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2/커버스토리] 김태희를 위한 변명 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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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09년 11월 6일 14시 5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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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가 출연했던 작품들을 간단히 살펴보자. <아이리스>의 이병헌을 비롯해 영화 <중천>의 정우성, <싸움>의 설경구, 드라마 <러브스토리 인 하버드>의 김래원, <천국의 계단>의 권상우 최지우 신현중. 그동안 그녀가 조연급 이상으로 출연한 작품에서 호흡을 맞춘 상대역이다.(주연진이 전진, 한예슬, 조현재 등 또래로 구성된 <구미호외전>은 예외다.)

면면을 살펴보면 모두 경력도 많고 연기의 색깔도 엄청 진하다. 물론 나이도 많다. 비슷한 나이는 <러브스토리 인 하버드>의 김래원 뿐이다. 하지만 그 역시 99년 <학교>로 얼굴을 알린 이후 스크린과 드라마에서 다양한 캐릭터를 소화하며 정력적으로 활동한, 내공으로 따지면 김태희의 사부뻘이다.

그 녀는 이렇듯 자신보다 몇 수 위의 상대들과 연기를 맞춰야 했다. 연기란 상대적인 것이다. 연인과 친구로 감정을 나누는 상대가 너무 월등하면 그 반대편에 있는 쪽은 버겁고 숨 가쁘게 마련이다. 아무리 연기를 할 때 그녀를 배려한다고 해도 당사자가 내내 마음의 부담을 안고 있어야 하는 것은 자명하다.

보다 근본적인 문제는 김태희는 '숙명적'으로 미모와 연기의 밸런스가 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문제는 도저히 풀기 어려운 숙제다.

김태희의 불행은 상대 배우의 연기 내공이 그녀보다 훨씬 높다는 것.
김태희의 불행은 상대 배우의 연기 내공이 그녀보다 훨씬 높다는 것.


김 태희는 같은 여자도 감탄하는 미모다. 그런데 세상은 그녀에게 그 아름다움에 걸맞는 연기력을 요구한다. '그녀의 경력을 감안하면 곧잘 한다', 또는 '나이 치고 잘하는 연기다'라는 것으로는 만족하지 않는다. '절대미모'에 어울리는 화려하고 강렬한 '절대연기'를 보여달라고 아우성이다.(아니라고? 그렇다면 과거 그녀의 연기를 힐난하고 조롱한 글들을 보라. 이제 겨우 작품 1~2편 한 신인에게 왜 그리도 요구하는 것이 많았는지…)

현재 김태희의 연기력이 분명 탁월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런 사람들의 욕구가 변하지 않으면 앞으로 발전한다고 해도 만인이 만족하는 수준을 맞추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녀의 미모에 걸맞은 연기력이라면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후보를 동네 반상회 나가듯 하는 메릴 스트립 정도나 돼야 가능할 것이다. 그걸 지금 20대인 김태희에게 요구한다.

'나를 한번 재미있게 해봐'
- 스타, 이제는 소비하고 소유하는 펫(pet)?


몇 년 전 인터뷰를 위해 만난 한 영화감독은 과거와 달라진 관객들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 요즘은 영화 보는 것을 마치 놀이공원에 가는 것과 동일시한다. 감상하고 음미하는 것이 아니라 일정 시간 즐기며 소비하는 소모품이 됐다. 보다 스릴있고, 보다 빠른 놀이기구가 인기가 있는 것처럼, 영화에 대해서도 늘 전보다 강하고 새로운 자극을 원한다. 객석에서 '어디 한번 나를 재미있게 해봐'란 표정으로 스크린을 응시하는 관객을 볼 때마다 솔직히 오싹해진다."

김태희는 스타다. 그것도 인기 절정의 톱스타다. 그런데 나는 지금 여기서 내내 그녀를 위한 변명의 글을 쓰고 있다. 왜?

