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2]허세에서 똥덩어리를 거쳐 배우에 이른, 장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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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09년 9월 6일 15시 5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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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장근석은 또래에게 볼 수 없는 반항적 캐릭터를 갖고 있다. 스포츠동아 DB.
배우 장근석은 또래에게 볼 수 없는 반항적 캐릭터를 갖고 있다. 스포츠동아 DB.
꽃남 배우들과 가장 차이가 나는 이유, 다계층 반항 이미지
사실 그는 너무 예쁜 배우다.
성인 남자에게 '예쁘장하다'는 썩 유쾌한 표현은 아니다. 하지만 사실인 것을 어찌하랴. 비율이 잘 들어맞는 이목구비, 잡티 하나 없는 깨끗한 피부, 어떤 옷이건 척척 소화해 내는 몸매와 패션 감각, 조금은 지적이면서도 반항적인 눈빛까지…. 만일 그가 연기자가 아니었다면 그게 더 어색한 일이었을지 모른다.
올해 나이 스물 둘인 그는 경력 15년차의 '중견' 배우다. 2001년 14세때 SBS 사극 '여인천하'에서 본격적으로 얼굴을 알린 후 하지원과 함께 출연한 KBS '황진이'를 통해 잠재력 있는 배우로 주목받았다. 하지만 CF 영화 드라마 출연 등 그의 연예인 경력은 6세때 시작됐다.
따지고 보면 아역배우 출신으로 성인이 돼서까지 주연급으로 연기활동을 이어가는 배우는 손에 꼽을 정도다. 이를 두고 방송계에서는 "대중들이 어린 시절 이미지에 길들여졌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며 이런 한계를 당연시 하는 분위기. 그런 면에서 그가 10대 초반에 대중적 인기를 얻지 못한 것은 다행스러운 일인지 모른다.
실제로 그는 최근 가파른 성장세를 보이며 아역배우 출신 가운데 드물게 성공한 배우로 주목받고 있다. 외견상 '꽃미남' 계열인 그는 다른 꽃미남 경쟁자들이 갖지 못한 이른바 '다계층' 반항적 이미지까지 갖췄다. 이 때문에 "한국의 제임스 딘에 가장 근접한 배우"라는 평까지 듣고 있다.
이태원 살인사건은 장근석을 위한 영화다
이태원 살인사건은 장근석을 위한 영화다
font size=1> ● 이태원 살인사건, 장근석의 티켓 파워 검증무대
10일 개봉되는 영화 '이태원 살인사건'은 장근석을 위한 영화다. 굳이 따지자면 주인공은 정진영이지만 관객들은 장근석을 염두에 두고 티켓을 예매할 것이 틀림없다.
정진영은 '왕의 남자'나 '님은 먼 곳에' 등 다수의 영화에서 연기력을 검증받았지만 그렇다고 극의 흐름을 휘어잡고 흔들만한 카리스마 넘치는 스타는 아니다. 게다가 '이태원 살인사건'이란 영화 자체가 '살인의 추억'에서 시작돼 '홀리데이'를 거쳐 '추격자'로 꽃을 피운 한국판 리얼리즘 드라마-실제 살인사건에 모티브를 두고 무능한 공권력을 조롱하는-의 동어 반복에 가깝다.
진부한 두 요소에 비해 장근석은 신선한 재료다. 이 때문에 살인범으로 분한 그의 연기력의 성공 여부에 따라 관객의 크기 역시 결정될 가능성이 높다.
이번 영화에서 그는 이태원에 놀러와 재미로 살인을 저지르는 재미교포 살인범 역할을 맡았다. 부담스러운 영어발음이나 어색한 레게머리 같은 외적인 면보다 살인 피의자로 끝까지 검사와 두뇌싸움을 벌이는 심리묘사가 영화의 관건이다. 그동안 장근석은 이성을 유혹하는 예쁜 남성 역할에 그쳐왔다. 처음 주어진 마초 캐릭터의 성공 여부에 따라 그가 갈구해 온 '진정한 성인 배우'라는 타이틀을 거머쥘 수 있을지 여부도 판가름 날 전망이다.
누리꾼들 사이에 논란을 불러온 장근석의 미니홈피
누리꾼들 사이에 논란을 불러온 장근석의 미니홈피
b>① 장근석을 읽는 제 1의 코드 '허세'
"따사로운 햇살아래서 한가로이 누워 있노라면/ 더불어 앙드레 가뇽의 연주까지 함께라면/ 더 이상 / 어떤 것도 필요하지 않았다."
지금은 폐쇄된 장근석의 미니홈피에 떠 있던 문구다.
이로 인해 그는 한동안 온라인에서 '허세 근석'이란 별칭으로 조롱받아야 했다. 그의 미니홈피 발언록은 최고 인기를 누리는 MBC '무한도전' 자막에 패러디됐을 정도였다.
패셔니스타를 능가하는 화려한 치장에 10대 후반의 어린 배우가 읊조렸으리라고는 상상하기 힘든 지적인 외래어의 조합으로 미니홈피를 채웠기 때문이다. 현장에서 그는 연기력 논란을 겪지 않은 거의 유일한 청춘 배우로 통했다. 그러나 온라인에서는 '허세'라는 다소 부정적인 수식어에 가려 제대로 된 평가를 받지 못했다.
심지어 이 같은 허세는 '과잉된 자의식' 혹은 '왕자병'으로 해석돼 그를 고통스럽게 만들었다. 하지만 조롱에 대한 그의 대처는 의연했다. "사람들이 왜 나를 싫어할까 때론 당황스러운 기분도 들지만 어쨌든 내게 관심이 있다는 거니까 그 자체를 즐기는 편이다"고 답하며 대수롭지 않게 여겼기 때문이다.
