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지의 여왕’ 이미자①] “‘천박한 노래’ 꼬리표에도 60년 노래인생, 잘 버텼죠”

  • 스포츠동아
  • 입력 2019년 2월 22일 06시 57분


노래와 함께 살아온 시간이 60년이지만 이미자의 목소리만큼은 변하지 않았다. 21일 서울 소공동 웨스틴조선호텔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그는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시련과 한이 담긴 가요의 뿌리이자 전통이 사라지는 현실이 가슴 아프다”고 말했다. 김진환 기자 kwangshin00@donga.com
노래와 함께 살아온 시간이 60년이지만 이미자의 목소리만큼은 변하지 않았다. 21일 서울 소공동 웨스틴조선호텔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그는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시련과 한이 담긴 가요의 뿌리이자 전통이 사라지는 현실이 가슴 아프다”고 말했다. 김진환 기자 kwangshin00@donga.com
■ 데뷔 60주년 ‘엘리지의 여왕’ 이미자

‘동백아가씨’ 등 방송 금지 됐을 땐
마치 목숨을 끊어놓는 듯했지요
내 노래 불러준 서민들이 나의 힘
아직도 열아홉 그때처럼 무대 열정
가수 이미자, 내일은 없어요 호호


“‘천박한 노래’라는 꼬리표가 평생 따라다녔지만, 끝까지 참고 버텼어요.”

대중음악사의 ‘살아 있는 역사’ 이미자(78)의 노래 인생은 현재진행형이다. 열여덟 꽃다운 나이에 데뷔해 어느새 팔순을 바라보지만 무대에 오를 때마다 “내일은 없다”는 각오를 드러낸다. 열정과 자부심이 없으면 불가능하다.

21일 데뷔 60주년을 기념해 새 앨범 ‘노래인생 60년 나의 노래 60곡’을 발표한 그는 이날 오후 서울 소공동 웨스틴조선호텔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잘 살았구나”라는 말로 걸어온 길을 돌아봤다.

1시간가량 진행된 간담회에서 그는 허리를 꼿꼿하게 세운 채 서 있었다. “너무나도 감사한 마음을 이렇게 (서서)전달하는 게 도리”라고 했다. 카리스마 있는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때로 가늘게 떨리기도 했고, 노래 인생을 돌아보다 ‘울컥’하기도 했다.

● “보람됐지만 어려운 순간 더 많아”


이미자는 반세기 넘는 시간 사람들의 마음을 위로해왔다. 가슴 깊은 곳까지 파고드는 애절한 목소리와 심금을 울리는 가사에 수많은 이들이 울고 웃었다. 1964년 히트곡 ‘동백아가씨’가 대표적이다. 한국 가요음반 최초로 100만 장이 팔렸고, 가요프로그램에서 35주간 1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왜 이렇게 저를 좋아하나 생각해봤다. 당시엔 다들 살기 힘들었다. 부모님 세대가 그 역경의 시간을 참고 견디며 제 노래를 들은 것 같다. 힘든 삶을 위로하는 노랫말과 저의 목소리가 잘 맞았던 것 같다.”

위기의 순간도 많았다. 불멸의 히트곡 ‘동백아가씨’를 포함해 ‘섬마을 선생님’, ‘기러기아빠’가 방송 금지곡이 됐을 때다. 그는 “목숨을 끊어놓는 듯했다”고 돌이켰다.

“어디에서도 노래를 부를 수 없었다. 그런데도 팬들은 한사코 노래를 불러주셨다. 그 힘으로 버텼다.”

온몸으로 서민들의 마음을 노래로 위로했지만 정작 트로트라는 장르는 저평가됐다.

“큰 사랑에 기뻐할 틈도 없이 ‘꼬리표’가 생겼다. ‘이미자의 노래는 질이 낮다’, ‘천박하다’는 말이 정말 뼈아팠다. 서구풍의 발라드를 불러 볼까도 했지만 참고 견뎠다. 60년이 흐르고 보니 정말 잘 참았구나 싶다. 자부심을 느낀다.”

가수 이미자. 김진환 기자 kwangshin00@donga.com
가수 이미자. 김진환 기자 kwangshin00@donga.com

● “전통가요의 뿌리 지켜야”

60주년을 기념해 앨범을 발표한 이유는 두 가지다. 한결같이 사랑해준 팬들에게 보답하고, 전통가요가 사라지는 걸 막고 싶어서다.

새 앨범은 ‘감사, 공감, 순수’라는 주제로 3장의 CD로 구성했다. 한 장은 신곡 ‘내 노래, 내 사랑 그대에게’를 포함한 발라드 곡으로, 또 한 장은 ‘동백아가씨’, ‘흑산도아가씨’ 등 히트곡으로 채웠다. 이난영 등 선배들이 부른 ‘황성옛터’, ‘목포의 눈물’ 등을 오케스트라 연주에 맞춰 다시 불러 마지막 한 장에 담았다.

“가요는 시련과 한을 담는다. 나라를 잃고 배고픈 설움을 선배들의 노래로 달랬다. 가요의 뿌리이자 전통이 사라지는 게 가슴 아프다. 제가 이 세상에서 없어지더라도 뿌리는 지켜져야 한다.”

이정연 기자 annjo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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