불 과 5~6년 전만 해도 스타는 동경의 대상이었다. 부러움이 담긴 시선으로 바라보면서 그녀처럼 되기를 소망하는 환상의 주인공이었다. 김태희가 CF에서 톱모델의 위치를 굳건히 지키는 것도 그런 '워너비'(Wannabe)의 꿈을 주는 대표적인 인물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요즘 들어 이런 스타의 역할에 변화가 생겼다. 사람들은 더 이상 스타를 동경하고 바라만 보는 대상으로 여기지 않는다. 이제는 자신이 정서적으로 소유하기를 원한다. 또한 그런 자신을 위해 스타는 다양한 재미와 즐거움을 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보다 근본적인 문제는 미모와 연기의 밸런스가 맞지 않는다는 점이다. 스포츠동아 고종철 기자.
보다 근본적인 문제는 미모와 연기의 밸런스가 맞지 않는다는 점이다. 스포츠동아 고종철 기자.


인터넷의 등장으로 사람들이 정보를 구하고 세상과 소통하는 방식 자체가 근본적 달라졌다. 그러면서 대중문화의 소비 패턴 역시 변했다. 단순히 문화 콘텐츠를 주어진 대로 이용하는 수동적인 소비자에 머물지 않고 적극적으로 나서고 개입한다.

이제는 팬클럽이 드라마 제작진이나 방송관계자에게 잘 부탁한다고 선물을 하고, 보도자료를 내고, 신문광고를 한다. 버스에 래핑광고로 홍보도 한다. 소속사와의 문제에 대해 어떻게 행동하라고 구체적으로 요구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실력 행사도 한다.

즉, '사랑하는 당신 뜻대로 따르겠다'가 아니라 '당신을 사랑하는 우리 뜻이 이러하니 그대로 받아들여라'이다.

한 때 김태희가 '찌라시'로 불리는 증권가 사설 정보지의 단골 소재로 등장한 적이 있었다. 사생활에 대한 이러쿵저러쿵하는 이야기였다. 잊혀질 만하면 등장하고, 비슷한 이야기가 꽤 오래 떠돌았다. 결국 소속사와 그녀가 소문에 대해 적극 해명하기도 했고, 루머를 온라인에 유포한 누리꾼을 경찰에 고발하기도 했다.

김태희는 전형적인 모범생 연예인 이미지다. 좋은 학교에 차분하고 성실한, 딱 '엄친딸'이다. 핑크빛 로맨스설이 몇 번 나돌았지만 그거야 요즘 연예인이라면 누구나 한 두 번은 있는 것이고, 그 외에는 유별난 스캔들도 이러다할 말썽을 부린 적도 없다.

그러나 그녀에 대한 과도한 비평이나 비판은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출처·영화 ‘싸움’
그러나 그녀에 대한 과도한 비평이나 비판은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출처·영화 ‘싸움’


그런데 사설정보지의 단골 등장인물이 됐다. 사실 여부와 정보의 중요성을 떠나 그녀의 등장이 재미있고, 눈길을 끌기 때문이다.

온 라인에 유난히 많은 루머가 떠돈 것도 마찬가지다. '어느 한 부분 망가지거나 허술한 곳 없고 깔끔한 그녀에게 이런 숨은 이야기가 있다', 그 자체가 재미있는 것이다. 루머를 확인없이 퍼날라서 올리는 사람이나, 그것을 접한 뒤 다시 퍼뜨리는 사람이나 망가지는, 무너지는 김태희의 존재가 재미있는 것이다.

연기력 논란도 그렇다. 만약 김태희가 서울대를 나오지 않았거나 지금보다 70% 정도의 미모라면 출연하는 작품마다 그렇게 매몰차고 요란스레 시비를 걸겠는가. 아니다. 화제가 되지 않고, 눈길을 끌지 않기 때문이다. 아니, 한 마디로 재미없기 때문이다.

'서울대 나온 김태희가 연기를 저렇게 못한다' '예쁜 김태희가 알고보니 사생활이 이렇다'고 해야 재미가 있고, 소문내는 즐거움이 있다.

케이블TV 채널 프로그램 중에 능력있는 커리어우먼이 멋진 남자를 애완동물(펫)로 비유해 함께 지내는 내용의 리얼리티 프로그램이 있었다. 남녀간의 애정에서도 지금은 동등한 교감이 아닌 소유와 지배의 개념이 들어간 것이다.

대중문화의 아이콘인 스타 역시 그런 경향을 따르고 있다. 그저 바라만 보고 좋아하는 것이 아닌 내가 소유하고 소비하고, 지배하는 대상으로 바뀌고 있다.