이후 그는 2008년 최대의 화제작 '베토벤 바이러스'에서 트럼펫을 연주하는 강건우 역으로 열연해 '허세' 논란을 일거에 날려버렸다.
언젠가 한 유명 연기자는 "배우란 모방을 통해 진짜 그렇게 되어가는 직업"이라고 고백한 적이 있다. 이순신 연기를 하며 그의 용맹과 지략을 배우고, 오케스트라 지휘를 하며 실제 지휘자에 가깝게 변화해 간다는 것. 결국 허세조차 없는 배우란 일반인에 가깝다는 주장을 강건우라는 캐릭터를 생생히 살아낸 장근석이 오롯이 증명해 낸 셈이다.
② 음악이라는 확고한 이미지 배경
그는 경쟁자가 갖지 못한 다양한 장점을 그의 필모그래피를 통해 쌓아왔다. 첫 번째가 '음악'이라는 확고한 배경이다. MBC 청춘 시트콤 '논스톱'을 통해 얻은 인기를 발판으로 그는 고교시절 음악 케이블 방송에서 MC로 활약했다.
정진영과 함께 출연했던 '즐거운 인생(감독 이준익)'은 물론 그의 첫 주연작 '도레미파솔라시도(감독 강건향)'에서도 그는 밴드 보컬로 활약했다. 실제 그는 부단한 기타 연습을 통해 수준급 연주를 해내는 것으로 알려졌다.
심지어 베토벤 바이러스에서는 너무도 자연스럽게 트럼펫을 불어댔고 지휘봉을 흔들며 오케스트라 지휘까지 완벽하게 소화해 냈다.
또한 그는 다른 배우들이 트렌디드라마에 집중 할 때 사극에 집중하는 의외의 선택을 반복해 눈길을 끌었다. 그는 전형적인 꽃미남 외모로 '여인천하'(2002년) '대망'(2002년) '황진이'(2006년) '쾌도 홍길동'(2008년) 등 현대 사극을 거쳤다. 특히 쾌도 홍길동에서는 반란을 꿈꾸는 왕자 역을 의연하게 소화해내 호평을 받았다.
베토벤 바이러스
베토벤 바이러스
b>③ 다계층 출신의 반항적 이미지 구축
"당시 '꽃보다 남자'와 '베토벤 바이러스' 출연 제의가 한꺼번에 들어왔는데 두 작품을 놓고 고민하다가 '베토벤 바이러스'를 선택한 것뿐이에요."(장근석 2009년)
실제로 부잣집 아들의 대표 이미지로 꼽히는 구준표나 윤지후 배역 둘 중 하나는 장근석에게 돌아갔을 공산이 컸다. 그 어떤 드라마 기획자라 하더라도 부잣집 도련님 배역을 검토하면서 장근석을 지나치긴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에게도 '꽃미남 F4'라는 브랜드는 뿌리치기 힘든 유혹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베토벤 바이러스를 골랐고 그의 선택은 영리했다. 구준표로 분한 이민호나 윤지후로 분한 김현중은 한동안 F4의 이미지에 갇혀 있을 가능성이 커졌다. 대신 베토벤 바이러스를 고른 장근석은 '음악을 아는 실력파 연기자'라는 평가와 함께 '하위 계층을 대변하는 반항아' 이미지를 얻을 수 있었다.
문화평론가 최영일씨는 "장근석의 가장 큰 장점은 다른 꽃미남 배우가 갖지 못한 반항적인 이미지를 갖고 있다는 것"이라며 "그 같은 힘은 그의 다계층 다면적인 캐릭터에서 나왔다"고 분석한다. 그가 F4를 택했다면 상당기간 '부유한 이미지'에 빠져 배우로서 단명(短命)했을지도 모른다는 말이다.
그의 필모그래피를 살펴보면 그가 '허세'라는 오명을 뒤집어 쓴 이유가 분명하다. '즐거운 인생'에서는 불행한 음악인의 찌질한 아들로 출연했고, '아이와 나'에서는 얼결에 아이를 맡아 키우는 문제적 청춘으로 등장했다. 베토벤 바이러스의 차세대 지휘자 강건우는 돈이 없어 음악의 꿈을 키우지 못한 교통경찰이었다. 그가 연기한 밑바닥 인생의 이미지를 기억하는 대중들이 화려하고 지적인 취향의 미니홈피를 보고 '허세 부린다'고 꼬집었던 것이다.
영화 드라마 CF 등 다양한 영역에서 안정적인 이력과 반항적인 도전자 이미지를 키워온 그에게 '한국판 제임스 딘'이란 칭호가 따라붙은 것도 무리는 아니다.
꽃남이 아닌 베토벤 바이러스 택한 명민함
무심한 반항아 이미지로 시대의 아이콘이 된 제임스 딘과 장근석이 다른 점은 그의 욕심이 상상을 초월한다는 사실이다. 그는 "노래도 불러봤고 MC도 해봤고 트럼펫도 했다. 학교(한양대 연극영화과) 다니다 보니 감독에 대한 꿈도 생겨 시나리오도 쓰고 UCC공모전에도 응모할 정도"라고 토로한다. 심지어 그는 뮤지컬과 영화 제작에까지 욕심을 뻗치고 있다는 후문이다.
배우 정진영은 최근 한 연예프로와의 인터뷰에서 후배 장근석에 대해 "좋은 씨앗이다. 연기도 잘하고 무한한 잠재력을 지니고 있는 배우다"라고 극찬해 눈길을 끌었다.
모든 배우가 허세를 실체로 변신시키는 놀라운 능력을 타고 나는 것은 아니다. 그런 점에서 장근석은 배우의 기본자세로 '허세'를 포함시켜야 한다는 가설을 입증하는 첫 사례가 될지 모른다.
정호재 기자 demia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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