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2칼럼/최영일] 싱글천사 최반야의 할리우드 투쟁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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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2월 4일 16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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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왜 미국으로 갔을까?

1월의 눈 내리는 토요일 오후, 홍대가 내려다보이는 한 카페의 스카이라운지에서 그녀를 만났다.

영화배우 최반야(37). 한국 영화계에서 한동안 잊혀졌던 이름이다. 그녀는 아름다웠다. 젊은 시절의 이보희, 아니 동양의 모니카 벨루치라고 해도 좋을만큼 독특한 눈빛을 갖고 있었다. 이 말을 해주자 그녀는 "할렐루야!"를 외치며 아이처럼 기뻐한다.

최반야. 여전히 예쁜, 그리고 지적이기까지 한 여배우지만 어느새 데뷔 10년차가 훌쩍 넘은 베테랑 연기자 군에 속한다. 더 중요한 점은 삼십대 후반의 나이에도 씩씩한 독립군 여배우라는 사실이다.

연세대 재학시절 극예술연구회에서 활약했고 졸업 후엔 연극무대에서 화려한 경력을 쌓았다. 영화도 2002년 '버스, 정류장'으로 시작해 '조선남녀상열지사 스캔들' '사랑니' '러브토크'를 거쳐 문제적 감독 김응수의 2006년작 '달려라 장미'에서는 주연을 맡기도 했다.

개인적으론 2006년이 가장 빛났던 시기라고 할 수 있을까. 홍상수 감독의 '해변의 여인'을 비롯해 '태양의 이면' '사랑할 때 이야기하는 것들'에 잇달아 출연하며 주가를 높였다. 그러나 대중의 뇌리에 강한 인상을 주진 못했다. 아니, 반대로 왜 우리는 이렇게 멋진 여배우를 기억하지 못할까.
최반야의 첫 장편영화 주연작 \'달려라 장미\'
최반야의 첫 장편영화 주연작 \'달려라 장미\'


독특한 외모와 감수성으로 연극과 영화를 오갔던 최반야

그녀의 외모와 재능과 노력은 마치 일부러 상업적인 성공을 피해 다닌듯하다.

인터뷰를 하는 동안 그녀는 배우를 하기엔 너무나 다재다능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것이 최반야의 딜레마이다. 그녀는 아름다운데다 글쓰기를 좋아하고, 피아노에 미쳐 건반을 두드리고, 명문대 건축학과를 졸업한데다 연기까지 잘한다.

영화에 입문한 계기도 독특하다. 연기보다 일 년 앞서 박흥식 감독의 '나도 아내가 있었으면 좋겠다'의 각본 작업에 참여했다. 그녀의 이력엔 '시나리오 작가 겸 배우'라는 필모그래피가 뜨기도 한다.

어쩌면 한국영화판은 시나리오까지 쓰는 똑똑한 여배우를 기피했던 것일 지도 모른다. 자기머리 없이 시키면 시키는 대로 몸만 놀리는 여배우를 차라리 속편해했던 것일까?

이점에 대해 최반야는 속 시원하게 털어놓지 않았다. 자기는 성격 좋다고, 시키는 것 잘한다고, 어려운 사람이 아니라고 말하며 그냥 웃었다.(사실 그녀는 영화 속에서 지적인 연기보다는 '남녀상열지사 스캔들'의 기생 추월이처럼 농염한 연기로 시선을 끌었다.)

현재 그녀는 미국에서 활동 중이다. 2007년 홀연히 한국을 떠나 할리우드로 활동 근거지를 옮겼다. 끌어당긴 사람도 밀어 보낸 사람도 없이 혼자 두 주먹 움켜쥐고 떠났다. 고국에서 연극과 영화에 출연한지 10년차에 내린 쉽지 않은 결정이었다.

그리고 3년 동안 소속도 없이 매니저도 없이 영어로 대화하고 새롭게 연기를 연습하고 오디션을 보며 맨땅에 헤딩을 수없이 했다. 생활 자체가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여 '배우'로 살아 남기위한 투쟁이었다.
잠시 한국에 귀국한 사이 인터뷰에 응한 영화배우 최반야
잠시 한국에 귀국한 사이 인터뷰에 응한 영화배우 최반야

3년 전 훌쩍 미국으로 건너간 이유는?

그리고 '터미네이터' 첫 편의 주인공 마이클 빈의 감독 데뷔작이자 그가 주연까지 겸한 영화 '블러드 본드'에 출연했다. '블러드 본드'는 올 여름 미국에서 개봉한다. 마이클 빈이 알코올중독으로 퇴역한 특수부대원으로 등장해 아시아의 정신적 지도자를 구하려고 고군분투하는 액션물이다.

'닌자어쌔신'의 비나 '블러드 더 라스트 뱀파이어'의 전지현처럼 이 영화에서 최반야는 화려한 주연이 아니다. 프로모션은커녕 국내엔 알려지지도 않았다. '맨땅에 헤딩' 정신과 타지에서 만들어나간 네트워크로 따낸 단역이지만 철저히 '자기 몫'인 것이다.

- '블러드 본드' 출연 계기가 궁금하다?


