진이 찾은 영세 공사 현장은 안전 수칙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다. 취재진은 안전모 착용 등 안전 수칙을 철저히 지키면서 지난달 11일 서울 마포구의 한 공동주택 신축 현장에 실제로 취업해 9시간 동안 안전 관리 실태를 살폈다.

● 안전관리자도, 안전모도 없는 현장

“일하는데 안전 때문에 뭐라고 하지 않으니 솔직히 편해.”

현장 작업반장 이모 씨(70)는 안전용 고글도 쓰지 않고 핸드그라인더로 철근을 떼어내며 심드렁하게 말했다. “여기 오기 전에 대형 건설사 현장에서 한 석 달 일하다 왔는데, 거기에 비하면 여긴 안전 관리 없는 셈이야. 그래도 잔소리하는 사람 하나 없어.”

이날 오전 6시 30분, 작업 전 안전 수칙을 확인하는 ‘TBM’이라고 부르는 안전 점검 조회에 작업자 50명가량이 모였다. 형식적인 조회가 끝나자 곧바로 수백 kg짜리 철근 다발을 실은 대형 트럭이 공사장 안에 들어왔다. 차량 진입과 하역을 지휘해야 할 안전관리자와 현장책임자는 보이지 않았다.

“윙” 굉음을 내며 타워크레인이 철근 다발을 들어올리기 시작했다. 안전모조차 쓰지 않은 작업자들이 크레인 아래를 아무렇지 않게 오갔다. 수백 kg의 자재가 머리 위를 지나다니는 현장에서 작업자들은 삼삼오오 모여 커피를 마시고 담배를 피웠다.

자재를 나르는 지게차가 좁은 통로를 오가는데 후진할 때 주변을 봐주는 신호수는 없었다. 비계(임시 발판 구조물) 위에는 쓰다 남은 자재와 쓰레기가 널브러져 있었다.

“아이 XX.” 비명과 함께 크게 부딪히는 소리가 났다. 한 고령 작업자가 A자형 사다리를 옮기다 어질러져 있던 자재에 걸려 넘어졌다. 넘어진 작업자는 “누가 여기 철근 다발을 놨냐”며 화를 냈지만 자기가 잘못했다고 자백하는 사람도, 치우려 드는 사람은 없었다. 계단이나 높은 비계였다면 큰 추락 사고로 이어질 수 있었다.

좁은 계단 통로로 긴 목재를 옮기다가 방향을 틀 때, 무거운 목재가 무기처럼 허공을 휘저었다. 통로에 놓인 석재와 목재가 부딪쳐 큰 소리가 나며 두 동강 났다. 공사 현장에서는 1m 미만 높이에서도 잘못 떨어지면 자칫 생명이 위험할 수 있다. 이 때문에 고층 작업자는 반드시 몸에 달린 안전고리를 지지대에 연결해야 한다. 그러나 이곳에서는 안전고리를 걸고 일하는 작업자는 한 명도 없었다. 안전모를 쓴 사람도 손에 꼽을 만큼 적었다.

● “기업 안전 역량 평가해 입찰에 반영해야”

공사 규모가 큰 현장에서는 안전관리자가 필수다. 작업 도중 위험한 상황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으면 현장에서 지시해 위험 요소를 제거한다.

하지만 소규모 현장에서는 안전 관리가 이뤄지지 않고 있었다. 공사비 50억 원 미만 현장은 현행법상 전담 안전관리자를 둘 의무도 없다. 안전모 착용 등 기본적인 안전 수칙을 지키지 않아도 제대로 된 지적조차 받지 않는 실정이다.

전문가들은 안전 관리에 좋은 평가를 받은 기업이나 사업주가 입찰 수주에서 유리한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정재욱 서울과학기술대 안전공학과 교수는 “보여주기식 현장 점검 대신 회사별 안전 관리 프로세스·역량을 제대로 평가해 공공 입찰에 반영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평소 안전 관리에서 좋은 평가를 받은 회사가 수주에 유리해야 중소 업체도 없는 돈을 짜내 안전에 투자하는 선순환 구조가 만들어진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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