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2칼럼/김현진] 스타일 인 셀럽 ⑬ ‘검프’ 김소연의 러블리하지 않은 러블리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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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4월 15일 15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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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사 프린세스\'에서 핑크를 주조색으로 한 \'러블리\'패션을 선보이는 김소연. \'핑크\' \'블링블링\' \'큐트\'등의 키워드로 대표되는 \'러블리 룩\'은 극 속 주인공 마혜리와는 어울려도 배우 김소연과는 묘한 불협화음을 낸다는 평가다. 사진제공 연합.
\'검사 프린세스\'에서 핑크를 주조색으로 한 \'러블리\'패션을 선보이는 김소연. \'핑크\' \'블링블링\' \'큐트\'등의 키워드로 대표되는 \'러블리 룩\'은 극 속 주인공 마혜리와는 어울려도 배우 김소연과는 묘한 불협화음을 낸다는 평가다. 사진제공 연합.
133년 역사의 명품 슈즈, '지오베르니'의 그레이스 라인 한정 판매 경매 행사. '그레이스 켈리가 결혼할 때 신은 웨딩 슈즈를 해마다 7켤레만 제작해 한정 판매한다'는 경매사의 설명이 이어지자 마혜리의 입술은 바싹 타들어갔다.

180만원에 경매가 시작된 이 구두를 마혜리는 무려 700만원에 낙찰 받고도 좋다고 깡충깡충 뛰었다. 또 인지수사를 나가기 전 이 구두를 신은 자기 발을 내려다보며 그는 이렇게 말한다. "네가 이런데 다닐 애가 아닌데…. 험한데 데리고 가서 미안하다."

이런 캐릭터라면 '쇼퍼홀릭'이나 '섹스앤더씨티'류 드라마에 어울릴 터. 하지만 마혜리가 등장하는 SBS 새 수목드라마 '검사 프린세스'는 검사의 세계를 소재로 한 작품이며, 신임 검사 마혜리는 머리 좋고 얼굴 예쁜 부잣집 '엄친딸'이면서 쇼핑과 패션에 미친 '된장녀' 캐릭터다.

▶ 마혜리에 빠져 김소연 잊었나


보수적이고 거친 검사 조직에서 온실의 화초처럼 자란 '공주병' 캐릭터가 좌충우돌하는 모습을 상징하는 패션 키워드는 '핑크'다.

마혜리 역을 맡은 김소연이 종합선물세트처럼 선보이는 그물 스타킹, 5개의 반지(동시 착용), 화려한 네일아트(화이트와 레드가 어우러진 '메리 크리스마스'룩), 11cm높이 킬힐과 같은 강력한 패션 장치들보다도 핑크는 캐릭터를 설명하는데 훨씬 더 효과적인 소재로 작용한다. 특히 그는 드라마 제작발표회장과 1~2회에서 핑크 아이템들을 집중적으로 선택했다.

제작발표회 때 입은 '블루걸'의 레오파드 프릴 드레스, 2부 초반에 들고 나온 발렌시아가 가방, 아슬아슬한 미니스커트들은 온통 핑크빛. 의상 기획을 맡은 SBS아트택 이성훈 의상디자이너는 드라마 홈페이지에 실린 동영상 인터뷰에서 "명품을 좋아하는 '된장녀' 캐릭터에 맞게 몸에 꽉 달라붙는 핑크 미니스커트를 선택했다"고 설명했다.

마침 올 봄 패션 트렌드에도 맞는 마혜리의 '로맨틱 러블리룩'은 '○회, △씬에서 입은 핑크색 스커트는 어떤 브랜드냐'고 묻고 답하는 '마혜리 패션 추종자'들을 만들어냈다. '머스트비' 마케팅실 지윤정 팀장은 "드라마 스타일은 '마혜리 재킷' '마혜리 반지' 등 수 십 개의 관련 검색어를 만들어낼 정도로 누리꾼들의 관심을 모으고 있다"고 말했다.

반면 마혜리의 '러블리룩'이 '배우 김소연'과는 잘 어울리지 않는다고 지적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특히 패션 스타일리스트, 패션 업체 종사자, 패션 전문기자 등 이른바 '패션 피플' 가운데 김소연과 '러블리 룩'의 엇박자를 지적하는 이들을 쉽게 만나볼 수 있다.

국내 패션업체 디자이너 A씨는 이렇게 말한다.
"이번 시즌, 우리 브랜드에서도 러블리 패션을 컨셉트로 한 의상들을 많이 만들었어요. 개인적으로 김소연 씨 팬이기도 하고요. 그런데 드라마 속 의상들은 '마혜리 룩'이지 '김소연 룩'이 아닌 것 같아요. '러블리 룩'와 김소연은 코드가 잘 안 맞지 않나요?"