"처음에 가서 눈 파랗고 피부색 다양한 사람들을 상대로 연기가 익숙해지는 과정을 흥미롭게 경험했다. 미국에서의 영화 비즈니스 역시 소셜 네트워크더라. 어느 날 일하며 알게 된 프로듀서가 연락이 와서 한국에 들어와 있다고 했더니 갑자기 중국으로 불렀다. 무대와 세트에서 떨어진지 오래되어 초조했던 참에 날아가서 참여했다. 촬영하면서 행복했다. 미국과 중국 합작영화로 꽤 글로벌한 스케일이었는데 슈퍼스타급 아니면 어차피 서로 모르니까 이름값보다는 실력으로 사귀면서 즐겁게 촬영했다. 거기서도 모니카 벨루치 인상과 닮았다는 얘기를 듣기도 했다(웃음)."
그녀의 신비롭고 이국적인 눈빛은 충무로에서 독특한 위상을 부여했다.
그녀의 신비롭고 이국적인 눈빛은 충무로에서 독특한 위상을 부여했다.

- 3년 전 갑자기 미국으로 날아가게 된 이유는?

"2005년 배종옥, 박진희와 '러브토크'를 찍을때 LA 로케이션이 있었다. 그때 미국 영화제작 시스템을 만나 나와 통한다고 느꼈다. 유학 욕심도 있었고, 영어 연기에 대한 욕심도 나던 차였다. 나이가 들수록 한국 영화제작환경에서 여배우의 입지는 제한적이라고 느꼈다. 미국에서 경험해 보니 어마어마한 숫자의 배우자원이 나이에 구애받지 않고 실력으로 승부를 벌이고 있더라. 한국에서 8편 영화에 출연하고 더 많은 연극무대에 섰건만 필모그래피의 부족함을 느꼈다."

- 미국 할리우드 투쟁 3년차를 요악 평가한다면?

"사실 3년간 뚜렷한 성과가 없어서 인터뷰 결심하기 힘들었다. 따지고 보면 남들이 보기에 과시할만한 성과가 없는 것 아닌가. 티켓 파워도 없었고, 영어도 (기대보다 훨씬) 부족했고, 인맥도 하나 없이 내 스스로 부딪쳐서 개척해 나갔다. 다양한 영화 프로젝트를 돌아다니며 숱한 오디션을 거쳤고 그 과정에서 비전을 봤다고 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2년간 스스로 완전하게 깨졌다고 표현해야 정확할 듯싶다."

- 솔직히 꽤 오랜 연기생활인데 아직 정점을 찍지 못한 것 아닌가? 지금까지 최고의 성취감은 무엇이었나?

"연세대 재학 시절 극예술연구회에 흠뻑 빠졌었는데 파격적으로 1학년 때부터 선배들이 주연으로 발탁해줬다. 여자선배들 사이에서 질투어린 논란도 많았다. 스스로는 정말 열심히 했다. 졸업 후 동문의 날 5월에 전통적으로 '한여름 밤의 꿈'을 공연한다. 전례 없이 4년 간격으로 두 번이나 무대에 올랐다. 두 번 모두 여주인공 허미아 역이었는데 행복한 결혼식 장면이 나온다. 마침 공연일은 내 생일이었다. 흩날리는 꽃잎 속에 결혼행진을 하는데 많은 가족들이 와서 한 편 연극을 보며 행복해 하는 장면을 보며 눈물을 흘렸다. (이 대목에서 최반야는 생생한 추억이 떠오르는 듯 정말 눈물을 글썽였다.)"
그녀는 이제 헐리우드에서 생존을 모생중이다.
그녀는 이제 헐리우드에서 생존을 모생중이다.


30대 후반 여배우의 생존 방식을 바꾸겠다

- 미국에서 생활한지 3년이 됐다. 2010년 최반야의 계획은 무엇인가.

"무조건 좋은 작품에 비중 있는 역으로 출연할거다(웃음). 아직도 난 초심이다. 미국에서 배우로서 기반을 잡을 예정이지만 국내 작품 기회도 마다하지 않을 생각이다. 사실 나도 코미디가 좋고 시트콤도 좋은데, 연극을 주로 했다는 이미지 때문인지 그런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다. 무대든 은막이든 가리지 않고 늘 최선을 다하는 배우로 살아남고 싶다."

인터뷰 말미에 '최반야의 비전'으로 프로배우로 살겠지만 궁극적으론 자신이 평화의 도구로 쓰이길 원한다고 고백한다. 그녀는 미국생활 내내 새벽기도를 빠지지 않고 하루를 시작한다고 했다. 심지어 인터뷰어를 위한 기도까지 포함시켰다.

사실 충무로 시스템이란 좁아터진 연기 바닥에서 30대 중반의 여배우에게 주어질 기회는 많지 않다. 최반야와 동행한 황윤정 전 하원필름 대표는 "남자 배우에겐 50대 이후까지도 다양한 역할이 주어지지만 여배우에겐 주인공 아니면 모두가 조연일 수밖에 없는 구조적 한계가 있다"고 녹록치 않은 현실을 토로한다.

하지만 미국에서는 샤론스톤이 '원초적 본능'으로 섹시 여배우로 등극한 것이 30대 중반이며 14년 후 50대 나이에 다시 '원초적 본능2'에 출연하기까지 했다. 이제는 충무로 시스템도 바뀔 때가 됐다. 최반야는 그 과정에서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까.

아직도 멈추지 않고 자라고 있는 이 여배우는 올해 연극 '버자이너 모놀로그'가 포함된 '남녀관계회복학교'라는 문화 프로그램에서 여성성을 표출할 중심인물로 한국 팬들에게 인사할 예정이다.

최영일 / 문화평론가 vincent2013@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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