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연설을 조작해 방영했다는 의혹에 휘말린 영국 공영방송 BBC의 팀 데이비 사장과 뉴스 보도 부문 총괄 책임자인 데보라 터너스가 자리에서 물러났다고 9일(현지 시간) 파이낸셜타임스(FT) 등이 보도했다.
데이비 사장은 2020년 취임 이후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 당국자 아들의 내레이터 참여, 간판 뉴스 진행자 휴 에드워즈의 아동 성적 이미지 소지 등 수차례 스캔들 속에서도 살아남아 ‘테플론(타격을 입지 않는) 팀’이라는 별명을 얻었지만, 결국 트럼프 대통령 연설 조작 논란으로 자리에서 물러나게 됐다.
BBC 수뇌부가 자리에서 물러나게 된 배경엔 미국 대선 직전인 지난해 10월 방영된 시사 프로그램 ‘파노라마’의 ‘트럼프: 두 번째 기회?’ 특집 다큐멘터리가 결정적 영향을 미쳤다. 미 의회 폭동이 일어난 2021년 1월 6일 트럼프 연설을 오편집해 마치 국회의사당 난입을 선동한 것처럼 왜곡했다는 비판이 제기된 것.
방송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당시 지지자들에게 “의사당으로 걸어갈 것”이라며 “죽을 각오로 싸울 것”이라고 말하는 장면이 나왔는데 이는 연설의 서로 다른 부분을 짜깁기한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로 그는 “의사당으로 걸어가자”는 발언 직후 “용감한 상하원 의원들을 응원하자”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연설의 다른 부분을 한 문장처럼 보이도록 이어붙여 의회 폭동을 선동한 것처럼 보이게 했다는 것이다.
이는 BBC 편집 기준을 설정하는 편집위원회 자문위원인 마이클 프레스콧 전 고문이 이사회에 보낸 메모를 텔레그래프 보도로 알려졌다. 프레스콧의 메모에는 BBC 아랍어 뉴스의 가자 전쟁 보도에서 반이스라엘 편향, 트랜스젠더 커뮤니티에 적대적인 일부 직원들의 영향력 행사 등의 문제를 BBC 경영진이 무시했다는 지적도 담긴 것으로 전해졌다. FT는 메모 유출 후 BBC 경영진이 ‘고도의 긴장’ 상태에 빠졌다고 전했다.
논란이 확산되자 데이비 사장은 “실수가 있었고 사장으로서 최종 책임을 져야 한다”며 사임 의사를 밝혔다. 터너스 총괄 역시 “논란이 BBC에 피해를 주는 단계에 이르렀다”고 밝혔다. 다만, 터너스 총괄은 “제도적 편향 주장은 틀렸다”고 반박했다.
캐롤라인 레빗 백악관 대변인은 이에 BBC를 “100% 가짜뉴스”, “좌파 선전 기계”라고 부르며 맹비난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소셜미디어 트루스소셜에 “BBC의 최고 인사들, 사장 팀 데이비를 포함해 모두 사임하거나 해고됐다. 그들은 내 완벽한 연설을 조작하다가 들켰기 때문”이라고 꼬집었다.
2027년 예정된 왕립헌장(Royal Charter) 갱신 협상이 이들의 사임에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도 있다. 10년 단위로 갱신되는 왕립헌장은 BBC의 존립 근거이자 재원 보장의 법적 토대다. 방송사의 운명이 걸린 중요 협상을 앞두고 논란이 확산되는 것을 피하려는 의도라는 해석이다. BBC는 세계적으로 존경받는 공영방송이지만 영국 내에서는 수신료 기반 재원 모델과 ‘진보 편향’ 논란으로 일부 언론과 소셜미디어의 집중 공격을 받아왔다고 로이터통신은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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