'그는 인기를 누리고 많은 부와 명성을 가졌다. 그렇다면 그것을 얻게 해준 우리는 이런 즐거움을 가져야 하지 않나, 그것이 공인 아닌가.'

김태희뿐 아니라 온라인에서 연예인에 대해 모질게 시비 거는 다양한 악플들의 행간에서는 이런 생각들을 공통적으로 읽을 수 있다. 대부분은 그런 행동에 대해 심각한 문제의식이나 죄책감은 느끼지 않는다.

일본 소설가 하루키는 그의 수필집에서 이렇게 푸념했다.

"정보가 음미를 앞서고, 감각이 인식을 앞서고, 비평이 창조를 앞선다.(중략) 한 마디로 문화적 화전농업이다. '와' 하고 달려들어 하나의 밭을 태운 후 다음 다른 밭으로 옮겨간다."

그녀를 위한 기꺼운 변명, 하지만 나도 아쉽다.

숱한 스타가 명멸한 할리우드에서 미모로 순위를 꼽는다면 상위에 꼭 들어가는 스타가 있다. 영국 출신의 엘리자베스 테일러다.

젊 은 시절 리즈 테일러(그녀의 애칭이다)의 모습을 보면 검은 머리에 그림 같은 이목구비, 하얀 피부가 마치 동화책에 나오는 백설공주의 이미지 그대로이다. 미모 못지않게 화려한 남성편력으로도 가십난을 장식한 당대의 스타였지만 그녀 역시 약점이 있었다. 바로 연기력.

그녀는 누가 뭐래도 ‘한국의 리즈 테일러’다. 동아일보 DB
그녀는 누가 뭐래도 ‘한국의 리즈 테일러’다. 동아일보 DB


아역부터 연기생활을 했지만 출연하는 작품마다 상찬보다는 혹평을 듣는 경우가 많았다. 이런 비난을 견디다 못한 그녀는 청순한 멜로의 주인공에서 과감하게 콜걸로 변신, 60년 영화 <버터필드 8>에 출연했다. 결과는 이듬해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수상.

그런데 이 결과를 두고 논란이 일었다. 리즈 테일러의 연기가 주연상감이 아니라는 것. 명성에 비해 오랫동안 상을 못 받은 것에 대한 심사위원의 동정표가 몰렸다는 소문이 돌았다. 고대하던 상을 받고도 개운치 않았던 리즈 테일러는 67년 영화 <누가 버지니아 울프를 두려워하랴>로 다시 한번 미국 아카데미 주연상을 받았다.

김태희에 앞서 우리 영화의 미녀 스타로 불리던 김지미, 정윤희도 연기력 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김지미는 젊은 전성기 시절보다 오히려 연기 인생 후반기의 <티켓> <길소뜸> 등의 영화에서 보여준 연기로 새롭게 재평가를 받았다. 정윤희는 토속 문예영화에서 리즈 테일러처럼 과감한 캐릭터에 대한 도전으로 대종상을 손에 쥐었다.

이 렇듯 탁월한 미모를 지닌 스타들은 항상 연기력과 아름다움을 비교하는 평가에 시달려야 하는 운명을 타고 났다. 그것을 무시하거나, 혹은 극복하는가는 본인의 선택이다. 또 어떤 방법으로, 어느 시점에 할지를 정하는 것도 당사자의 몫이다.

김태희도 그런 결정을 해야 한다. 지금의 모습과 위치에 만족하고 안주할 것인지, 아니면 고달프고 결과가 보이지 않는 불투명한 미래라 해도 도전의 카드를 내놓을 것이지 말이다. 시간의 지체 없이 바로 바로 세상 누구와도 소통하는 지금, 그녀에게 주어진 변화의 시간은 과거 선배들처럼 많을 것 같지 않다.

나는 김태희가 미래쪽에 더 많은 변화와 기회가 있다고 믿는다. 이 글은 미래에 더 높은 곳에 오를 그녀에 대한 장기적인 안목의 투자다.

다른 바람은 없다. 이 투자가 아무 의미 없는 괜한 헛수고가 되지 않기만 바랄 뿐이다.

[O2/커버스토리] 김태희를 위한 변명 ①

김재범 / <스포츠동아> 엔터테인먼트부장 oldfield@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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