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매체를 매일 들여다보는 사람들은 그 공백을 누구보다 먼저 느낀다. “왜 안 보이지?”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북한에서 지도자 일가의 부재는 언제나 작은 파문을 일으킨다. 그리고 3개월이 지난 11월 마지막 주, 정적을 깨는 장면이 하나 올라왔다. 갈마비행장. 공군 창설 80주년.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30일 “조선인민군 공군 창설 80주년 기념행사가 11월 28일 제2공군사단 59길영조영웅연대 갈마비행장에서 성대히 진행됐다”라고 보도했다. 김정은 총비서가 참석한 이 자리에는 ‘존경하는 자제분’으로 호명된 딸 주애도 동행했다. 노동신문 뉴스1
김정은이 걸어 나오고, 그 옆에 다시 나타난 인물. 검정 가죽 점퍼에 선글라스를 낀, 더 자란 김주애였다.
북한은 이 장면을 그냥 기록하지 않았다. 조선중앙TV는 42분짜리 뮤직비디오를 만들었다. 음악만 흐르고, 화면은 2초 이상 머물지 않는다. 하늘에서 찍은 장면, 조종석 안의 조종사 얼굴, 지상에서 올려다보는 비행기. 광각이었다가 망원이 되고, 다시 손바닥만 한 화면에 김정은과 김주애가 꽉 차오른다. 가장 눈에 들어오는 것은 ‘김정은 없이 등장하는 김주애 원샷’ 이다. 아버지와 함께 서 있다가, 어느 순간 혼자 장교들의 경례를 받는다.
김주애가 사열을 받는 장면. 조선중앙TV 캡쳐
김주애가 여성 비행사로부터 경계를 받는 모습. 조선중앙TV 캡쳐북한이 누군가를 ‘중심’으로 세우고 싶을 때 사용하는 전형적인 방식이다.
이번 화면에서 북한은 여성 조종사들과 ‘1호’의 만남을 특별하게 편집했다. 다정하게 악수하는 장면이 길게 이어지고, 기념사진에서는 김정은 바로 뒤 양쪽을 여성 조종사들이 차지한다.
여성 엘리트를 강조하는 북한 특유의 전통 속에, 다음 세대 이미지를 겹쳐 넣는 노동신문식의 ‘사진 언어’가 그대로 보인다.
그런데 이번 김주애의 재등장은 ‘복귀’라기보다 준비된 전환점 같은 느낌이 더 강하다. 지난 3개월 동안 보이지 않았던 이유를 북한식 이미지정치의 관점에서 보자면 답은 명확하다.
북한은 항상 후계자를 보였다가 → 과하게 보였다가 → 갑자기 숨겼다가 → 더 강한 장면으로 다시 보여준다. 김정일도 그랬고, 김정은도 그랬다. 숨는 시간이 길수록 재등장 장면은 더 강력해진다.
김주애 오른쪽에 김정은의 전용컵과 같은 컵이 놓여 있다. 최고권력자를 의미하는 엠블럼이 금색으로 칠해져 있다. 조선중앙TV 캡쳐그리고 이번 등장에서도 마음에 걸리는 장면이 하나 있다. 김정은의 금색 ‘국무위원장’ 엠블럼이 붙은 컵. 그 컵이 김주애 자리에도 있었다. 사진 한 장이 보여주는 상징성은 생각보다 오래 남는다. 다시 말하자면, 김주애의 이번 등장은 “잠행의 종료”가 아니라 “다음 단계의 시작”에 가깝다. 북한의 이미지 실무진이 세대교체된 이후 촬영 위치, 간부들의 표정, 박수 치는 각도, 등장 간격 하나까지 놀라울 정도로 촘촘하게 계산하고 있다. 김주애의 3개월 공백도 그 계산 속 한 칸이었을 것이다.
3개월 만에 등장한 김주애에 대한 호칭은 ‘존경하는 자제분’이었다. 기존의 호칭과 큰 차이가 없다. 하지만 여전히 그의 나이와 이름에 대한 언급은 없다. 외부 관찰자들은 정보를 자유롭게 취합하면서 그가 10대 초반의 나이에 이름은 김주애라고 할고 있지만 북한 내부에서는 정보가 차단된 만큼 신문과 방송에 보이는 이미지가 그녀의 전부일 수 밖에 없다. 이번에 재등장하면서 김주애는 키가 더 크고 성숙한 외모로 치장한 점이 눈에 띈다.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30일 “조선인민군 공군 창설 80주년 기념행사가 11월 28일 제2공군사단 59길영조영웅연대 갈마비행장에서 성대히 진행됐다”라고 보도했다. 김정은 총비서가 참석한 이 자리에는 ‘존경하는 자제분’으로 호명된 딸 주애도 동행했다. 노동신문 뉴스1 아무도 쓰지 않는 선글래스와 아버지와 같이 번쩍이는 가죽 점퍼를 입고 등장한 점은 과거와 큰 차이는 없더라도 권력을 독점하고 있는 특별한 존재라는 점을 계속 강조하고 있다. 김주애는 이미 북한 화면 속에서 ‘준(準)후계자’의 자리를 잡았다. 이제 우리가 지켜볼 것은 두 가지다. 그의 호칭이 바뀌는 순간, 그리고 혼자 등장하는 시간이 더 길어지는 그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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