패션 홍보대행사 직원 B씨 의견도 이와 비슷하다.

"아이리스의 북한 공작원 김선화가 남조선 검사 마혜리로 분장해 위장 첩보 작전을 펼치는 것 같은 기분이랄까? 연기 잘하는 김소연이 몸에 맞지 않는 옷을 입고 고군분투하는 것 같아 안쓰럽게 느껴지기도 하고요."
'아이리스'의 김선화는 카리스마 있는 생김새가 특징적인 김소연의 DNA와 잘 맞아떨어져 대중으로부터 사랑받는 캐릭터가 될 수 있었다. 스포츠동아 자료사진.
'아이리스'의 김선화는 카리스마 있는 생김새가 특징적인 김소연의 DNA와 잘 맞아떨어져 대중으로부터 사랑받는 캐릭터가 될 수 있었다. 스포츠동아 자료사진.

▶ 핑크보단 블랙, '큐트'보단 '시크'가 어울리는 그녀

김소연은 '검사 프린세스'에서 혼신의 연기를 선보이고 있다. 민망한 섹시 막춤에 토마토 세례, 몸무게 90kg '뚱녀'로의 특수 분장까지 마다하지 않는 노력의 흔적은 화면 속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난다.

드라마 '이브의 모든 것'(2000년) 성공 이후, '아이리스'(2009년)를 만나기 전까지 인상적인 연기를 펼치지 못했던 한을 한 번에 떨쳐버리고 싶기라도 했던 것일까. 그가 오랜만에 드라마 주연 자리를 꿰차게 됐다는 사실은 '천성적으로 성실한 배우'라는 김소연의 승부욕을 자극했을 것 같다. 그런 그가 모범생 기질을 발휘하며 마혜리에 몰두한 사이, 잠시 '김소연 브랜드'의 아이덴티티를 잊게 된 것은 아닐까.

김소연의 브랜드 아이덴티티는 '시크&섹시'다. '아이리스'의 김선화가 여주인공 최승희보다 더 큰 주목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은 블랙 폴라 티셔츠에 블랙 아이라인, 날카로운 숏커트 헤어가 대표하는 '시크 룩'이 김소연의 아이덴티티와 절묘하게 맞아 떨어졌기 때문이다.

2007년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식에서 과감하게 가슴골을 노출한 엠마누엘 웅가로 드레스로 김소연의 존재감을 알렸던 것처럼 섹시한 이미지 역시 그와 잘 통한다. 패션 잡지들이 최근 몇 해간 김소연에게 요구한 화보 모델 컨셉트 역시 시크한 커리어 우먼, 또는 섹시하고도 지적인 현대 여성상이 대부분이었다.

김소연 브랜드는 그래서 '샤넬'이라기보다는 '프라다'고, '안나수이'라기보다는 '질 샌더'다.

유상욱 그랜드성형외과 원장은 유독 '큐트&로맨틱'과는 안 어울리고 '시크&섹시'와는 찰떡궁합을 자랑하는 김소연의 이미지를 얼굴 생김새로 설명했다. 그의 군더더기 없이 매끄럽고 날렵한 V라인 턱선, 샤프하고 조금 긴 듯한 콧날, 볼 살 없는 얼굴은 강직하면서도 성숙한 느낌을 낸다는 것.

유 원장은 "귀엽고 사랑스러운 느낌은 통통한 볼살, 부드러운 얼굴 윤곽, 조금 짧은 듯한 코, 동그란 눈에서 오는데 김소연은 이와 정반대 스타일"이라고 덧붙였다. 특히 옆으로 긴 눈과 뾰족한 코 라인은 카리스마 있는 분위기를 연출한다.

패션에디터 출신 스타일리스트 박명선 실장은 "배우나 모델들에게 옷을 입혀보면 김소연 씨처럼 이목구비가 뚜렷한 얼굴에는 '공주풍' 옷이 유독 잘 안 어울린다"고 말한다. 반면 KBS드라마 '부자의 탄생'에서 역시 개념 없는 '된장녀' 역할을 맡은 이시영의 경우, 김소연과는 정 반대의 이미지 때문에 오버스러운 '공주룩'이 상대적으로 잘 어울려 보인다는 설명이다.

박 실장은 '핑크색형 여성'과 '블랙+레드형 여성' 이론으로 김소연의 이미지를 설명하기도 했다.

