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 그때 이런 일이] ‘원조 걸그룹’ 막내 시집간 날…뭇남성 눈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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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3월 22일 07시 00분


1967년 김시스터스 민자의 결혼식

1960년대 미국으로 진출해 라스베이거스를 무대로 활약하던 김시스터스. 스포츠동아DB
1960년대 미국으로 진출해 라스베이거스를 무대로 활약하던 김시스터스. 스포츠동아DB
“조국에 계신 여러분, 항상 아껴주시고 사랑해주신 덕으로 매일매일 열심히 공부해 지금은 미국 A클래스에 속한 스타와 싱어들과 어깨를 겨루고 있습니다. 우리의 민요를 재즈 혹은 로큰롤 형식으로 불러 미국 흑인들에게 소개해 환영도 받습니다.(중략) 항상 마음은 조국과 여러분께 달리고 있으며 향수에 젖을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에요.”

1969년 김시스터스는 앨범 ‘김시스터스 푸레젠트’를 통해 고국의 팬들에게 인사를 전했다. 김시스터스는 당시 미국 라스베이거스를 본거지로 활동하며 인기를 끌었다. 1959년 미국으로 건너가 ‘찰리 브라운’이라는 노래로 1960년대 초반 빌보드 차트에도 올랐다.

1967년 오늘, 그 인기의 와중에 김시스터스의 막내 민자가 미국인 재즈음악가와 결혼했다. 이미 둘째 애자가 한 달 전 결혼한 뒤였다.

김시스터스는 ‘연락선은 떠난다’의 작곡가 김해송과 ‘목포의 눈물’의 가수 이난영의 딸인 숙자와 애자, 그리고 이난영의 오빠인 작곡가 이봉룡의 딸 (이)민자로 구성된 그룹. 1950년대 초반 결성해 미8군에서 활약하던 이들은 1959년 미국으로 날아가 라스베이거스 등을 무대로 큰 활약을 펼쳤다. ‘버라이어티’와 ‘라이프’지 등에도 소개됐다.

‘원조 걸그룹’으로 불리며 이제는 아득한 추억 속 가수로 비치기도 하지만 사실 김시스터스는 한국 대중가요사에 명징한 발자국을 남긴 그룹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음악평론가인 신현준 성공회대 교수 등이 위 앨범 인사말을 소개하며 쓴 ‘한국 팝의 고고학 1960년’은 이들이 “미국 대중음악의 다양한 스타일을 섭렵해 뛰어난 노래와 연주를 들려주었다. 14세 때부터 KPK 악극단(김시스터스의 아버지인 작곡가 김해송이 이끈 광복 이후 악극단)의 무대에 선 뒤 미8군 무대에서 인기를 누리며 활동했고 1959년 1월 미국의 라스베이거스로 건너가 ‘에드 설리번 쇼’에 수차례 출연하고 정식 음반을 발매하는 등 활발히 활동했다”고 평가했다. 이어 김시스터스가 ‘여성 보컬팀의 시조’에 그치지 않고 노래뿐 아니라 악기 연주를 겸한 그룹이었으며 후배들에게도 영향을 미쳤다고 밝혔다.

윤여수 기자 tadad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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