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전지현이 영화 ‘도둑들’에서 마카오의 상징으로 여겨지는 호텔의 벽면 유리를 오려내고 침입하고 있다. (위 )쇼박스 제공. 원빈 주연의 ‘아저씨’는 중국인을 부정적으로 묘사한 부분이 삭제된 채 지난해 중국에서 개봉됐다. (아래) CJ E&M 제공
“저 개발공화국 양아치 ×× 봐라 저거. 중국 애들 1억600만이 대마 하고, 1100만이 헤로인 한다. 유엔이 그렇게 말했어.”
원빈 주연의 영화 ‘아저씨’(2010년)에 나오는, 중국인을 비하하는 대사다. 이 대사는 지난해 중국에서 개봉한 버전에서는 들을 수 없다. 배급사가 현지인을 부정적으로 묘사한 5분 분량을 자진 삭제했기 때문이다.
제작비 110억 원을 들인 ‘도둑들’(25일 개봉)도 중국 시장을 노린다. 런다화(任達華) 등 중국 배우 3명을 캐스팅했고 마카오와 홍콩에서 촬영했다. 영화에는 줄타기 전문 도둑 ‘예니콜’ 역의 전지현이 마카오 시티오브드림 리조트 호텔 벽면 유리를 동그랗게 오려내고 침입하는 장면이 나온다. 배급사는 마카오의 상징으로 여겨지는 호텔 벽면을 훼손한다는 설정이 부담스러워 이 장면을 삭제해 수출할 예정이다.
조만간 현지 개봉할 강제규 감독의 ‘마이웨이’는 중국 여배우 판빙빙(范氷氷)의 출연 분량을 5분 늘렸다. 국내 버전에는 중국 저격수인 판빙빙이 짧은 시간 나왔다가 조선 청년 장동건을 돕고 숨을 거둔다.
이 같은 사례들은 최근 한국 영화가 중국 시장을 뚫기 위해 펼치는 눈물겨운 노력을 보여준다. 제작사들은 삭제나 편집의 고통을 감수하고라도 현지 ‘입맛’에 맞는 영화를 수출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2000년대 중반 이후 침체 내지는 정체기를 겪고 있는 국내 영화계에 중국은 놓칠 수 없는 황금 시장이기 때문이다.
영화진흥위원회 자료에 따르면 2011년 중국 박스오피스 규모는 20억 달러(약 2조3000억 원)로 미국(102억 달러), 일본(23억 달러)에 이어 세계 3위다. 11억 달러인 한국의 2배에 가깝다. 대륙 시장은 하루가 다르게 성장하고 있다.
공동제작도 현지 시장을 공략하기 위한 묘수다. 중국은 수입 편수 제한(스크린쿼터) 때문에 한 해 상영되는 외화가 50여 편에 불과하다. 이 가운데 할리우드 영화가 80∼90%를 차지하고 나면 한국 영화 개봉작은 손가락에 꼽힐 정도다. 1998년 ‘결혼이야기’(감독 김의석) 이후 지난해까지 13년 동안 대륙에서 상영된 한국 영화는 28편에 불과하다. 하지만 현지 영화사와 공동제작하면 중국 영화로 인정받아 스크린쿼터 제한을 피할 수 있다.
2000년 ‘비천무’가 중국 로케이션과 현지 인력을 참여시키는 형태로 공동제작을 시작해 지난해까지 한중 합작 영화 29편이 제작됐다. 최근에는 ‘황해’(2010년) ‘호우시절’(2009년)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2008년) 등이 공동투자 등의 형태로 현지시장을 뚫었다.
김수현 영진위 정책연구센터 연구원은 “할리우드도 중국 시장을 뚫기 위해 합작에 적극적”이라며 “드림웍스는 상하이미디어그룹과 합작해 중국 공략에 나섰다”고 말했다.
현빈, 탕웨이(湯唯) 주연의 ‘만추’는 불법 DVD 유통을 막아 성공한 사례다. 제작, 배급사는 지난해 초 국내 상영한 ‘만추’의 DVD 발매를 최대한 늦췄다. 올 3월 현지 개봉 이후 불법 DVD가 돌았을 때 중국당국과 저작권위원회, 영진위가 합심해 모니터링 사업을 벌였다. ‘만추’는 중국에서 100억 원 이상의 수익을 올렸다.
남종우 CJ E&M 해외투자제작팀 부장은 “최근에는 ‘만추’처럼 기획단계에서부터 중국을 염두에 두고 캐스팅하는 사례도 있다”며 “중국 겨냥 맞춤 영화도 나오고 있다”고 했다.
민병선 기자 bluedot@donga.com 이정연 채널A 기자 vivarepor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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