"여성은 크게 핑크색 색조 화장이 잘 어울릴 것 같은 스타일과 블랙 아이라이너와 레드 립스틱이 어울릴 것 같은 스타일로 나눠볼 수 있어요. 핑크 화장이 어울릴 것 같은 스타일은 공주풍 로맨틱 패션이 제격인 반면, 블랙 아이라이너가 어울릴 것 같은 스타일은 '러블리룩'과는 천적이죠. 인상이 강한 김소연 씨는 전형적으로 '블랙 아이라이너+레드 립스틱'형이고요."

김소연은 언론 인터뷰를 통해 '노안(老顔)이라 어려서부터 어른 역할을 맡았다' '아이리스 때 키운 다리 근육이 다 빠지지 않아 미니스커트를 입을 때 신경이 쓰인다'고 스스로 밝힌 바 있다. 이런 요소들 역시 그가 작고 깜찍한 동안과 잘 어울리는 '공주풍 패션'과 묘한 불협화음을 내는 이유로 꼽힌다.
2007년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식 때 김소연이 선택한 섹시한 엠마누엘 웅가로 드레스는 오랜 공백에도 불구, 그의 '존재감'을 확인시켜줬다. 패션, 성형 전문가들은 김소연이 '큐트' '러블리'보다는 '시크''섹시'와 궁합이 잘 맞는다고 입을 모은다. 사진제공 연합.
2007년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식 때 김소연이 선택한 섹시한 엠마누엘 웅가로 드레스는 오랜 공백에도 불구, 그의 '존재감'을 확인시켜줬다. 패션, 성형 전문가들은 김소연이 '큐트' '러블리'보다는 '시크''섹시'와 궁합이 잘 맞는다고 입을 모은다. 사진제공 연합.

▶ 김소연이 위더스푼이 될 수 없는 이유

'검사 프린세스'의 마혜리는 여러모로 할리우드 영화 '금발이 너무해'의 엘 우즈를 떠올리게 한다. UCLA에서 패션을 전공하는 부잣집 딸 엘 우즈의 법조인으로서의 성공기를 다룬 이 영화에서 우즈 역을 맡은 리즈 위더스푼 역시 다양한 핑크 패션을 선보였다.

위더스푼의 핑크 패션이 위더스푼의 평소 패션인양 잘 어울렸던 것은 역시 그의 얼굴형 때문이다. 크고 동그란 눈, 서양인치고는 작고 낮은 코, 부드러운 인상은 '러블리 패션'과 썩 잘 어울렸다.

그가 LA출신의 금발 미녀라는 '태생적 조건'도 핑크 패션을 정당화하는 중요한 요건이 된다. LA와 금발은 '젊음' '자유로움' '사치' '사랑' 등의 키워드와 일촌처럼 밀접하다.

또 우즈가 영화 속에서 손바닥만한 치와와 브루저와 늘 함께 했다는 사실도 손발이 오그라들 정도로 깜찍한 패션과 연기를 선보여야 하는 여배우의 부담감을 덜어주는 장치가 됐다.
성인 연기자의 오버스러운 호들갑과 귀여운 척에 고개를 돌릴 무렵 카메라는 브루저를 클로즈업해 관객의 '부담감'을 덜었다.

'태생적 조건'부터 '러블리 룩'과 맞지 않은 김소연은 이런 보조 장치마저 없이 홀로 고군분투하는 외로운 길을 걷고 있는 셈이다.

물론 배우 김소연의 '공주 패션'과 귀여운 연기가 유독 생소하게 느껴지는 것은 그의 외형적 조건이 아닌, 연기 히스토리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는 '순풍산부인과'에서는 똑부러지는 성격의 의사를, '이브의 모든 것'에서는 욕심 많은 전문직 아나운서를, '식객'에서는 단아하고 차분한 한식당 매니저를 연기했다. 모두 시크하고 이지적인 역할이다.

다행인 것은 마혜리가 검사로 성장해가는 모습이 드러나는 드라마 후반부에는 마혜리의 패션 컨셉트가 크게 변화할 것이라는 점이다. SBS아트텍 이성훈 의상디자이너는 "드라마 후반에는 초반에 선보였던 화려한 나이트웨어 느낌 대신 포멀하고 세련된 느낌의 의상을 주로 입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니 '안나수이'와 '질 샌더'를 오갈 김소연의 패션 변신을 좀 더 참을성 있게 지켜봐야겠다. '아이리스'를 통해 '십만 안티'를 덜어 냈다고 좋아하는 배우 김소연은 '러블리 룩'이 아니고도 이미 충분히 '러블리'한 배우 아니던가.

김현진 기자 brigh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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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검프’ 김소연, “허벅지 때문에 미니스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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