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도경 원장은 “‘명동 시 낭송콘서트’는 근대문학의 성지였던 명동의 본모습을 알리고 그 옛날의 영광을 되살리기 위한 노력”이라며 “더 많은 분이 시의 아름다움과 감동을 느낄 수 있는 자리가 됐으면 한다”라고 말했다. 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
“…인생은 외롭지도 않고/ 거저 잡지의 표지처럼 통속하거늘/ 한탄할 그 무엇이 무서워서/ 우리는 떠나는 것일까/ 목마는 하늘에 있고/ 방울 소리는 귓전에 철렁거리는데/ 가을바람 소리는/ 내 쓰러진 술병 속에서 목메어 우는데.” (박인환 詩 ‘목마와 숙녀’에서)
단발머리 소녀를 향한 터질 것 같은 마음에, 밤새 쓴 ‘자작시’를 건넸던 적이 있다. 답장은 고사하고 눈길 한번 못 받은 게 서러워서, “님은 갔습니다. 아아 사랑하는 나의 님은 갔습니다”를 읊었지만 더는 외우지 못해 소주병만 깠던 청춘. 그 시절, 읽는 것만으로도 설렜던 윤동주, 유치환, 프랑시스 잠, 라이너 마리아 릴케는 언제 내 곁을 떠나갔을까.
김도경 원장은 “‘명동 시 낭송콘서트’는 근대문학의 성지였던 명동의 본모습을 알리고 그 옛날의 영광을 되살리기 위한 노력”이라며 “더 많은 분이 시의 아름다움과 감동을 느낄 수 있는 자리가 됐으면 한다”라고 말했다. 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누구나 간직한 젊은 날의 추억을 회상하며, 가슴을 설레게 했던 시와 시인을 만나는 ‘명동 詩(시) 낭송콘서트’가 올해로 10주년을 맞았다. 유튜브, 인스타그램 등 소셜미디어에서 대다수 활동이 이뤄지는 디지털 세상에서 ‘시 낭송’은 그야말로 아날로그 중의 아날로그. 10년째 행사를 주최해 온 김도경 한국여성문예원장(시인)은 지난달 30일 동아일보와 만나 “갈수록 각박해 가는 세상에서 시는 가장 인간적인 모습을 담고 보여주는 문화”라며 “그 따스함이 좋아서 시 낭송콘서트를 찾는 분들이 여전히 많다”라고 말했다.
2018년 10월 열린 시 낭송콘서트에서 소설가 김훈이 명동과 문학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한국여성문예원 제공1982년 여성들에게 문학 교육과 문학 활동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 설립된 한국여성문예원은 2015년부터 서울 중구문화원과 함께 매년 2~4차례 시 낭송 콘서트를 열고 있다. 배우 최불암 박정자, 시인 나태주 김용택 이승하, 소설가 김훈 등 여러 명사들이 함께 해왔다. 콘서트는 시 낭송과 함께 문학 관련 강의, 낭독극 및 음악 공연 등으로 이뤄진다. 낭독극은 배우들이 대본을 읽는 형태로 진행되는, 주로 동작 없이 화술과 목소리로 연기하는 공연이다.
2018년 10월 열린 시 낭송콘서트에서 배우 최불암(왼쪽에서 세번째)과 박정자(왼쪽에서 네번째), 소설가 김훈(왼쪽에서 다섯번째) 등이 시의 아름다움과 시 낭독의 즐거움을 이야기하고 있다. 한국여성문예원 제공.‘국민배우’ 최불암은 거의 매년 참여한 단골 게스트. 김 원장은 “최 선생님은 예술과 낭만, 시가 흐르는 문화의 거리였던 명동에서 옛 모습이 점차 사라져가는 것을 안타까워 하셨다”며 “시 낭송뿐만 아니라 직접 낭독극 대본을 쓰고 연출까지 맡는 등 열정이 대단하다”라고 전했다.
2018년 10월 열린 시 낭송콘서트에서 박인환의 시에 곡을 붙인 박인희의 ‘세월이 가면’을 노래하고 있는 배우 박정자. 한국여성문예원 제공김 원장은 이젠 시를 즐기는 문화가 사라진 것처럼 보이지만, 의외로 소모임 등을 통해 시를 쓰고 낭독하고 문학기행을 떠나는 사람이 많다고 했다. 특별한 홍보도 하지 않았는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때를 제외하면 시 낭송콘서트를 찾는 사람도 매회 100~200여 명에 이른다고 한다. 김 원장은 “시 낭독은 자신이 느낀 감동을 온몸으로 표현할 수 있다는 점에서 눈으로 읽는 것과는 또 다른 매력이 있다”라며 “낭송자가 느낀 감정을 여러 사람이 함께 호흡하고 공유할 수 있다는 점이 시 낭독회가 주는 즐거움”이라고 말했다.
올해 25회 시 낭송콘서트는 14일 오후 5시 서울 명동 YWCA 강당에서 열린다. 소설가 김훈, 시인 도종환 등과 함께 박인환의 ‘목마와 숙녀’, 김동리의 ‘명동의 달’, 정해종의 ‘흐르는 명동’ 등의 시 낭독과 가수 해바라기, 클래식 음악이 어우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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